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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재림문단에 바란다 / 김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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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 재림 문단에 바란다  /  김 동 준

 

    미주 재림 문인들이 뜻을 모아 하나의 문단을 만든 지도 해가 거듭되어 이제는 초창기의 어설픈 상황에서 벗어나 든든한 디딤돌을 마련하고 정해진 목표를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중요한 시점에 이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한 때 글쓰기를 좋아 하던 본인에게도 다시 기회의 문이 열려 회원의 한 사람으로 이 귀한 대열에 동참하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자신의 생각과 뜻을 소리 매체와 혹은 문자 매체를 통하여 자유롭게 펼칠 수 있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존귀한 특권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에 일반 문인들과는 달리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성도로서 우리의 시들지 않는 소망과 믿음을 접목시켜 활용하게 됨은 더욱 큰 보람이요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속한 세대는 기존 관념이 급속히 도태되고 온갖 새로운 주장과 설이 난무하여 각자가 지닌 신조와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자타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인본사상과 물질주의에 치우친 갖가지 타협 사조와 향락 선풍이 풍미하여 기세를 부리는가 하면 원칙론이 현실론에 밀려 먼저 와야 할 것이 나중에 오고 끝에 머물러야 할 것이 서두를 장식하는 등 시세는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문인 단체는 처음 발족하던 때의 그 순수하던 목적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가 하면 당장 목전에 나타난 손익계산에 현혹되어 본래의 궤도를 멀리 벗어나는 우를 범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재림 문단이 가야할 길은 어디인가 깊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글 쓰는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문학의 순수성과 품위를 견지하고 우리가 소유한 믿음의 도리를 감동 있게 전하는 복음의 매체 역할을 성실히 감당한다면 얼마나 큰 보람이요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미6:8)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생생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로서 글 쓸 때나 말할 때나 그 뿌리는 주님께서 보여 주신 선한 것에 기초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현 사회의 의식구조가 달라지고 가치관이 변질되었어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의 생활은 그 분께서 보이신 선한 원칙을 따라야 하리라 생각 합니다. 공의와 인자, 겸손, 이러한 것들이 재림성도의 생활강령임을 인식하고 문단활동의 근간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자칫 일반 문학 사조에 휩싸여 재림 문단의 존립 목적이 흐려지고 개개인의 사명감이 모호해지는 인상을 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너무 사물을 감지하고 서술하기에 급급하여 물리적 경향에 치우친 나머지 주님과 나 사이에 연결된 기본 고리 곧 우리의 신앙적 본능의 순수성과 진실성의 흠이 생겨서는 안 되리라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3:39)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들 각자는 어느 경우 어느 장소에 있든지 마음(Heart), 뜻(Mind), 목숨(Soul)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출되어야 할 것입니다.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your mind and with your heart and with your entire being" (Amplified Bible 참조)

   우리 재림 문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의 오심을 사모하는 문인들이 닦아 놓은 터전이니 만큼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그 영성이 깊은 전인적 소양을 다하여 그들이 쓰는 모든 작품에서 이 같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향기가 아름답게 구현되었으면 합니다. 회원 모두가 하나님을 첫째로 모시는 분들이니만큼 무슨 글을 쓰든 작품을 만들어 내든 우리의 믿음 본연의 자세가 은연중에 풍겨 나온다면 얼마나 큰 감동이 뒤따르게 될까요? 

   이것이 잠시 동안만의 반짝 쇼가 아니라 평생 동안 축척해 가는 과정이 된다면 쓰고 읽는 사람 모두에게 큰 축복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글 쓰는 동안은 현자가 된듯하다가 글쓰기를 멈추면서 그 처신이 흩어지고 어리석게 된다면 잠시 받은 감동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요 곧 잎이 시들해져서 땅에 떨어진 낙엽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환언하면 글 쓰는 이와 읽는 이 모두가 그냥 만들어 내고, 스쳐가는 감각적 접촉 행동으로 끝내지 말고 모두의 사고 속에 깊은 인상을 심으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믿음생활의 적절한 조화가 나타난다면 그것은 마치 비온 후에 죽순처럼 우리의 영혼에 참신함을 더해 주리라 믿습니다.

   일찍이 바벨론 이국땅에서 포로 생활을 하면서 뜻을 정하고 목적 있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높였던 다니엘처럼 오늘날 미국에 이민 와서 재림 기별을 전파하려는 사명을 가지고 우리 모두가 함께 주님을 높이면서 살아갈 때 분명히 그분께서 영광을 받으시리라 확신합니다. “Daniel purposed in his heart" (단 1:8)  우리들 각자의 심령에도 이런 글귀가 새겨진 상태에서 문학 활동을 전개한다면 얼마나 우리 문단의 위상이 높아지고 그 자질이 달라질까요? 결코 한 순간의 흐트러진 기분이나 충동에 사로잡히지 말고 주님께서 부여해 주신 본래의 문학 정서를 십분 발휘하여 우리의 재림 신앙과 연결시켜 나간다면 그 감동이 끼치는 파장은 끝이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글 쓰는 우리의 재능에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고 다만 문자만의 나열이 아닌 그 뜻에 영감이 더할 때 주님께서 이 시대에 요긴히 쓰시는 기구가 될 것이요, 매체가 되리라 믿습니다. 마치 십자가의 그림자인 성전 뜰의 번제 단이 네모가 반듯하였듯이 “너는 조각 목으로 장이 5규빗, 광이 5규빗의 단을 만들어 네모반듯하게 하여” (출27:1)]그리스도 안에서 긍휼과 진리가 만나고 의와 평화가 서로 입 맞추는 (시85:10) 구속 사업의 패턴이 우리 재림 문단에서도 실현되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이 시이든 수필이든 장편이든 단편이든 이름 있는 문단 데뷰에 성공한 작가이든 신인이든 우리가 나타내는 글귀마다 주님 섬김의 충실한 정신이 나타날 때 주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성서 문학의 꽃을 피운 전도자 솔로몬의 경우를 고찰해 봅시다. 그가 쓴 글이 “잠언이 3,000, 노래가 1005”(왕상 4:2)이었다니 얼마나 사물 관찰력이 뛰어나고 명철함과 사고력이 민첩하며 문장력이 탁월한 사람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본 생활이 헝클어지고 감정의 통로가 흐려졌을 때 다시 말하면 그의 사람 됨됨 (Being)이 부정한 정서에 치우쳐 잘못된 행동(Doing)으로 둔갑되고 보니 결국 무서운 함정에 빠져 뼈아픈 경험을 하게 됩니다. “왕은 후비가 700이요 빈장이 300인이라”(왕상 11:3) 이 얼마나 하늘처럼 높았던 화려한 권좌에서 끝이 안 보이는 심연의 나락으로 곤두박질하는 참상이요 비극입니까? 아무리 인간적으로 지혜가 특출하고 재능이 비범하다 해도 역시 사람은 사람임을 단적으로 보이는 성서의 기사로 여겨집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매 순간마다 결단을 요구하는 선과 악의 결전장에 서있습니다. 다음 기회가 또 있다고 항상 낙관적일 수만 없는 분기점에 당면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생활환경에서 우리 모두는 주님을 따르고 있음을 명심하고 문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다듬어 우리 미주 재림문인협회의 정관에 명시된 대로 확실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면 머지않아 내실 있고 풍요한 결실이 우리 앞에 나타나리라 믿습니다. 끝으로 재림 문인 여러분께 평강과 행복이 항상 임하기를 바라며 앞으로 주님의 뜻 안에서 결속하여 큰일들을 이루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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