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줄 없는 두레박 / 박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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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 정해정)
줄 없는 두레박 / 박봉진
줄 없는 두레박을 본다. 안장 없는 말 같다. 누군가의 손에 줄이 잡혀있어야 몸이 바로 서는 두레박. 하다못해 제 줄이라도 밑바닥에 깔고 있지 않으면 품세도 거북스런 두레박이다. 줄 없는 두레박이 샘가를 떠나 있으면 누가 두레박이라 할까. 육지에 올라앉아있는 배처럼 하릴없이 옆으로 엎어져있는 두레박. 두레박은 반쪽 몸끼리 맞춰져야 하늘을 난다는 전설의 새 비익조(比翼鳥)처럼, 불완전을 타고나서 그럴까. 장기라곤 생김새처럼 양쪽 방향 어디든지 잘 엎어지는 것뿐이다. 그것도 말은 쉽지만 아무나 그리 되어지는 것은 아니란다. 쉽고도 어렵고 어렵고도 쉬운 것이 장기가 되는 세상, 그저 눈만 껌벅거려본다.
그 두레박은 둘 말아 올린 반 원통 함석에다 반원형 나무판을 양쪽에 붙였다. 그 위로 가로지른 막대기에 줄을 맬 고리를 달고 있는 볼품없는 물건이다. 흔한 재질에다 사람의 수공이 보태진 두레박이다. 산업세대 이전의 유물이라고 먼지를 쓰고 밀려나있는 두레박. 거동은 위태위태하지만 그 때문에 샘물을 쉽게 담을 수 있기에, 쇠테를 두른 나무물통 두레박이라든지 양철이나 고무로 찍은 들통 두레박 보다 총애를 받았던 두레박이다.
언제부터였을까? 깊은 샘에서 참 물을 퍼 올려야 하는 두레박이 엉뚱해졌다. 큰 바다를 건너 온, 줄 없는 두레박이 두레마을의 두레샘가에서 마구 딸각거리며 불티를 낸다. 보이지 않는 공간을 난다. 사람의 손과 손에 줄이 팽팽히 잡혀있었을 때가 살맛났을 두레박. 줄이 없어져서 달리 살아야 하는 삶을 알아차린 것일까. 글을 퍼오고 퍼주기도 한다. 그림과 음악도 퍼오고 또 퍼 준다. 두레박들이 토방에 모이면 문학 얘기로 줄을 꼬며 밤을 늦춘다. 이래저래 찌그러지고 가라앉기도 하는 두레박에 손을 써주는 고마운 두레박도 있다. 넉넉한 가슴만큼 너른 샘에 보름달을 띄워놓고 ‘달 샘’의 서정을 나눠주고자 하는 두레박도 있고, 목마른 길손에게 버들잎 띄운 찬물 한 바가지를 퍼 올려주고 싶은 두레박도 있다.
두레박은 샘과 사람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베틀의 북이다. 두레박이 있었기에 물을 가려 마셨고, 가린 물로 음식을 조리해 먹지 않았으면 어찌 되었을까. 그래서 두레박은 마냥 샘을 잊지 못하고 또 줄을 그리워한다. 샘은 산 역사의 고향이며 태어남의 산실이다. 그리고 두레박줄은 내 능력의 재원이며 귀한 인연들이 그 줄에 한 올 한 올 씨줄과 날줄로 엮여있다. 두레박이 어찌 스스로 샘가를 떠나며 줄을 풀어버릴 수 있었겠는가. 두레박줄은 보드라운 사람의 손에서 주름살의 손으로 옮겨졌다. 시골 마을에도 샘에 파이프가 꽂히고 샘 뚜껑이 덮였던 날, 점령군에게 무장해제를 당한 것처럼 두레박은 줄을 풀었으리라.
세상은 참으로 희한하게 뒤바뀌었다. 땅속 깊은 곳에 생수로 고여 있던 샘물이 언덕배기 물탱크에 올라앉아 있다. 집집마다 봇물 대듯, 두레박을 잡던 손들이 수도꼭지를 매만진다. 밑에서 퍼 오르곤 하던 물이 위에서 밑으로 흐르고 있다. 예부터 퍼 올린 샘물 인심은 후했지만, 흘러드는 봇물 인심은 설핏하면 물꼬 시비를 벌리고 아전인수(我田引水)로 시치미를 떼곤 하지 않았던가. 샘 같이 속이 깊은 사람, 샘물 같은 넉넉한 사람들을 어디서 만나며 사리사리 늘어뜨리던 두레박줄 인정은 무엇으로 잡혀주고 받아 쥘 수 있을까?
잊을 수 없는 샘가풍경을 기억 속으로만 더듬는다. 고향마을 샘은 동네 한 가운데 있던 석간수 샘이었다. 두레 샘이라고도 불렀다. 내면이 안방 넓이만 하였고 암석지반까지 파내려갔던 샘이다. 자연석으로 샘 안벽을 쌓아올렸고 지상엔 허리께만큼의 높이로 세면트 둘레 벽을 쌌었다. 그 샘물은 여름에는 이가 시리도록 차가웠고 겨울엔 물에서 김이 무럭무럭 났었다. 지금도 물동이를 이고 들락거리던 새댁들의 날렵한 맵시가 그려놓지 않은 풍경화로 아른거린다. 거기를 통해 집집의 소식들이 전해졌고 전해 듣곤 했다. 동네 길흉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누구네 집 담장안의 일까지 입을 탔다. 물씬물씬 사람 사는 냄새들을 풍겼으리라. 두레박줄 역시 처음엔 장대가 줄을 대신했던 적도 있었다. 장대 끝에 두레박을 매달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로프 줄에서 다시 나이론 줄로 줄이 바뀌어갔다. 두레박줄을 새 줄로 가라 맴에 따라 사람들의 옷차림도, 일용품들도, 사는 모양새까지도 달라져갔다.
이제는 두레박에 줄이 없다. 연줄 없이도 뜨는 연 같다. 땅속 깊숙이 내려갈 일도 없다. 샘물의 물길이 바뀌었듯 두레박 길도 수직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곤 했던 외길만은 아니다. 손가락 끝으로 깔짝거리기만 하면 세상 어디로도 종횡무진 내닫는다. 들이마셨던 숨을 내쉬어본다. 두레박이 묵시의 말을 한다. 사람을 사귀든, 운동을 하든, 글을 쓰든, 무슨 일에서든지 살 푼 미쳐야 한다고. 두레박처럼 자빠지고 엎어지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두레박에 줄이 매이고, 옛날처럼 두레 샘에서 참(眞) 물을 퍼 올릴 수 있다면, 첨벙첨벙 얼마든지 자빠지고 엎어지겠다. 무슨 일에서든지 살 푼 미쳐서 첨벙첨벙-.
수필과 비평 신인상. 한국정부 재외동포재단, 국제펜클럽,한국일보 주최 재외동포문학 수필대상.
경희대학 한국평론가협 주최 해외동포문학 수필최우수상. 재미수필문학협 회장 및 이사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회원. 수필집: ‘언제나 내 마음 바다에 살아’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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