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시편 4편을 읽다가 다음 글귀를 오랜동안 생각하게 되었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시 4:1).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곤란 중에 너그럽게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길 때에 굴 속에서 사울을 처치할 좋은 기회 맞았다. 그러나 그는 왕의 옷자락만을 베었고....
왕이 자신을 쫓아 잡아 죽이려 하다가 잠들어 있을 때에 창으로 왕의 염통을 땅에 꽂을 수도 있었다.
나발의 가산을 지켜 주다가 나발에게 양식을 좀 달라고 구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울컥 화가 치밀었다. 400명의 칼 찬 부하들을 데리고 "이 눔을 가만 두놔 보자"하고 내려가던 차에 나발의 부인 아비가일을 만났다.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권고와 간청으로 인해 그는 다시 너그럽게 되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그 당사자에게 대하여 은혜롭게 참고 선을 베푸는 일, 곤란 중에 "내가 예전에 은혜를 준 돈 많이 번 친구에게 천불만 있으면 내가
일어설 수 있으니 천불만 꾸어달랄" 때 거절당해 보라. "내가 지 어려울 때 그토록 도와주었는데 지금 좀 떵떵거린다고 날 거지취급해! 이런 배은망덕한~"하고 부아가 치밀어 오를 때 "날 사람 되라고 베푸시는 또 다른 은혠가보다"고 너그럽게 해석하기 얼마나 어려운가!
열은 나고 짜증은 나려 할 때 감사함으로 하늘 우러르며 "내 입에 파수꾼 두사" 내게서 불평이나 원망의 말 새나가지 않도록 도우소서 하기 얼마나 어려운가!
끝없는 절망과 좌절, 그리고 배신의 연속극같은 인생살이에도 찌들지 않고, 한결같은 친절과 유쾌함, 그리고 너그러움 베풀 수 있게 되는 것이 진정한 힘 아닐까!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계시면 그 너그러움 갖기 쉬워진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에게 "곤란 중에 너그러움"이란 아름다운 꽃 피우시려 우리를 곤란의 터널 속에 두신다.
꽃봉오리가 개화되기까진 그 잎을 열지 않지만 얼마 지나잖으면 활짝 그 다문 잎 펼쳐 향기 토하듯 우리도 곤란과 아픔의 터널 지날 때 감사함과 유쾌함과 너그러움의 향기 토해낼 준비 해야한다.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시 41:1,3)의 약속이 곤란 중 너그러움 실천하는 자에게 응답되어 질 것이다.
주여! 오늘도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해 주소서! 그저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어서 적어 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