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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재림문학 '신인상' 소설당선작 / Lee, Es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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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한과의 조우  / Lee, Esther   

    1                            

  나는 간호원이다. 그 때문에 늘 바쁜 일정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나는 오늘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기에 앞서 동료들과 이별의 인사를 나누기 위해 미스 박, 미스 김, 미스 정, 나 퇴근한다. 하고 말하였더니 언니!  우리들은 버리고 혼자만 갈 거야?  언니, 우리도 같이 가면 안 돼요? 하며 억지를 부린다. 너희들 맘대로 해. 입원 환자야 어찌 되든 따라 나서렴. 그럼 병원은 누가 지키지? 이 어리석은 동포들아. 너희들은 양력설에 휴가를 받아서 며칠씩이나 잘 다녀오고서도 왜 꼭 내가 퇴근 하려면 그 야단들이냐.  언니, 밖이 어두워지고 있어요. 우리 걱정은 말고 빨리 가세요. 그리고 우리대신 맛있는 것 실컷 먹고 내일 돌아오실 때 많이 싸 갖고 오시는 것 잊지 마세요. 언니, 참 우리 심심한데 군밤이나 좀 사주고 가실래요?  그래. 누구든 빨리 따라 나와. 따끈따끈한 군고구마와 군밤을 사줄게. 그런데 리어카 장사 아저씨 지금도 계실까?  언니, 오늘은 왜 이리 춥고 썰렁한 바람이 부는지 이상야릇한 기분이 드네요. 어서 더 늦기 전에 떠나도록 하세요. 그 옷 너무 멋지네요. 하지만, 언니, 새하얀 가운 속에 천상에서 내려온 천사와 같이 하얗고 아름다운 미모의 평소의 언니 모습보다는 조금 못한 것 같네요. 그런데 혹시 어떤 늑대가 나타나서 예쁜 우리 언닐 잡아 갈지도 모르니 늑대 주의하세요. 언니. 얘-들아, 오늘은 웬 사설이 그렇게 많으냐? 먼 길 떠나는 사람 보내듯 사설이 길구나. 너희들 7호실 환자 잊지 말고 자기 전에 꼭 처방대로 처치해 주고 하여튼 알아서 해. 정신 차리고 책임감 느껴서 해. 잠이 오면 눈에다가 지게 작대기라도 버티어놓고, 알았지?  알았으니 염려는 붙들어 매시고 잘 다녀오세요. 일단 이별을 고하고 한 십분 정도 걸어서 종로 사거리에 도착하니 오늘따라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검푸른 밤을 수놓은 듯 번쩍이며 그 빛을 드러내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방이 점차 어둠 속으로 잦아들고 있는 가운데서도 떠들썩하게 붐비고 있는 군중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춥고 어두운 이 밤, 저들은 다 어디로 갈 것인가? 그들의 목적지가 어딘지는 비록 잘 모르나 그들 역시 무척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차갑고 거센 바람이 휘몰아쳐서 바람이 한번 불적마다 지저분한 휴지 조각들이 이리 저리 흩날리고 계속 뽀얀 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하필 오늘은 외래환자가 너무 많아서 계속 환자들을 진료하고 나니 벌써 주위는 어둑어둑해지고 날씨는 춥고 마음조차 을씨년스럽기 까지 하여 집에 갈 생각을 하니 아득하기만 하였다.

   2                                                                 

  밤이 주는 마음은 나를 마치 집 없는 나그네인양, 고아처럼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도록 쓸쓸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어떤 석연 치 않은 불안감 속으로 나를 몰고 갔다. 내일이 음력 설날, 즉 초하루 날이니 오늘 그믐날 밤은 평소와는 달리 발걸음들이 부산스러울 수밖에------- 달리 설명을 할 필요조차 없이 기분이 들뜨고 묘한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드디어 버스 정거장에 도착해 맨 뒤에 줄을 섰다. 내 앞에는 연인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팔짱을 끼고 다정히 서 있었다.  그들은 술에 만취하여 오늘은 택시를 잡기 어려우니 시간만 낭비하지 말고 버스를 이용하자는 둥 조금만 기다렸으면 벌써 택시를 탔을 것인데 하며 잠시 서로의 의견이 엇갈리고는 있었으나 그들은 나름대로 야릇한 행복감에 도취되어 있는 듯이 보였다. 주위는 더욱 짙은 어둠 속으로 잦아들고 있었으며 그 어둠 속으로 수많은 무리들이 소리 없이 빠져들고 있었고 밤은 자꾸 어둠의 무게를 더해 갔다. 나는 길 잃은 이방인처럼 낯선 사람들 속에 홀로 서서 버스를 기다리며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고 그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초초해 지는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오른 손엔 핸드백을, 왼손엔 미리 장만해 놓았던 선물 꾸러미를 들고 서서 나는 생각 했다. 이 작은 선물들이 나의 가족들의 작은 행복을 위해 더 없이 귀중한 선물임을 새삼 느끼는 순간, 더욱 소중히 부여안고 버스 의자에 피곤한 몸을 기대고 앉으니 드디어 하루의 긴장이 조금씩 풀어지고 피곤이 물밀 듯 밀려 왔다. 그러나 나는 또 다시 광화문 네거리에서 버스를 갈아타야만 서대문 밖에 있는 우리 집에 당도 할 것을 생각하니 만약, 조금만 정신을 못 차리고 한 정거장이라도 더 간다거나 미리 내린다면 이렇게 어둡고 추운 밤에 정신없이 헤맬 것을 생각하니 새삼 불안한 마음이 들어 해이해지려는 정신을 가다듬고 정거장을 마음으로 더듬어서 드디어 광화문 네거리에서 내렸다. 평소에 익히 잘 아는 길이었지만 밤인지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갈현동 가는 버스에 오르고 나니 후유, 하고 안도의 한숨이 쉬어지고 한결 마음이 안정 되었다. 아까 보다는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버스 내부에는 듬성듬성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날씨가 제아무리 춥고 몸이 아무리 고단해도 막차를 타야만 하는 인생들!  정거장마다 버스가 승객을 토해내고 새로운 손님들이 오를 때마다 옷자락에서 찬바람이 인다.

   3                                                                 

  간밤에 영하 십 오도까지 내려갔다며?  간밤은커녕 지금도 영하 십오도 라던데, 승객 중 한 남자가 과장스레 몸을 후들후들 떨며 예쁘고 돋보이게 잘 포장된 선물 꾸러미를 겨드랑이에서 무릎으로 옮기며 하는 말이 여보게,

해마다 음력설 때쯤 되어서는 굉장히 춥지 않았던가? 둘 중 한 남자가 종전보다 더욱 유난스레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옆에 앉은 친구인 듯싶은 사람이 “자네 웬 선물을 그렇게 많이 샀는가.” 하고 물으니 여보게, 우리 집은 원래 대가족이 아닌가? 부모님을 비롯해서 여우같은 마누라에 토끼 같은 귀여운 자식들 몫까지 다 챙기다 보니 돈도 꽤 많이 들었네. 하며 그 신사는 양손에 선물 꾸러미를 각각 들고 일어서며 자, 나중에 또 만나세. 새해 복 많이 받게.  자네도 복 많이 받게. 하며 서로 다정스레 인사를 끝낸 후 그 신사는 은평 역에서 내려 총총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런데, 아까 종로 네거리에서 버스를 탈 때 같이 탑승 했던 총각이 아직도 내리지 않고 힐금힐금 자꾸 나를 쳐다보는 것이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내 신경을 더욱 더 자극 했다. 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그의 강렬한 눈빛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주 창밖을 주시하곤 했다. 휙휙 내달리는 차창 밖은 여전히 회오리바람이 일고, 밖은 점차 주위를 분간키 어려울 정도의 짙은 어둠의 굴레 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어쩐지 내 마음은 환한 불빛을 그리워하는 서글픈 심경으로 변하여 자꾸만 처량해지는 마음을 억누르며 버스가 정거장을 하나씩 지나칠 적마다 나의 보람을 하나하나 떨구어 보낸 듯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버스는 뒤 돌아볼 겨를도 없이 밤바람을 가르며 쉼 없이 달려 어느새 또 다른 정거장에 멎어서 손님을 꾸역꾸역 토해내고 새로운 손님을 한두 명씩 태우고 어둠 속을 계속 질주하고 있었다. 나는 동짓달의 악착같은 추위보다 더욱 오싹한 소름이 끼치고 또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퇴근 하여 병원 문을 나설 때부터 왼지 마음은 들쑤셔 놓은 벌집처럼 뒤숭숭하고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하는 원인 모를 불안감에 시달리는 내 자신에 은근히 울화가 치솟아 오르며 어찌해야 나의 이 불안한 심사를 후련하게 가라앉힐 수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허허로운 겨울 밤 풍경 속에 나는 갇혀 있었고, 내 마음 속엔 원인 모를 근심이 태산처럼 딱 버티고 서 있으니 아! 순간이 일생을 좌우한다는 말은 지금 이 순간을 두고 누가 미리 예견하여 지어 낸 말인 듯 무거운 무게로 나를 짓눌렀다. 아까부터 나에게 강렬한 시선을 보내는 그 남자가 어쩐지 마음에 불편함을 주었다. 나는 드디어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치지 않고 내렸다. 버스 정류소 앞 현대 극장의 네온사인이 황홀한 빛으로 밤거리의 손님들을 계속 유혹하고 있었으며, 나는 냉정하리만치 극장 입구에서 서성이는 인파를 무시한 채 발걸음을 집으로 재촉 하였다.

  4                                                                  

  진작부터 나를 힐금힐금 쳐다보던 그 사나이가 나의 옆으로 다가서며 저ㅡ 실례지만, 추운데 차라도 한잔 하시겠습니까?  순간,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당황한 나머지 저는 지금 시간이 없는데요. 실례하겠어요. 하고는 아예 상대방의 의견은 무시한 채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 했다. 그가 묵묵히 내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을 느끼며. 내가 문화의원 앞까지 왔을 때 그가 재빨리 내 옆으로 다가와서 하는 말이 젊은 사람끼리 차 한 잔 나누는 것이 무에 그리 나쁩니까?  나는 순간, 시비조로 나오는 그를 상대하고픈 생각이 전혀 없어서,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었잖아요?  내일 낮에 만나면 어떨까요?  내일이 음력 설날이라 지금은 우리 가족들이 저를 무척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안 돼요. 하고는 황급히 걸음을 재촉 했다. 나는 속으로 뇌까렸다. 이런 괘씸한 사람 같으니 지금이 밤중이 아니고 대낮이라면 그리고 내가 이 사나이보다 힘이 세다면 이런 경우에도 나는 당황치 않았을 터인데 하며 여하튼 지금의 이런 상황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마음속으로 강구하고 있는데 그가 밤의 악마처럼 계속 나를 따라오면서 케이크 상자와 통닭 튀김인 듯 한 봉투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 사실은 제가 이 근처에 있는 제 친구 집을 찾아 온 것인데요, 한밤중이라 찾을 수 없으니 대신 댁의 식구들이나 갖다 주세요. 하며 은근히 선물로 인심을 사려는 눈치였다. 제가 왜 남의 것을 받아요? 저는 그런 것 필요 없어요. 하고는 계속 따라오는 그를 보니 화가 치밀었지만, 밤거리의 찬바람보다도 더욱 내찬 모습으로 서둘러 뛰다시피 걸어가는데 그가 성큼성큼 다가와서 하는 말이 “일단 사나이가 뜻을 세운 이상 그냥 물러 설 수는 없소” 하며 차 한 잔 하자는데 왜 그리 도도 하십니까?  하며 내 앞을 가로 막으며 핸드백을 빼앗으려 들기에, 안돼요. 정 이러면 소리를 지르겠어요. 하자 나는 도둑이 아니오. 이 밤중에 소릴 지른다고 누가 나오기나 할 줄 아시오. 하고 오히려 내 팔목을 잡아 당기는 힘이 어찌나 센지 나는 아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왜 이래요. 이 팔 놓고 말씀 하세요. 나는 순간 꾀를 내었다.  저- 오늘은 이왕에 늦었으니 내일 만나지요? 하며, 제 직장 전화번호를 적으세요?  하고는 얼른 아버지의 직장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더니 하여튼 전화번호는 일단 적겠어요. 하며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서 수첩을 꺼내어 적는 동안에 나는 온 속력을 다 내어서 어둠침침한 골목길을 마구 달렸다. 아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만큼 빨리 달려 본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삼십육계三十六計에 줄행랑이 제일이라더니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달렸지만 어느새 쏜 살 같이 달려 와서 내 팔을 잡아당기며 내 속 좀 그만 태워요. 아가씨! 하면서 하는 말이 나는, 아가씨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그 어떤 운명적인 사랑을 느꼈어요. 나는 아가씨를 반드시 나의 아내로 삼아 평생 아끼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려고 결심했어요. 하며 나는요 절대로 아가씨를 그냥 돌려보내지 않을 겁니다.  이런 생떼가 또 어디 있을까? 술도 안 취한 사람이 이럴 수가---- 나는 그에게 빌다시피 말했다.  제발 저를 좀 보내 주세요. 내일 아침에 현대 극장 앞에 있는 약속다방에서 만나기로 할 터이니, 시간은 댁에서 정하세요. 하며 사정을 해 보았다. 하지만, 그는 나를 믿으려 하질 않았다. 내일 만나자는 것을 내가 어떻게 믿어요? 나는 정말 기가 막히었다.  점점 그의 거칠어지는 숨결소리를 들으며 버스를 탈 때부터 원인도 모르게 나를 휘감던 불길한 예감이 적중한 것을 깨달았다. 절망이 순식간에 밀물처럼 나에게 엄습해 옴을 느끼며 다급한 마음에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참지 못해 “사람 살려요” 하고 소리를 질렀으나 내 소리는 주위에 세찬 바람소리에 섞여 들어 얼어붙은 듯 의외로 모깃소리만큼이나 적어서 이 추운 밤에 내 목소리를 듣고, 나를 살리기 위해, 나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정녕, 춥고 어두운 밤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몸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렇게 머리끝이 하늘로 치솟고 몸이 오싹오싹 조여 오는 두려움은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혹여 이 사람이 강도로 변하여 나에게 예리한 칼이라도 휘두른다면----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순간, 내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지 않은가?  생각은 자꾸 부정적인 곳으로 가지를 쳐 나가고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어느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저를 이 악마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마음속으로 부르짖고 있었다. 밤바람은 윙윙 소리치며 허공을 가르며 지나치고, 밤은 시커먼 바위처럼 우두커니 대지에 머물러 이 두려운 어둠 속에서 나는 속으로 계속 부르짖었다. 당신의 생명으로 사랑의 등불을 밝혀 주소서!  내게 씌운 멍에는 억세나 이를 끊으려 허덕이는 내 마음은 너무나 괴롭습니다. 주님! 제가 바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이 악마의 손에서 저를 자유롭게 해 주시는 것뿐입니다. 주님!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

 

중략. (미주재림문학 제3집에서 전량 완독하실 수 있습니다.)

    11                                                               

   그 동안 현석씨에게로 향한 내 마음에 엷은 막이 드리워져 있던 것이,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봄볕의 안개처럼 서서히 걷히고, 봄의 양광이 밀려들어 오듯이 내 마음 속에 따스하게 자리 잡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 미련하고 무지막지하게 보이는 남성에게서 느끼는 결코 세련되지 못한 그의 투박한 모습에서 조금씩, 서서히 내 마음에 자리 잡는 정열어린 사랑의 그림자를 발견하였다.  비록 내가 먼저 그를 선택하거나 사랑하지 않았을지라도 상대방의 나를 향한 그 진솔하고도 열렬한 사랑에 도취되어 그 사랑 속에서 오히려 영원히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이미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던 생각으로부터 벗어남으로서 새롭게 이전보다 더욱 굳게 다져지는 결속 감을 정직하게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가장 햇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아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쪼그리고 앉아서 눈부신 봄볕을 흠뻑 쪼이며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순간, 현석씨가 나에게 다가와 다정히 내 손을 잡더니 그의 입술을 나의 입술에 포개었다. 그는 말없이 한동안 나의 상체를 포옹하며 혜경씨! 나는 이순간이 오기를 얼마나 고대했었는지 몰라요. 사실 혜경씨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이었어요. 혜경씨! 사랑해요. 나를 믿어 주세요.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떡여 주었다. 배고프지요? 혜경씨! 내가 이제부터 점심밥을 지을게요. 하더니 미리 준비해온 코헤르(독kocher)에 밥을 안치고 그 위에 돌을 얹어 놓고, 미리 준비한 재료를 섞어서 찌개도 맛있게 보글보글 끓여놓은 후 혜경씨, 등산 자주 가 보셨나요?  아뇨.  우리는 시장하던 차에 맛있게 점심을 먹은 후 같이 봄노래를 불렀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마음도 펴요-----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내 마음도 함께 따 가---주.  나는 이렇게 단순해 보이면서도 우직한 이 사나이로부터 나에게 전해지는 미묘한 사랑이 나의 가슴 깊은 내면으로 서서히 점령해 들어오는 것을 느끼면서, 연이어 고요한 희열과 사랑이 잔잔한 감동으로 일렁이는 것을 감지하면서, 나에게로 향한 현석씨의 진정한 사랑의 음성이 산울림처럼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으로 나의 내면 깊은 곳에 격한 파장을 일으키고, 다시 메아리 쳐 오는 것을 느끼며 일찍이 맛보지 못하였던 행복감에 쌓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들의 주위엔 오직 단 둘이 있었을 뿐, 우리의 사랑을 감시하거나 지켜보는 이도, 박수갈채를 보내는 이도 없었으나 오직 대 자연의 향연 속에서 산새들만이 우리들의 행복을 노래해 주었고, 봄바람은 경쾌한 왈츠의 리듬으로 연주 하였고, 그 향연은 그 어떤 아름다움과도 비교될 수 없는 풍요롭고 감미로운 마치 섬세한 무늬를 아로새긴 듯한, 예술 그 자체를 표현 하는 듯싶었다. 티 없이 베풀어 주는 대 자연의 환대 속에서, 마치 순간과 영원이 함께 어우러진 듯한 가슴 뿌듯한 “사랑의 밀어”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젊은 그들의 장래의 열망은 무엇일까?

  12                                                                 

  태초에 인간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를 닮은 한 쌍의 아름다운 남, 여의 모습! 분열을 상상 할 수 없는, 영- 불변하는 사랑의 극치는?------드디어 우리는 따스한 봄날, 수많은 하객들의 축복을 받으며 웨딩마치를 올리었다. 우리나라 전체와 미국의 한 주의 면적이 같다는 광활한 대륙! 드디어 그곳에 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은 설레고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한 달 후 태평양을 건너 LA 공항에 도착하기 전, 미국에 오는 비행기 내에서 LA상공에서 구름사이로 보이는 따스한 봄 햇살은 우리들의 희망처럼 눈부셨으며, 바둑판처럼 반듯한 대지에 성냥갑만한 집들과 셀 수도 없이 많은 조그만 차들을 내려다보면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과 감동과 새로운 소망으로 가슴은 벅차올랐다.

 

당선소감 

   금번에 저의 단편 소설 “치한과의 조우”를 미주 재림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선정해 주신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홀로 선 한 그루의 나무에 거센 바람이 스치고 지난 뒤 찾아 드는 그런 평정된 빈 마음자리! 영혼의 내면에 쌓여 가슴앓이 하던 무수한 언어들을 다 쏟아놓은 뒤의 후련함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늘이 저에게 허락하신 이 땅에서의 시간들을 더욱 비워진 마음으로 아름다운 영혼의 비상을 위해, 더 나아가 드넓은 문학의 광맥을 찾아 한층 더 노력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드립니다. 이젠 더욱 예리한 필봉의 깃을 세워 알찬 글을 쓰기 위해 노력, 정진 하겠습니다. 오래 전에 써 놓고 그 동안 부끄러워 음지에 숨겨 놓았던 졸작을 당선작으로 추천해 주신 심사위원님과 결의해주신 미주 재림문학 여러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Lee, Es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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