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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 / 정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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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림문학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10.04.21 17:34 조회수 7,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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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좋아하는 사람들 / 정영근

축구장이 십여 개 있는 필드였다. 오랜 만에 한가한 마음으로 한 자리를 골라 앉자마자 젊은 부인 한 분도 성큼 내 앞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같이 온 개 한 마리도 사뭇 엄중한 모습하며 주인 자리 주위를 쓱 한 번 둘러보더니 안심이 되었던지 그녀 곁에 몸을 기대며 다그쳐 앉는다. 항상 익숙해진 버릇처럼 보인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 유명한 왕의 호위견 게르베로스(Kerberos)의 위풍당당했던 모습과도 비견할 만큼 흡사해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알고 보니 그녀의 호위병은 노이푼돌랜더(Newfundlander) 유럽 종인데 애칭으로 주인은 그 이름을 ‘노이’라고만 부른단다. 떡 벌어진 앞가슴하며 두 다리에도 가지런한 긴 털이 치렁치렁하고 걸음을 걸을 때 마다 축 늘어진 털들이 철렁철렁하며 보기 드물 만치 빼어나게 멋있어 보인다. 이러고 보니 운동경기 관전 보다는 노이에 대한 관심거리가 더 호감 가는 셈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어쩌면 그녀와 노이는 흡사 정다운 연인 같다 고나 해야 할까. 자리에 앉자마자 우선 그녀는 노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온 몸통을 그리도 좋아라 하게 만져준다. 타종 인간의 터치가 노이에게 어느 정도 감정이입이 가능할까? 궁금해진 장면이다. 노이는 마냥 좋을 세라 그 큰 아귀를 사정없이 벌려 아응~, 아음~, 하면서 한 아름 하품을 하면 그 머리통이 주인 보다 더 커 보이고 어쩌면 날쌔게 군림하는 야수처럼 무서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많은 개를 봤지만 이놈은 별난 데가 있어 보인다. 경기 시간 내내 그 건강한 핑크 빛 나는 넓은 혀 바닥으로 노이는 그녀의 새하얀 얼굴하며 보송보송한 목덜미까지를 거기가 어디라고 쉴 새 없이 핥아댄다. 그런대도 천연스럽기만 한 그녀의 품이 자못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깊은 애무에 젖은 모습과도 같고 살포시 내비쳐지는 상념의 애정 표정 같아 보인다 하면 지나치다 고나 할까. 만약에라도 진짜 연정의 그 남편이 이 모습을 볼라치면 어쩔라고.…

노이는 바로 자기 등 뒤에서 마냥 질투의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내 얼굴 모습을 단 한번 힐끗이라도 처다 본 적이 없었다. 진짜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눈이 멀면 그렇다지만 그렇기로서니 눈치까지 야밤처럼 멍들면 그 잘난 노이라고 한들 그 게르베레스 충견 소임을 어찌 다 할 수 있을까 싶어진다. 무심코 간혹 보아하니 그녀에게서 저만치 서너 발치에서 머리는 벗어지고 우람하게 잘생긴 남성 한 분이 작은 털보 스피츠(Spitz) 한 마리를 품속에 껴안고 몹시 간지럽게 좋아하지 않았던가. 이제야 알고 보니 바로 그이가 그녀의 반려란다. ‘저 늙은 올슨은 깍쟁이’라며 특유하게 그녀 입을 삐쭉 내민다. 마치 서로 남남 관계나 같은 생각이 얼른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윽, 그럼, 이들 사이, 금슬이 있으랴! 싶었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가까우나 멀거나 본디 삶이란 시각만이 다가 아닌 것이리라. 가까워도 아니 보이는 건 아니 보이고 멀어도 보이는 건 확실히 보이는데 이것은 관심의 시각일 것이다. 멀리도 잘 보이고 가까워도 전혀 보이지 않는 건 애정이라는 또 하나의 시각일 것이다. 이러고 보니 어쩌면 이 부부에겐 서로간의 개 사랑 그 안개 짙은 맘 때문에 몹쓸 세상 공허와 잡다한 불행마저 온통 삭혀버리고 요행히 그 희귀한 색다른 쪽 위안의 강력이 행복의 파편을 부풀리며 누리기까지 해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래서 그녀는 어차피 멀어져 만 가지만 오히려 그 반동 심리로 밀착되어져만 가는 또 하나의 이 두 힘의 역학관계 속을 줄 다름 하며 곤하게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삶이야말로 피곤하고 처절한 것이리라. 그래서 오늘날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네 발 가진 귀여운 짐승 애완용 개라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경우가 흔해진다는 사실이리라.

만약에라도 이들 부부애의 금슬이 그만 다 식어버렸다 치자. 필시 애정도 차가워지고 쓸쓸해 졌을 게다. 다만 노이와 스피츠 사랑 푸접 때문에 마음 착한 이들이 부부애라는 현재의 등식 그대로를 지탱하며 곤궁하면서도 안간 힘 다해 그 명분을 표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로 보면 ‘개는 이제 도둑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고독을 지킨다. 개는 애정의 대용물이 되어 인간을 고독으로부터 방어한다.’는 명인의 말이 실증된 셈이리라. 그녀와 노이, 그이와 스피츠는 상호 의존적이었다. 그것이 사랑과 애정이 갖는 특성이다. 곧 노이나 스피츠가 갖는 그들의 특성은 30여종의 개가 갖는 공통된 특성이다. 주인에 대한 변함없는100% 사랑과 충정, 어떤 경우라도 100% 친절과 신뢰가 그것이다. ‘개는 꼬리에 영혼이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 표식이기도 한 것이리라. 노이나 스피츠가 절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가식, 곧 지어먹는 마음이다. 그들은 진실과 사실만을 가지고 행동하며 사는 단순동물이다. 그래서 오늘날 현대인들은 마음 놓고 그들을 좋아하는 것이리라.

중국의 태종왕은 도화견을 좋아하여 심지어 어전회의까지 데려가지 않았던가. 왕께 불리하다 싶으면 도화견은 높은 왕상의 자리 곁에서 머리를 들고 위엄이 있는 어조로 쩌렁 쩌렁 몇 번 짖어댔단다. 때때로 현자들이 개에게서 깨우침을 받았단다. 그런데 그만 태종이 승하하자 그 도화견은 잠도 자지 못하고 먹지도 못했단다. 부득불 왕릉 곁에 그를 대려다 주자 좋아하고 먹고 잠도 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도화견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간에 주야로 왕릉 곁 그 자리에서 왕릉을 바라보며 살다가 어느 날 왕릉 곁에서 숨지자 왕릉 곁에 묻혔다 하지 않았던가. 그래, 차마 모를 궁정 속에서 도화견의 충정을 믿고 좋아했던 태종은 잘한 일 아닐까. 또한 이들 부부가 개 족속의 변함없는 사랑과 순직한 그 충정을 마음 놓고 믿었던 것은 잘한 일 아닐까. 오늘날 사람의 신임사회는 아쉽게도 점점 붕괴되어 가는 것만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바로 이런 연유로 개 종족들과의 현대인들 신임사회는 그 애정이 점점 두터워만 가는 것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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