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시류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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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가 지날 때 반드시 비판의 소리가 있다.
또한 시대가 지날 때 반드시 그러한 비판의 소리를 다시 듣는다.
이것은 부득불 인간 이상추구의 현실을 의미하고 정의하지만 인간적으로 볼 때는
다 그렇고 그렇다는 이면성이 있다.
역사는 그래왔고 그렇게 반복했다는 거울이다.
웅덩이가 있고 낭떠러지를 흐르는 물은 잔잔하거나 유유하게 흐르는 물이 차마
그것을 잘 모른다.
왜, 어떻게, 어찌하여 그럴 수 있느냐고 외쳐댈지라도 인류사에서는 크고 작게 그
것을 대변하거나 해결해줄 주인이란 없었다.
다만 엄숙하고 숙연한 일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시류라는 게 있다.
사람이 넘나들 수 있는 시류가 있지만 조물주의 조성으로 이루어진 시류와 사람
이 만들어내서 가져온 시류가 있다.
때론 혼돈의 세계이다. 우리는 이것을 분별해야만 한다.
또 분별한다고 해서 어찌할 것인가. 사람이, 인류가 어찌할 것인가.
자연 하다 못해 영특한 사람의 운명에 맡기거나 신의 섭리에 맡겨지는 길 밖에 다
른 도리가 없다.
다만 더 나은 변화와 성숙이란 우리를 기다린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공식이다.
그것이 안간 힘 내지는 운명이라거나 체념에서 오는 것이어야 할까? 초월신앙에
서 오는 신념의 힘이어야 하는 것일까?
의견은 분분할 것이다. 또 생각은 자유일 것이다. 그리고 행동 역시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결과는 그것이 우리에게 가르쳐줄 것이다. 그리고 그래왔다.
사람은 일을 알만 하다. 그래서 조물주는 마지막날 세상을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인류사의 일이란 결국 의,식,주 의 복리 말고 또 있는가? 그런데 왜 그것에 생과 더
불어 사의 문제는 포함하지 않는가. 종교(신앙)는 정치, 경제, 사회와 유리되어야
하는가! 종교가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라면 인류는 모두 종교인이 되어야 마땅하
지 않을까! 그리고 선택의 자유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본연한 종교의 필연성일 것이다. 외마디 소리 한 마디가 아니라 이
것이 인간의, 인간성향의 향방일 것이다.
줄지어 피어난 꽃봉오리들은 사람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다. 씨의 생명체에 있
고 햋빛과 물과 공기와 공급되는 영양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주시고 가꾸시는 분
에게 있다.
이것을 알면 또 시인하면 인류사는 종교로 해결된다.
21세기의 우리의 추구의 골은 다른 것 아닌 조물주시요, 그분의 사랑의 통치이념
바로 그것이다.
사람은 반드시 조물주의 형상화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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