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재림문학 '신인상 공모' 수필 당선작 / 이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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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외 1 / 이연희
요란한 전화벨소리에 꿈속에서 헤어 나오면서도 누가 전화하는지를 나는 알고 있다. “여보, 혁환이 전화를 받아주세요.” 수화기 속에서 멀게 들리는 작은 소리는 “어머니 더 주무시라고 2시간 기다렸는데 12시가 넘으니까 피곤해서 그냥 했어요. 그곳은 너무 이른 새벽이죠.” 틀림없는 아들의 음성이다. 멀리 호주에 살고 있는 큰딸과 아들은 1주일에 한 번꼴로 전화를 한다.
큰딸아이는 “엄마 우리들이 전화하면 한 번씩만 하면 되지만 엄마가 우리한테 하시게 되면 세 번이잖아요. 그러니 전화하시지 마세요. 엄마 아빠 궁금하시기 전에 저희들이 전화 드릴게요.” 그래서인지 전보다 자주 전화를 걸어온다.
함께 한집에 살다가 ‘오래곤’에 두고 온 막내딸은 “엄마 지난번 했던 야채매운탕 만들기 전에 다시 설명 듣고 싶어요.” “엄마 나야, 손님들을 청했는데 메뉴를 못 정했어요.” “엄마 우리 오늘 나가서 늦게 와요. 전화하지 마세요. 돌아와서 전화 드릴게요.” 또 요사이는 말 배우는 두 살짜리 손녀까지 내게 전화를 해준다. 딸아이 말에 의하면 외할머니한테 전화한다고 아무 번호나 막 누르고 졸라대서 해준다는데... “할머니 우리 시장가요. 날씨가 좋아요. 바닷가 갔다 왔어요. 아빠 일 갔어요. 엄마랑 빵 먹어요. 맛있어요. 할아버지 바꿔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보고 싶어요. 언제와요.” 등등. 요즘은 “할머니 시간 없어요? 그럼 이만 바이 빠이.” 하고 쉬 끝내준다.
한국에 계신 시댁 형제들과 친정 언니 오빠께는 항상 내가 전화 드린다. 명절 때와 생신 때 말고는 안부전화와 보고 싶을 때 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 친구들은 내가 하는 그만큼 내게 전화를 해준다. 그들은 참 많은 이야기들을 하는데 비해 나는 별 할 말이 없다. 그네들은 지난날들의 추억을 더듬으며 친구도 세상도 많이 변했다는 요즘 이야기와 자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보다 30년 먼저 이곳으로 이민 온 한 친구는 1주일에 언제나 두 번씩 전화를 걸어온다. 또 ‘오래곤’엔 언제나 내가 기도해주고 전화해줄 것을 기다리는 한 사람이 있다. 나는 그분에게 1주일에 두 번 정도 전화를 한다. 자기를 교회에 데려다놓고 다른데 가버렸다고 가끔 불평을 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이분과는 통화를 끝내기 전에 기도하고 끝낼 때가 종종 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잊을 수 없는 내 친구요, 형제이며 자식들이다. 나는 이들을 사랑한다. 그중에서 내 자식들은 내가 가장 비중을 두는 내 구도자들이다.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시간과 경제적 이유만으로도 우리들의 만남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전화가 있기에 문제들을 알리고 정을 나누고 목소리를 들으며 보고 싶은 마음에 위로를 받는다. 인터넷이 널리 사용되고 있고 가격도 저렴하지만, 육성 목소리를 듣는 전화만큼 나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항상 전화를 이용한다.
나는 몇 개의 전화선을 가지고 있다. 외국엔 언제나 카드 전화를 쓰고. 타주에는 핸드폰으로 하고. 같은 지역은 집 전화로 한다. 이 외에 또 하나의 전화선을 갖고 있다.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나만의 직통전화선이다. 이것은 번호를 누를 필요가 없다. 잡음도 없을뿐더러 통화중이거나 시간제한도 없고. 기다리지도 않으며 요금도 없어 마음먹기 따라 가장 쉽고 편한 전화선이다. 이 전화선을 통해 내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내가 전화로 주고받은 사람들의 문제들을 성실하게 말씀드린다. 그 문제들이 해결될 때면 나는 충만한 기쁨과 감사를 서로 나누는 행복한 시간을 갖곤 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 전화선을 꾸준히 열심을 내어 이용하도록 장려한다. “엄마 아빠가 너희들을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은 한계가 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능력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한계점에 도달한 것 같다. 그러나 능력의 근원되시는 분께서는 너희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책임지고 인도하시고, 세상 끝날 까지 지켜주실 것이다.” 라고.
문명의 발달이 한 치의 공간도 남김없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운다 해도, 내가 즐겨 사용하는 전화선을 방해하는 어떤 요소도 없을 것을 생각하면 감격이 조용하면서도 힘 있게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넘쳐난다. 빛보다 빠른 이 전화선을 갖게 된 것을 어찌 감사하지 않을 건가. 세상에서 가장 편리한 이 전화선을 통해 가슴속에 잇는 바램들을 아뢰며 살아가련다. 힘이 없어 연약할 때, 슬픔으로 마음 아플 때. 근심 걱정이 나를 누를 때. 그리고 티끌에 잠들 이 몸을 다시 깨워 주시마고 확답을 주실 때까지, 나는 그것을 소유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누리며 그 큰사랑을 맛보아 알고 나누면서 살아가기 원한다.
거울
문 밖에서 남편이 함께 갈 곳이 있다며 어서 나오라고 재촉을 했다. 자동차 시동을 끄지 않고 기다리는 남편이 마음에 걸려 눈에 보이는 대로 재킷을 집어 들고 급하게 차에 올랐다. 어디를 가느냐고 물어도, 가보면 안다며 도착한 곳은 Good Will 이라는 중고품 가게였다. 어리둥절하며 따라 들어가 보니 남편은 중고책장을 사고파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하는 기대로 부풀었던 나는 펑크 난 타이어처럼 바람이 빠져서 싫다고 했다.
뒤돌아서서 나오려는 찰나, 반가운 사람이 저만치 다른 사람과 함께 보였다." 어머나 저분도 여기에 오셨네요." 하며 남편을 부르는 사이에 그분들도 우리를 보고 다가왔다. 그중 한분은 남편에게 시간을 내어 성경공부를 하겠노라고 하셨던 분이었기에 더욱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분들과 만남의 여운이 채 가기도 전에 등 뒤에서 남편의 소리가 들렸다. "여보 이 거울 좀 봐 커서 좋다." 나는 아무 것도 사고 싶지 않았다. 그려나 남편에게 두 번씩이나 매정하게 굴 수 있는 용기가 없어서 남편을 향해가면서 "크다고 좋은 거 아녜요. 예쁘기도 해야죠." 하며 거울 앞에 서 있는 남편에게 몸을 기대어 섰다.
큰 거울 속에는 남편보다 키가 작은 남자 같은 여자가 서있었다. 거울 속 그 모습은 세수를 하지 않아 부스스한 얼굴은 그렇다 치고라도, 추리닝 바지에 재킷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은 꼴이 한마디로 꼴불견 이었다. 순간 나는 방금 전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분들이 생각났다. 왠지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도 말을 끝맺지 못하던 이유, 내 차림세가 웃겨서 일거라고 생각하니 불현듯 창피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어머나 이 일을 어쩌면 좋아. 하필이면 왜 이런 꼴로 그것도 Good Will 가게에서." 안달을 떨었다. 집에서 거울을 보고 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무리 후회한들 소용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언제부터 사람들은 거울을 애용 했을까? 아주 오래전에는 잔잔히 흐르는 맑은 물속에다 자기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을까? 아니면 놋쇠를 광내서 사용했을까? 거울이 없는 시대에는 서로가 서로를 봐주지 않았을는지. 자기의 외모를 자기가 볼 수 없으니 얼굴이 더러운지 깨끗한지, 못생겼는지 잘 생겼는지를 다른 사람이 알려주지 않으면 몰랐으리라.
아무튼 지금은 집집마다 크고 작은 거울 몇 개쯤은 구비해놓고 사는 세상이 되었다. 신속히 발전해 가는 문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면 자주 거울에 자기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것이 생활화 되었다 해도 과히 틀리지는 않을성싶다. 그리고 보니 거울이 자기의 외모를 보여주는 중요하면서도 삶의 재미를 더 해주는 비중도 높여주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에 남편과 함께 마켓에서 아주 작고 예쁜 손거울을 보았다. 비록 은 도금을 했지만 자잘한 분홍색 꽃들이 타원형 모양을 따라 예쁘게 조각되어있었고, 세워 놓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어서 오라고 남편이 불러대도 갈 생각은 않고 "예쁘다. 예쁘다." 하며 만지작거리고 있노라니 남편은 두말 않고 그것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그 거울을 나는 즐겨 사용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크게 보이는 쪽으로 얼굴을 드려다 본다. 그 면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늘어나는 모공과 깊어지는 주름살, 하야케 변해가는 머리카락이 확대된 모양으로 나타난다. 젊은 날이 그리워 숨이 턱에 닫는다. 그러나 애달픈 늙음도 제일 좋을 때 모습으로 살게 해주신다는 약속의 문을 두들이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남편과 나는 서로를 자신의 거울로 여기고 속사람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을 시도한다. 서로의 부족함과 고쳐야 할 것들을 자신은 볼 수 없을지라도 옆 사람에겐 잘 보일 것이니까. 무엇을 지적 받을 땐 "아니야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거울은 거짓이 없다. 그 때 기분은 좋을 리 없겠지만, 속사람을 가꾸는 아픔이려니 하는 생각으로 감내한다.
"내 말에 귀 좀 기우려 봐요.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거울이잖아요." 웃음을 띠고 말하면, "십계명을 거울로 주셨지 무슨 소리." 표정을 굳이곤 하던 남편이 요즘은 내 말에, 당신의 거울은 나라는 것도 잊지 말라며 크게 웃는다. 오늘도 나는 속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그 거울을 생각한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꽃” 미당님의 그 시심으로 마음을 말갛게 헹구고, 크고도 중요한 일에 항상 인도해주심과 옆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생각하고 있다.
당선소감
기쁜 소식 향기에 취해서일까.......
믿어지지 않는 꿈같은 사실에 말문이 닫힙니다.
오랜 장마 끝에 보는 푸른 하늘의 햇살처럼
싱그러운 마음 윤기가 반짝입니다.
충신은 임금이 만들고 효자는 부모가 만들며
배우는 감독이 만들고 선수는 코치가 만든다는데.....
생각으로도 꿈으로도 그려본 일 없건만
오묘한 만남의 무게에 옷깃 여미어 머리 조아립니다.
변변치 못한 글을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과 임원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과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 묶어 드립니다.
(이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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