{수필} 리모델링 / 고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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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 고대석
살고 있는 집을 리모델링 한다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닐뿐더러 꼭 필요에 의한 것만이 아닐 때도 있다. 투자 심리가 이유일 때도 있겠으나 심경 변화에 따른 기분 전환과 주변 정리를 심중에 두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외형의 변화는 내적 감정 조절을 시도하려는 또 다른 심리적 욕망의 대체물이라 하는 것이 오히려 옳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을의 입구에서 리모델링하는 마음은 썰렁하기만 하다.
아내는 키츤 리모델링(Kitchen Remodeling)을 거의 다 마쳐 가고 있다. 그 일에 정성을 쏟는 마음은 극진하였다. 폭풍우를 만나 타고 있는 배의 전진 방향을 바꾸어 보려고 키를 잔뜩 움켜잡은 초년생 선장처럼, 허전해진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 보려고 안간 힘을 쓰는 그 녀가 애처롭기 까지 하였다. 막내 딸 까지도 집에서 떠나보내며 안절부절못했다. 방 들이 다 비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이른 아침이면 각 방을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가 빈 방을 오랫동안 정신 놓고 바라보곤 한다. 그러다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 서며 “여보 우리만 남았어요.”라고 한다. “내가 아직 있지 않소.”라고 해도 그녀의 마음은 그대로다. 이제껏 만사에 아이들에게 더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의견을 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아 온 그녀다. ‘키친을 시작으로 해서 집 전체 리모델링이라도 해서 마음을 달래 보라’ 권하며 당신 마음에 들게, 묻지 말고, 원하는 대로 바꾸어 보라 했다. 두 달여를 자료 분석과 현지답사와 공사 담당자 선정에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 색깔과 모양과 조화를 들먹이며 어느 것이 더 좋으냐고 귀찮을 정도로 물어 왔다.
옅은 커피색으로 차려 입은 새로운 모양의 캐비닛(Cabinet)을 넣고, 남태평양 바다 물색을 닮은 씨폼그린 그래닡(Sea Foam Green Granite)을 탑으로 하고 서랍들이 병졸들처럼 줄을 섰다. 모든 어플라이언스(appliances)들을 스텐(stainless steel)으로 제조 된 것으로 대체해 넣었다. 새 싱크가 자리 잡고 그 앞의 큰 창문도 창살이 없게 유리를 넣어 창 밖 소나무 숲이 집 안처럼 말갛게 보이게 했다. 힘을 써야 열리던 슬라이딩 덜(Sliding door)도 새 프렌치 덜(French Door)로 바꾸어 연하게 여닫을 수 있게 되었다. 유리문 캐비닛에는 작은 전기 등을 넣고 유리 거울로 각 면을 덮어 싸게 하여 아주 깊고 투명해 보이게 했다. 점화식을 하는 저녁 아내와 나는 와! 환성을 터뜨렸다.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되었다. 잠시 만 이라도 아내는 허전함을 잊고 기뻐했다. 둘이 앉아 붉은 색 와인(Red Wine)이라도 한 잔 하면 좋을 만하다.
이제는 개스렌지(Gas Range)에 불이 붙지 않아 성냥을 그어 대지 않아도 된다. 싱크 밑으로 물도 떨어 지지 않는다. 디쉬와셔(Dish Washer)도 없는 듯 소음 없이 조용히 돌아간다. 손톱을 부러뜨리며 오븐 속을 닦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이 흡족하다. 이제는 맛 나는 요리만 만들어 내면 되겠다. 그런데 허전하고 쓸쓸하다. 맛있는 음식도 이제는 많이 만들 필요가 없게 되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냉장고 속에 있는 먹다 남은 것 먹어도 되고 그릇들도 상자에 담아 치워 놓고 몇 개만 내어 놓고 쓰면 되겠다. 어지럽혀 질 일도 없으니 청소를 자주 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그리고는 적막이다. 조용하다. 개스렌지에 불 켜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창 밖 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이 지나 가는지 잎이 흔들리는 그림자가 창가에 어른거린다. 미국 산 로빈(Robin)두 마리가 날아 와 앉더니 다정하게 서로 고개를 까닥거리더니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이럴 때면 고향 떠난 이민자의 마음은 더욱 설렁하게 한기를 느낀다.
어릴 적 시골 외갓집에 가곤 했었다. 대청마루 천정에 혈관처럼 지나가는 통 나무 쇠가래가 보이는 초가집이었다. 그 한 구석에 제비 집이 있었다. 유럽에 산재한 중세에 건축한 대리석 성당들처럼 든든해 보이는 제비 집이었다. 봄철에 돌아 온 제비는 그 집을 보금자리로 하여 새끼들을 얻어 여름 내내 정성을 드려 키워 낸다. 샛노란 주둥이를 제 몸이라도 삼켜 버릴 듯 찢어져라 벌리고 소리치며 졸라 대는 새끼들에게 어미는 쉴 새 없이 드나들며 먹이를 물어 나른다. 어느 놈이라 차별하지 않고 골고루 먹인다. 새끼들에게 위험이 다가 온다. 느끼면 쏜 살처럼 날아들어 새끼들과 둥지에 함께한다. 비 오는 날이면 앞 뜰 빨래 줄에 앉아 피곤한 몸은 쉬지만 번뜩이는 눈은 쉬지 않고 새끼들을 지켜본다. 아련한 옛 기억이 오늘은 왜 이렇게 피어올라 가슴이 저리게 파고드는 것일까. 짝짝 벌려 대는 새끼들의 샛노란 주둥이들이 유난히 아롱거린다. 날아오를 것 같지 않던 그 놈들도 가을이 오니 모두 남쪽 나라 살기 좋은 곳으로 다 날아가 버리지 않았던가.
아지랑이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봄날이면 우리 조무래기 동무들은 강변 풀숲으로 달려가곤 했다. 아지랑이 피는 날이면 유난히 종달새의 노래 소리가 교회의 종소리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우리는 높이 떠 있는 종달새의 바로 아래쪽의 풀숲으로 기어들곤 했다. 종달새가 알아차리고 자지러지게 소리 지르며 곤두박질 쳐 내려오면 틀림없었다. 그 숲에는 종달새의 집이 있었고 그 안에는 몇 개의 알이 있곤 했다. 까무러칠 듯 울어 대는 종달새를 손을 휘저어 쫓으며 우리 조무래기들은 어미의 생명처럼 귀중한 알들을 끄집어내곤 했다. 종달새의 노래가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 때만은 숨넘어가는 애절한 통곡이었을 것이다. 철없던 어릴 적 그 놀이가 후회의 한숨으로 눈물 되어 젖어 온다.
모두 떠나보내고 두 늙은이가 신혼처럼 살아 보자 하지만 분위기는 영 그렇지 못하다. 집 안에서 남정네들이 관여하지 않고 여인들의 정성과 혼이 담겨 있는 곳이 바로 키친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그것하나도 자기주장대로 치장하지 못하고 아이들과 의논하며 살아 온 한 여자의 일생이다. 제비새끼처럼 샛노란 주둥이를 가진 아이들에게 먹이를 넣어 주고 위험이 이르면 종달새처럼 온 몸으로 쏟아져 내리며 혼절 할 듯 하던 그녀이다. 모두 떠나고 그녀만 혼자 남은 듯 한가보다. 새로 정성 들여 단장한 키친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초점을 잃고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다. 누구나 예외 없이 자연의 법칙을 따라가는 길이건만 현실에 당면한 본인들은 혼자만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그래서 부부는 한 세대를 같이 걸어가며 서로를 밭쳐 주는 동반자가 되어야 하나 보다.
이럴 때 동갑네기 친구가 가까이 있으니 좋다. 아주 젊은 시절에 즐기던 팝송들을 CD에 옮겨 선물이라며 가져와 우리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어찌 알았을까. 우리의 허전함을. 동병 상린이겠지. ‘Love me tender, love me true’ 음악이 흐른다. 오래 동안 아이들을 위한다며 클래식 음악만 듣고 가르쳐 오지 않았던가. 아내를 아직 알지도 못하던 그 때 가슴을 절절하게 저리게 하던 음악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같이 살아 온 둘 중에 내가 먼저 떠나게 되면 아내는 또 다시 리모델링을 하게 될지 몰라도 지금은 새로 단장한 키친을 즐기도록 하자.’I love you more and more every day’ 음악이 바뀌어 흐른다. 그래 아내도 자식들도 이제는 다른 차원에서 더욱 더 사랑하며 살아 보자.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리모델링 보다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기운 넘치게 리모델링 하는 것이 허전한 마음을 가진 우리 늙어가는 이들에게는 더욱 보람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한국수필’ 신인상 등단. 재미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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