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이스크림 소셜 / 하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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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소셜 / 하정아
매달 두 번째 화요일. 아이스크림 소셜 (Ice Cream Social)이 있는 날이다. 딸기, 바닐라,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담긴 커다란 통들이 카페테리아 한쪽에 진열된다. 깊고 넓적한 컵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듬뿍 담고 딸기 시럽을 끼얹는다. 그 위에 땅콩가루와 형형색색의 설탕가루로 만든 스프링클스를 골고루 뿌린 다음 윕크림을 잔뜩 분사한다. 병동으로 가는 동안 아이스크림에서 입을 떼지 못한다.
병원 직원들은 음식을 먹는 장소가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전문인으로서의 신뢰감 유지와 알 수 없는 병원균에 노출될 확률이 많은 환경을 고려한 방책이다. 흘린 음식에 누군가 미끄러져 넘어질 염려 때문에 뚜껑 없는 음식을 나를 수 없다는 규정도 있다. 아이스크림 소셜 데이에는 이 모든 것이 무색해진다.
아침부터 간호사 메리와 벼르고 있었다. 오후 2시, 아이스크림 소셜이 시작되었다는 안내방송이 나옴과 동시에 우리는 달려갔다. 줄이 벌써 길다. 확실하게 보장된 선물을 기다리는 것은 연장된 기쁨을 준다.
우리는 흘러넘치는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떠먹으며 히히 낙락 요란하게 걸었다. 지나던 수퍼바이저 루가 너무 들뜨지 말라고 충고한다. 설탕 과잉섭취로 에너지가 넘쳐 힘없고 몽롱한 수술 환자들을 너무 세게 다룰까 염려된단다. 기분이 좋아 더 친절할 거라 했더니 본격적으로 겁을 준다. “그렇게 먹어대다가는 살찐다. 제인 너 병원음식 때문에 몸이 자꾸만 무거워지고 있다고 불평했잖아. 오늘 3파운드는 거뜬히 늘겠다.” 나는 헤헤거린다. 그런 다해도 이 즐거움과 바꾸지 않겠다며 당당하다.
메리의 팔을 붙잡았다. “메리, 병원이 만약 웰빙 혹은 비만 운운하면서 이 아이스크림 소셜을 없애버리면 어떡하지? 난 울어버릴거야. 으음, 맛있어.” 메리의 파란 눈동자가 반짝 빛나는가 싶더니 회색빛으로 바뀌었다. 그녀가 진지하게 말했다. “제인, ‘too much pleasure is sinful.(과도한 즐거움은 죄야)'"
금욕주의적인 성향이 그녀 못지않은 나는 잠시 생각을 하기 위해 멈춰 섰다. “메리, 너는 네 딸이나 아들이 행복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면 야단칠 거니? 너도 기쁘지 않을까? 하늘 아버지도 마찬가지이실 거야. 늘 긴장 속에 사는 우리가 오늘 하루쯤 즐거워하는 것이 죄일까? 에이 몰라, 그래도 나는 이 아이스크림 다 먹고 지금만큼은 행복해지고 싶어. 그분이 주신 미각을 충분히 즐길 거야. 정 불편하면 ‘너무(too much)’ 라는 형용사를 빼지 뭐. 그럼 pleasure is blessing이 되겠지?” 그녀는 동의했다. 우리는 다시 명랑해졌다.
아이스크림 소셜. 각종 아이스크림과 온갖 타핑이 가득 들어있는 양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배가 부르다. 환자와 의사와 동료 사이에서 갈등하고 인내하는 직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어루만져주고자 하는 병원의 따뜻한 배려가 고맙다. 무거운 환경 속에 갇힌 우리가 잠시 멈추어 서서 숨을 고를 수 있는 시스템이 만족스럽다.
그대여, 아이스크림 소셜에 초청하노니 동료 간에 불편한 감정이 있거든 이 아이스크림을 나누어먹으며 풀라. 마음이 상했거든 이 부드러운 맛으로 달래라. 인생을 딱딱하게 살 필요가 없다. 기쁘거든 기뻐하라. 슬프거든 슬퍼하라.
그대여,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내게로 오라. 아픈 그대를 꼭 껴안아주고 이마에 입맞춤해줄 것이다.
<문학세계> 신인상 등단. 한국수필 해외수필문학상. 재미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국제펜클럽 회원. 수필집: ‘행복은 손해 볼 수 없잖아’ ‘물빛 사랑이 좋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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