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에게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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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비가 많이 온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걸까? 아니면 하늘이 얼마나 슬펐으면 이렇게 많은 눈물을 뿌리는 걸까?
나를 향해 집중 퍼 붙는 비를 마주하며 약속시간에 맞추어 가는 나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이윽고 택시를 겨우 탔다. 차 내의 에어컨에도 불구하고 찌근함과 서리로 앞 유리 창이 희뿌였고 연신 바쁘게
돌아 가는 차 와이퍼로 어수선한 차내를 직감하면서 과연 이 비를 뚫고 나의 목적지로 갈 수 있을지 괜히
불안해 졌다. 목적지를 말하면서 운전기사를 힐끗 쳐다보니 내 또래 나이인 것 같은데 믿음이 가는 인상이었다.
인생 참 바쁘다. 숨이 막힌다. 허겁지겁 살고 있다. 이런 상념에 눈을 지그시 감고 가는데 저, 죄송한데요...
운전기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 네.. 그 운전기사는 양손으로 차 핸들을 꽉 잡고 전방을 주시한 채 자기
말을 좀 들어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 한 번 해 보슈. 나는 나대로 창밖을 응시하고 그 운전기사는
그 양반대로 전방을 응시한 채 말이 이어졌다. 사실, 나는 남의 말을 들어 줄 정도로 마음이 여유롭지도
한가하지도 못했다. 그 기사는 나의 아내에 대해 물었다. 네 잘 지내고 있지요. 그 운전기사의 아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다. 작년에 그렇게 자기와 두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났단다. 아니, 빨리 재혼하세요. 세월이 약이라고
그러잖아요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분위기가 그렇질 못했다. 나라면 아휴, 망설일 이유가 뭡니까?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란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다가 보고 싶다가 그리워하다가 원망도 하다가 어떻게
잊을 수 있는가? 선생님, 사랑했던 아내를 잊을 수 있는 방법 좀 가르쳐 주세요. 세월이 가면 서서히 잊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다. 그 아내가 차지했었던 그 공간만큼 허전하단다. 그리고 그 누구도 채워 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미치겠단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현실을 위해서라도 이겨나가야 하는데 아내만큼은 잊을 수가 없단다.
그 기사의 얼굴에도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내가 응시하는 창에도 비가 흐르고 뭐라 주체할 수 없는 상실감과
동정심이 나를 짓눌렀다. 참 사랑하셨나 보내요. . . . 네, 네.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지금은 그 사람이 미워요.
어떻게 나를 두고 먼저 갈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그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먼저 갑니까? 아, 네 그렇군요. 나도 그도 슬픔의 홍수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참 사랑했었구나.
아니,사랑하는구나. 나도 모르게 고개를 다시 창밖으로 돌렸다. 갑자기 창밖에 마누라 모습이 떠올랐다.
가느다란 미소를 머금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저 기사양반처럼 저 이를 사랑하고 있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일까? 저 말씀드린 곳에 도착했습니다. 라는 기사양반의 말에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 네. 하고 그 차에서 내렸다. 비를 뚫고 저 만치 달려가는 그 택시를 내내 쳐다보면서 잃은 사랑을 잊지 못해
흐느끼는 그 기사양반의 참사랑의 눈물로 내 속이 울렁거렸다. 그 이의 순애보에 내 속 전체가 뒤집히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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