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기적이 울려오면 / 정영근
페이지 정보
본문
기적이 울려오면 / 정영근
잠자리에 누워 곤히 잠들라치면 꼭 이맘때쯤 아기 보채듯 은은한 기적이 먼 곳에서 들려온다. 가까워졌다가는 다시 멀리만 가고 마는 그 기적의 소리가 사뭇 마음에 아쉽게 감돈다. 잠시 적막 속 그래도 여운이 간지럽고 반갑다. 도대체 기적은 어디를 가고 누구를 찾기에 저렇게도 헤매며 허공에 큰 소리할까. 사람에게는 일종의 영감 같은 것이 있단다. 날 찾는 걸까. 날 찾다가는 못 찾는 날엔 얼마나 멀리까지 호호~ 소리를 불어대며 찾고 또 찾는 것일까.
그러면 그렇지! 이제 상념에 잠긴 내 맘은 무슨 쇠줄을 타고서라도 휙 하고 금세 간 건지 그 옛날 그리운 내 고향을 찾아 마구 헤맨다. 그리고는 뜻밖에 엄마랑 함께 항시 고요 속에서 듣던 그 먼 데 기적의 소리를 듣는다. 아, 감칠맛 나게 그대로의 그 소리가 역역하고 아련하기만 하다. 요사이 채색화 열차는 껍데기도 머리통도 많이 달라졌건만 그 소리는 변한 데가 없더구나. 그건 날 위한 걸까. 상냥한 네 기적의 그 소리는 오리 동골 사연을 꿰고 내 마음을 다 꿴 것이 아니더냐. 그리고는 내 마음을 이리도 진한 향수로 달래는 거겠지.
사랑하는 내 엄마는 그때 나직한 음조로 이렇게 긴하게 말했다. ‘한사코 먼 곳 기적의 소리 들려오면 지체 없이 날 잠에서 깨우려무나. 네 형 깨우고 기차통학 시간 늦지 않게 해야 하지 않겠니. 늘 상 그랬다. 이때 마다 엄마 모습은 정겨웠고 피곤해 보였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는 간 데 없고, 형마저 간 데 없다. 이젠 사뭇 달리 공허한데 여전히 기적은 울리는 것이구나. 세월이 무상하구나. 무상하고 무상하다. 그런 대도 촌각도 변하지 않은 네 그 기적의 그 소리를 나 홀로 듣는구나. 시베리아의 기적소리도 꼭 같다지 뭐더냐. 아마도 방황하며 날 찾는 네 기적을 거기까지 울리고 또 울렸더냐.
수년 전 머나먼 고향엘 갔었다. 난 나도 모르게 그 기적을 울리던 녹슨 두 줄 철길 따라 한없이 걷고 걸었지. 무심결에 걷고 걸었다. 사랑하는 내 어머니와 형을 몹시 그리워했단다. 눈물 나게… 어릴 적 우릴 흔들어 깨우던 그 기적, 난 그 기적의 소리가 몹시도 그립구나. 기적아~, 이젠 내 믿음 내 정신을 흔들어 깨우려무나. 내 생각엔 사랑하는 주님이 오실 때 꼭 네 기적 울리면서 올 것만 같구나. 이땐 그리운 어머니도 형도 바로 거기에 있겠지! 그러겠지. 그래서 이 기적을 지금도 울리면서 부산하게 날 깨우고 있는 거겠지.
- 이전글{시} 그가 인도하시네 / 이상철 11.02.02
- 다음글{시} 그리움 11.01.2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