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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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빗소리에 잠이 깨다.
부엌 쪽이 비가 새는 곳이 두어곳 있어서 양푼을 빗방울 떨어지는 곳에 두고,
다시 침대로 들어오다.
잠은 깼으나, 몸은 일어나고 싶지 않다.
생각의 날개를 펴고, 어린때 그당시는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는 정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며칠전 김평웅 장로님의 글.... 흑인과 오렌지.... 글에서 참 오랬동안 지워지지
않는 여운이 있었다.
오렌지의 그 새큼달콤한 맛이 아니고, 그 맛보다,더 맛있는 흑인 병사의 눈물~**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자며 헤어지는 아쉬움을 다시 만날 그때를 생각 하며 눈물 짓던
그 병사의 따뜻한 정이 지금의 내가슴에도 온기로 느껴진다.
사랑의 파장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 것인가 보다.
자연히 내 어린때의 이런 저런 일들이 생각이 나서 적어 보려고, 한다.
초등 학교를 9살이 되어서 들어 갔다. 그것도 3월이 지나고, 5월이 었으니
다른 친구들은 이미 학년이 시작 된지가 두달이 지났다.
서숙자 선생님이 1-2 학년을 담임하고 계셨다.
어린 나의 눈에도 선생님이 참 예쁘보였다.
부산에 산다고 하지만, 촌스럽기 짝이 없는 나에게 상냥하게 웃으시며
그때는 그것이 칠판인줄도 몰랐다. 검은 판에 글을 써놓으시고, 읽어 보라고 하신다.
어머니, 아버지 였다.
학교 문턱을 처름 밟았지만, 정상적으로 학교 갈때를 2년을 넘기면서
오다가다, 나도 모르게 글을 읽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 보다.
학교는 영주동이고, 내가 사는 곳은 산꼭대기 수정동 이라는 피난민 촌이었다.
학교 오가는 길이 족히 걸어서 한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그당시는 가난한 시절이라서 부부 싸움이 잣았다, 그것도 노상에서...
하루는 학교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부부가 길에서 싸우는데, 남편이 부인의 머리채를
잡고 있고, 부인은 남편의 바지 가랭이를 잡고"날 잡아 죽여라"고 소리치며 밀치고 당기고 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집으로 왔다. 그날 저녁 무엇을 잘못 했는지 엄마 한테 야단을 맞았다.
불현듯 낮에 보고 들은 부부 싸움이 생각 나서 아무 생각 없이 보고 들은 것을 엄마에게 흉내를 내었다.
날 잡아 죽여라 하고 엄마 한테 달려 들은 것이다.
그다음은 상상 하시라...
중학교를 경산 삼육으로 가게 되었다.
지금도 눈감으면, 아까시아 꽃피는 5월 이면 일요일 같은날 방청소를 하고 창문을 열어 놓으면 아까시아 향기가
어쩌면 그렇게 향기론지, 배고픈 배가 더 고파지는 것 같았다.
강당에서 시도 때도 없이 연습하는 피아노 소리....
그곡의 이름이 뭔지는 모르지만, 선배 되는 김 인주 언니가 피아노를 연습하기 전에 꼭 먼저 치는 곳이 있었는데...
하도 듣다 보니, 그곡이 아름답게 들렸었는데 안타깝게도 곡 명도 모른다.
그럭저럭 고등학생이 되었다.
식당 아줌마는 어쩌면 그렇게 기술 좋게 밥을 살살 피워서 주는지, 먹어도 항상 배가 고팟다.
그래서 여학생들은 설것이를 많이 도왔다, 설것이 해주면, 밥을 주기 때문에, 아마 그런 밥을 남기려고 기술적으로 밥을 적게 주었는지도 모를 일?
어느날 화요일 저녁 예배를 드리고 기숙사로 돌아 오는데, 영란(갑란)이가 내소매를 끌면서 자기 방으로 오라고 한다.
그때 영란이는 사감 선생님이랑 같은 고향이라서 선생님의 방 한칸을 얻어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방에 들어 가니 밥상위에는 꽁보리밥과 된장과 상추뿐인 저녁 초대 상이었다.
저녁은 이미 먹었는데도, 그꽁보리밥과 상추된장 쌈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밥상이었던 것 같다.
또 두 친구는 기숙사 방에서 콩나물도 키우고, 누예도 치는 친구가 있었다.
학교 끝나고 그친구 뽕따러 가면 같이 가서 뽕입도 따고 했다.
두 친구중 한 친구는 나이가 나보다 많아서 우리가 언니라고 불렀는데, 하루는 나에게 콩살 돈이 없어서 콩나물을 못 키운다고 한다.
콩나물 키워서 식당에 주면, 밀린 등록금 때문에 돈을 못받으니, 다음 콩나물 놓을 콩살 돈이 없다는 것이다.
그때 등록금 낼돈이 내게 있는데, 등록금 대신 친구 콩사라고 줘 버렸다.
그리고 서무 선생님께 불려 가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서무실을 나온 적도 있다.
내웃도리 교복은 중학교 들어 갈때 마춰 입은 것이 고등학교 졸업 할때 까지 입었고 그동안 한번도 드라이 크리닝도 한 적이 없다.
그 교복은 내친구가 나의 언니 결혼식에 참석한다고 차비하겠다고 전당포에 잡히고 기차표 사서 경산서 부산까지 왔었다.
그교복은 그 다음 어떻게, 누가 입게 되었는지, 지금까지 알길이 없다.
정이란 것이 더럽다는 말을 누구 하고 이야기 하면서 했다.
더럽다는 부정적인 말인 것 같지만, 그속에 진실은 정이 그만큼 가슴에 아름다운
아픔을 남긴다는 뜻이지, 냄새 나는 배설물을 피하고 싶은 그런 뜻이 아니다.
어느 분이 기도 하면서 글자에는 하나님의 눈에 고이는 눈물도 볼수 없고, 슬픔을 억제하는
음성도 없어서 사실 눈에 들어오는 문자만 읽을 수 밖에 없다고 기도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진정한 아멘이 내가슴 밑바닥에서 부터 떨려 나오는 경험을 했다.
정이 있었기에 흑인 병사는 자기 에게 매일 배당되는 과일은 안먹고 가난한 학생들에게 자져다 주었고, 자기 혼자 먹기도 모자라는 밥이라기 보다는 보리쌀 쌂아 놓은 것 같은 저녁을
차려 놓고 친구를 불렀었고, 정이 있기에 야단 맞을 것 알면서도 등록금 낼돈을 콩사라고
주어 버렸지... 누가 그런 정을 더럽다고 할 정신 나간 자가 있겠는가? 싶다.
그때는 육신의 배가 고팠는데, 지금은 그런 정에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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