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어머니의 기도와 검은 구름 / 윤재현 > 글동네

               어머니의 기도와 검은 구름 / 윤재현

   나는 탈북자다. 정확히 말하자면. 1951년 신록이 우거지는 5월 중순, 나는 백령도 건너편 인민군 해안경비대의 경비망을 뚫고 탈북에 성공하였다. 인천에 정착하여 한 미군 장교를 만났다. 그의 호의로 미군부대 군무원으로 취직되어 밤에 일하고 낮에 통학하는 야경주독으로 외국어대학을 졸업하고 용산에서 미 군사고문단의 안전고문관 통역으로 대한민국 육군의 안전관리업무 발전에 조언을 하는 일을 하다가 가족과 함께 호놀룰루로 이민했다. 배운 것이 안전관리뿐이라 하와이 주 노동국의 직업안전과에 지원서를 제출하고 임시로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 나섰다.

   신문에서 식당 부 매니저의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이 와이키키의 Hilton Hawaiian Village안에 있는 철판구이 전문 식당 Benihana of Tokyo다. 매니저는 일본말을 좀 하는 나를 부 매니저로 즉석 채용했다. 그런데 말이 좋아 부 매니저지, 실상 월급은 쥐꼬리만 하고 손님안내, 계산서 정리, 심지어 접시닦이 까지 하는 잡역부였다.

   가장 힘들던 일이 접시닦이였다. 필리핀계 접시닦이가 꾀를 부리고 나오지 않는 날은 내가 혼나는 날이다. 무거운 접시와 씨름을 해야 되니.... ‘스테이크는 무거운 접시에 담아 먹어야 멋과 맛이 있나?’ 하는 불평을 하면서 한증막 같은 구석방에서 고무 앞치마를 두르고  접시를 세척기에서 한참 빼내다보면 물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처럼 옷이 땀으로 젖는다.   ‘내가 왜 이걸 해야 되나? 바로 옆의 와이키키 해변에는 구리 빗 남녀들이 알로하 음악 속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데. 나는 이 찜통 속에서 땀을 흘리고 있으니. 지상 낙원에도 지옥이 있구나. 오늘이 마지막이다.’하는 생각을 날마다 했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또 이 식당으로 나왔다. ‘주 정부에서 소식이 올 때까지 참아야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에겐 고통을 참는 저력이 있다. 생지옥 북한에서의 체험이 그것을 키워준 것이다. 1951년 봄 중공군의 춘기공세로 유엔군이 후퇴하자 내무서원들이 공산(노동)당원과 그들의 가족을 학살한 반공 청년단 소위 치안대원들을 체포하려고 혈안이 되어 우리 동내를 포위하였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방 아랫목에서 볏단을 놓고 새끼를 꼬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군화 소리가 나더니 창호지 방문이 벌컥 열리고 새까만 세모꼴 총창이 불쑥 들어온다.

   그 뒤로 내무서원이 들어왔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총창으로 사람이 숨어있을 빈칸이 있나 종이 천정을 몇 군데 찔러본다. 그리곤 옷장 서랍을 빼고 그 뒤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뛰어나갔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내가 천연스럽게 새끼를 꼬고 있기를 얼마나 잘 했나. 내 둔한 머리에서 어떻게 그런 아이디아가 나왔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 겁에 질려 갈팡질팡 했더라면 나는 총살되거나 체포되어 끌려갔을 것이다. 그 후로 불안해서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어서 집 옆에 파 놓은 땅굴 속에 몽금포에서 온 목사님과 숨어 있었는데, 하루 저녁 반공 유격대를 나르는 배가 어느 선창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어머니가 전해 주셨다.

   어머니에게 유엔군이 다시 북상하면 30일 이내에 돌아온다고 약속을 하고 좁쌀 한말을 메고 그 선창으로 갔다. 어머니는 내가 떠나는 것을 보겠다고 나를 따라오셨다. 바로 앞의 사람이 희미하게 보이는 어두운 밤이었다. 그 선창에는 임무를 마치고 기지로 귀환하는 유격대원들이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큰 소리를 낼 수 없다. 인민군 해안 경비대 초소가 바로 건너편에 있기 때문에.

   수일 전 가까운 산 정상에서 해안 경비대와 유격대간 총격전이 있었다. 바지저고리에 무장도 제대로 가추지 못한 어린 소년들이 어떻게 막강한 인민군과 싸울 수 있었을까. 신기한 일이다. 신뢰에 바탕을 둔 정신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잠자리비행기(헬리콥터)와 지네발처럼 많은 바퀴가 달린 트레일러를 끄는 트럭과 원자폭탄을 나르는 하늘의 요새 B29로 무장한 유엔군이 반드시 짧은 시일에 돌아올 것으로 우리는 믿었다. 

   어머니는 나의 손을 꼭 잡고, “네가 사는 길은 이남으로 가는 것이다. 너를 위해 기도해줄게,”라고 마지막 귓속말을 준 골짜기의 선창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어디서 인민군이 나타날지 모른다. 드디어 배는 떠났다. 행선지는 백령도보다 가까운 초도였다. 전쟁 당시 유엔군이 유격대 기지와 레이더 기지로 이용하던 작은 섬이다. 우리는 삐걱 소리를 침묵시키려고 바가지로 바닷물을 떠서 노축과 원통에 부어가며 노를 저어 좁은 해협을 빠져나왔다.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바다로 나오니 마침 바람이 잘 불어 순풍에 돛을 달고 어느새 초도에 도착했다.

   그 섬은 피난민으로 넘쳐흘렀다. 난민수용소 같은 것이 없다. 할 수 없이 양지 바른 언덕에 나무를 베어 기둥을 세우고 억새풀을 덮어 움막을 만들었다. 어설픈 피난민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산에 올라가 나물을 뜯고 바닷가에 가서 파래를 뜯어다 국을 끓이고 조밥을 해먹었다. 좁쌀이 떨어질 무렵 안남미 배급이 나와서 굶지는 않았지만 쥐를 쫓기 위하여 쌀 포대에 뿌린 석유 때문에 냄새에 질려 코를 막고 밥을 먹었다. 의식주 가운데 먹고 자는 것은 그런대로 해결되었지만 갈아입을 옷이 없다. 입은 옷 그대로 집을 떠났으니. 세탁할 물이나 비누도 없고. 이가 꼬이기 시작했다. 머릿니도 생겼다. 깔끔하신 어머니 손끝에서 자란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죽어도 좋으니 어머니가 계신 곳에 가서 죽자,’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북한으로 가는 반공 유격대 배가 있어 그 배를 얻어 타고 초도를 떠나 항해하던 중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장산곶 마루에 지는 해가 검은 구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선장은 손가락으로 장산곶을 가르치며, “저 구름은 폭풍이 올 징조니 못갑니다, 배를 돌려야합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초도로 돌아갔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다. 아니 생사의 전환점이다. 어머니 기도의 힘은 기적을 이루었다. 하나님이 검은 구름을 보내서 생지옥으로 가던 나를 구출했다고 나는 믿는다.

   하루는 매니저가 불러서 갔더니 나에게 웃기는 말을 한다. “Charlie(나의 별명), Rocky Aoki (Benihana of Tokyo 회장으로 2008년 작고)가 어제 저녁 암행시찰을 왔다가 현관에서 굳은 표정으로 손님을 안내하고 있는 당신을 보고 당신을 해고시키래.” ‘내가 일본식당에 취직을 하기를 잘못이지. 일본사람들은 어떤 근심이나 걱정이 있어도 손님들 앞에서 웃는 사람들이니까,’

   “잘 됐네, 그렇지 않아도 그만둘까했는데,”라고 대꾸했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대고, “걱정 마, Charlie, 내가 잘 말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자고 했어.”  “No thank you,”라고 나는 뱃장을 부렸다. 매니저는 사정을 한다, “나를 좀 봐 줘, Charlie, 우리는 지금 부 매니저가 모자라.” 나는, “알았어, 생각해 볼게,”라고 얼버무렸다. 나의 속셈은, ‘주 정부에서 소식이 올 때 까지 있을게’였다.

   매니저는 나에게 웃는 연습을 해보라고 부탁한다. 다음 날 아침부터 거울 앞에 서서 웃는 연습을 했다. 연습을 하다가 아내한데 들켜서 둘이서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별짓을 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웃음이 어떻게 억지로 나오는가. 웃음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연습한 웃음을 써볼 겨를도 없이 하와이 주정부에서 채용통고가 왔다. 주 직업안전과는 안전규정계, 교육계, 단속계로 구성되었다. 나는 가장 인기가 없는 단속계의 안전 단속반원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Compliance Officer)으로 채용되었다.

   주로 개인 기업체나 공사장을 검열하여 안전규정을 준수하는가를 검열하고 위반통지서와  벌금을 부과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누구를 단속하거나 벌금을 부과시키는 일을 싫어한다. 특히 소자본으로 간신히 운영하는 영세업체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어떤지 나에게도 취업의 기회가 왔으니 하여간 열심히 해야겠다. 초기 실무 교육을 마치고 첫 안전 검열을 나간 곳이 붉은 흙먼지가 불고 달착지근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파인애플 밭을 지나 Waipahu에 있는 아파트 건설현장이었다.

   그 공사장에는 웬일인지 일하는 사람이 없었다. 기웃거리다 보니 몸집이 큰 하와이안계  목수가 이층의 기둥 사이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웃통을 벗은 상태였다. 건설공사장에서 웃옷을 입지 않는 것은 주 안전규정 위반이다. 현관으로 걸어가 나는 위를 바라보며 배지를 들어 보이고, “주 노동국 안전검열관인데, 당신 웃옷을 입으시오.”라고 소리쳤다. 그 목수는 나를 한참 째리고 보더니, “You, son of bitch, get a fxxx out here, or I'll smash your brain with this.”라고 망치를 번쩍 드는 것이었다. 저놈을 어떻게 해야돼나. 싸우지 않으면 도망가야 한다. 후자를 택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우니까.

   나는 그 곳을 빠져 나와 사무실에 가서 그 사건을 단속계장에게 보고했다. 일본계이고 항상 미소를 띠우는 그는 피식 웃으면서, "망치로 마잤냐"고 물었다. "아니요"라고 했더니, “맞지 않았으면 됐지,”라며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일본말로 “헤이기 (平氣)”다. 내 생각으론 ‘이것은 분명히 공무방해며 신체 위협을 준 것인데. 하와이는 무법천지인가. 과장에게 보고할까.’ 생지옥 북한을 연상하며 억울함을 참았다. 주 정부는 될 수 있는 대로 원주민들과 마찰을 피하려고 한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하루는 단속계장이 불러서 가니, “미스터 윤, 그 동안 수고 많이 하여 선물을 하나 주지.” 나는 무슨 물건을 주는가했더니, 그의 말이, “큰 섬의 Mauna Kea산에 다국적 천문대를 검열해야 되는데, 당신이 다녀와. Hilo에 검열해야 될 업체가 또 하나 있으니 2박 3일 출장이야.” 참고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기는가 보다.

    Mauna Kea는 눈이 쌓여있는 날이 많아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White Mountain”으로 불리며 바로 아래의 활화산 Mauna Loa와 쌍축을 이루는 靈山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4륜구동 지프를 타고 두 산을 가로 질러는 “말안장 길” Saddle Road를 따라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날씨가 일 년 가운데 300일이 청명하여 공기가 맑기로 세계 최고지만 고산증세로 숨이 가쁜 것을 느꼈다. 자동차나 사람이나 산소가 희박하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 Onizuka Center (우주선 탑승원으로 순직한 일본계 하와이안의 이름을 따서 지음)에 들러 고도적응 휴식을 약 한 시간 취하고 건축 공사장에 도착했다. 그 천문대는 풍부한 자금으로 운영되고 안전관리업무가 거의 완벽하여 안전법규 위반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안전검열을 끝내고 공사장 옆의 벤치에 앉아서 향긋한 Kona 커피를 마시면서 사방의 광활한 하늘과 끝없는 태평양을 둘러보았다. 두 팔을 올려본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Mauna Kea는 바로 천당 밑에 있다. 천당이 손에 잡힐 것 같다. 구름을 움켜잡고 턱걸이를 하여 올라가 보고 싶다. 지상낙원에도 천당과 지옥이 있구나. Benihana of Tokyo엔 지옥이 있었는데. 그리고 이 태평양 끝 북한에도 지옥이 있다. 그 지옥에서 신음하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 아직 살아계시는가요?  어머니! 이 자식은 잘 있습니다. 어머니 기도의 힘으로 저는 북한으로 가지 않고 지금 Mauna Kea 정상에 올라와 있습니다......       

미주시조사 30주년기념 문예공모 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