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들새 / 정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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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새 / 정영근
귀여운 들새는 부리로 부산하게 재롱을 떤다. 파르르 날고 또 내렸다가도 연상 파르르 날면 마음은 어느새 한가롭고 태평해진다. 이곳 저곳서 짹짹, 노래하고 우짖으면 천년 만년 묵은 연년이 해갈하여 녹고 온기를 주는 것 같다. 이런 시간 길고 지고…우린 이것이 좋아 이곳서 산다야~. 그런데 이렇게 긴긴 겨울이 오면 괜스레 걱정스럽다. 철새는 떠나갔지만 큰 눈 오면 들새는 무얼 먹고 살 거냐고. 저들은 하루 하루 먹고 살뿐 저축일랑 모른단다. 재 땅 좋아 재자리 살지만 어느 누구 돌봐줄 이 없나 싶다.
작년 이맘 때 겨울이었다. 아침 잠 설치고 하품하며 일어나 창문을 열었더니 온 누리는 설경 이 병풍쳤다. 한 빈틈 공간도 없이 온 대지는 새하얗게 물들어버렸다. 한참 동안 북극의 두툼한 백곰 하나라도 만날 듯 해 환호하며 기뻤지만 그건 금방이고 내 맘은 들새 먹이 어쩌려나 싶어 놀래서 일어섰다. 뒤 마루 터로 나갔다. 언제나 그네들로 왁자지껄하던 자리다. 몇일 새 온 데 간 데 없어 잠시 나마 궁금하고 허전했다. 그런데 뜻밖이다. 한 두 마리 들새가 훌쩍 날아든 것이다.
애들아, 말없이 어딜 갔었지. 모이 주기로 친해진 내 벗들이다. 반갑게도 엉금썰썰 얼굴 내밀면서 내 가까이 온다. 그 여린 발가락으로 간지럽게 내 발등상까지 살짝 밟고 가볍게 내려 선다. 애교 있는 멋진 폼이다. 무엇을 위한 유희일까. 아마도 배고파. 주인, 먹을 것 좀 줘. 하는 양 싶었다.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먹이를 가지고 나왔다. 이때 이 순간은 마치 아프리칸 구제에나 나선 열성 펜들의 기쁨과도 흡사했을까. 아까울 수가 없다. 좋은 모이를 마구 뿌려주마. 많이 먹으렴. 어찌나 좋아하는지.
두 마리 들새는 그 가느다란 부리로 바닥까지 사정없이 모이를 쫀다. 콕 콕 콕….작은 주린 창자, 얼마나 고팠으면 이럴까 싶었다. 죽지마저 마구 버근 댄다. 그냥 혼 겁에 질린 양 죽기 아니면 살기다. 이름없는 들새, 이렇게 겨울을 살려고 안달한다. 우린 아쉽게도 이런 작은 생명의 솟구치는 소리를 미쳐 못 듣는다. 그리고 돌보지 못한다. 그래도 엄동설한 긴긴 날에도 굶어 죽는 들새는 없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어느 명인의 말, "신은 모든 새에게 모이를 준다. 그러나 그걸 둥우리에 던져주지는 않는다." 했던가. 옳지, 한 겨울 쉬면 죽지. 쇠약해지겠지. 그래, 눈 오는 겨울 오면 신은 또 먹이를 주겠지.
미시간 저널 시문학상 등단.
한국 재림교회 100주년 기념 삼육대학교 총 동문회 제1회 최우수 문학상.
한국 재림문인협회 재림신문사 재림문학상 1-2회 수상. 시집: '당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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