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어느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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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 이거 뭐라 말씀 드리기가...."
박부장은 c 지사장의 주절거리는 목소리에서 예사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 그러니까, 말을 제대로 해 보셔!"
어느 소도시, 지사 직원 사택에서 이상한 소리가 계속해서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택에 거주하는
외국인 직원들이 난리란다. 입장이 난처해진 지사장은 사택을 처분하든지 이사를 가든지 양단간 결단
을 요구했다. 아니 지금 회사 사정이 어떤데 어렵사리 구한 그 사택을 그래 그 이상한 소리 하나 때문
에 당장 바꾸란 말인가! 말이 되는 소린가? 아니 도대체 어떤 소리 길래 이 야단법석을 떠는가. 밤마다
이상한 소리가 장농에서 난단다. 참 나 원, 20층이 넘는 아파트에 도대체 무엇이, 하필 중간층에 사는
우리 사택에 들어 와 산단 말인가. 어느 한적한 가옥이나 외 딴 곳의 흉가면 몰라도 말이지. 아파트가
성냥갑처럼 빼곡이 병풍으로 둘러싸인 최신식 아파트에 이상한 소리라니? 정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는 거 아냐. 지금 처리할 일도 산더미처럼 싸여있는데 뭐 이런 일로 사람을 귀찮게 구는 거지.
박부장은 혈압이 올라 얼굴이 충혈 되면서 일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건
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아파트에 거주하는 직원들이 외국인들인데 그 귀신은 영어라도 한단 말인가?
아니면 어느 새 외국 귀신들이 한국으로 이민 와서 외국인들에게만 나타난단 말인가? 박부장은 그 지
사장의 통사정을 한마디로 냉정하게 거절했다. 지사장이 교인이니 철야기도라도 해서 그 소리를 없애
봐요. 그게 능력 아닙니까? 단지 그 이유만으로 사택을 처분할 수 없어요. 쾅하고 놓은 전화 수화기 소
리에 오히려 박부장이 더 놀랬다. 좀 더 살살 다룰 걸 그랬나? 일단의 후회가 잠시 스쳐지나가다가도
지금 회사 사정이 어떤데, 요즘 직원들이 말이지,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라요 하며 혀끝을 찼
다.
그 후로 몇 주가 지났을까 또 그 지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장님 말씀대로 철야기도도 해봤다.
외국인 직원들이 합심하여 기도도 해 봤다. 그런데 그 이상한 소리는 점 점 더 크게 들려 이제는 외국인
직원들이 보따리 싸고 다 도망갈 채비를 채릴 상황으로 번져 이제 자신의 지사가 외국인 직원들이 기피
하는 지사 제 일호가 될 것 같으니 본사에서 좀 심각하게 이 사건을 받아 드려 달랜다. 목소리를 고르면
서 오르는 혈압을 조절하느라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그저 듣기만 했다. 이윽고 철야기도도 해보고 별별 짓
을 다해봤는데도 효험이 없단다. 아니, 제대로 기도나 하기나 한 건가? 무슨 기도가 그리 약해빠졌어? 명
세기 교인이면 이런 일쯤은 단칼에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다시 한 번 더 기도를 찐하게 해봐요. 더 이
상 그 이상한 소리를 내지 못하게 자네가 더 큰 소리로 통성 기도라도 해서 그 이상한 소리를 쫓아 내보
란 말이지. 상대방 전화기에서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끙끙 앓는 소리가 일의 심각한 정도를 알려주었
다.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그러면...부장님도 교인이시니 한 번 내려오셔서 통성기도를 해 주십시
오. 저희 기도빨이 신통치 않아 그러니 부장님의 카리스마 넘치는 기도로 단번에 그 소리를 내 쫓아 주십
시오. 정 회사에서 사택을 처분하지 못하시겠다면 그 수밖에 없습니다. 박부장의 머리카락이 갑자기 쭈
뼛 섰다. 아니, 자네 지금 나 보고.... 내려와....그 이상한 소리를... 내 쫓으라는 말......네, 그렀습니다. 일이
참 난감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온 몸에 힘이 죽 빠지면서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자네 왜, 이러나? 난 본
사 일을 맡고 있지 이상한 소리 쫓아내는 일을 맡은 게 아니 잖는가?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기
싸움에서 박부장은 밀리고 있었다. 사실 난 지금 목감기가 와서...도망갈 구멍이 없었다. 그럼 언제쯤 내
려오실 수 있나요. 목감기 나으실 때까지 기다리죠, 뭐. 전 지사 직원들에게 말해 놓겠습니다. 박부장은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자네....지금...협박, 박, 아니 안 되겠네....음, 흠, 그럼, 뭐 사정이 그리 딱하니 사
장님께 사택을 처분하도록 서류를 올리도록 해볼게...머쓱한 마지막 인사말을 남기고 전화기를 놓는 순
간 멍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일단 애둘러 사건을 일단락 시키기는 했지만 사무실 창가에 흔들거리는 은
행나무를 보며 남을 위해 목이 터져라 가슴 시원 하게 진 땀을 흘리면서 기도한 적이 언제 적 일이었지
하는 자책감과 허탈감에 박부장은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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