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입양아 에스코트 중에 만난 사람들 / 김평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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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나가 있을 때 일이다. 미국에 갈 때면 집사람과 나는 입양아 에스코트 서비스를 이용했다. 홀트양자회를 통해 미국에 입양된 어린아이들을 양부모에게 데려다 주는 일이다. 소액의 돈만 기부하면 왕복 비행기 표에 미국 내에서 목적지 이외의 한 지역을 경유할 수 있게 편의를 봐줬다. 미국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친척들을 방문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이 서비스를 자주 이용했다.
떠나기 며칠 전 양자 회에 가서 여행 일정과 기내에서 아기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등을 자세히 교육 받는다. 어떤 아이를 데려가게 될지는 출발하는 당일에야 알게 된다. 순한 아이를 맡게 되면 한결 쉽지만 반면에 낯을 가리거나 잘 우는 아이를 맡게 되면 장시간동안 여간 힘들지 않다. 그래도 혼자 가는 것보다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는 삶의 경험을 쌓으며 갈 수 있어 우리는 이런 기회를 자청했던 것이다.
한 번은 생후 5개월 된 잘 생긴 순한 아이를 맡아가게 되었다. 간호사인 집사람은 얼핏 보기에도 얼굴이 노랗고 야윈 선천적 소화 장애아를 맡아 약봉지와 특별한 우유를 지급받고 사용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동행할 다른 여자 분은 예쁘게 생긴 여아를 데려 가게 되었는데 어려움이 예상되는 일이 우리에게 맡겨졌다.
산 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자 우리를 마중 나온 자원봉사자들이 반갑게 아이들을 받아 따로 입국수속을 마치고 목욕시키고 돌보는 동안, 우리는 수속을 마친 후 다음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잠시 쉴 수 있었다.
얼마 후 대기실에서 데려온 아이들을 안고 있었는데 어떤 준수하게 생긴 미국 청년이 들어왔다. 사방을 둘러보던 그는 우리 일행 셋을 보고 곧바로 집사람에게 다가가 입양아를 에스코트하느냐고 묻고는 얼굴에 황달기가 있고 병색이 짙은 아이를 안아보겠느냐고 했다. 무릎에 앉히고 재미있게 놀아주었는데 잘 웃지 않던 아픈 애도 따라 웃으며 한참 동안 좋은 시간을 가졌다가 넘겨주었다.
대합실의 많은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입양아를 알아보고 또 예쁘게 잘 생긴 아이들을 제쳐두고 병약한 아이를 골라 저렇게 사랑을 퍼부어줄까? 분명 일반 사람과는 달리 보였다. 궁금증이 더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안고 있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자기 동생들 셋이 다 입양아라고 말했다.
그의 부모님은 아들인 자기만 키우다 고아들을 데려다 양육하고 싶다며 셋이나 차례로 데려와 같이 자랐는데 모두가 장애아들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순간 나는 주위가 환해지며 어떤 새로운 빛을 보는 것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참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의 눈에는 불쌍한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잘 알아본다는 것과 그러한 사랑은 누군가에 의해 잘 배우고 몸에 배도록 실천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비행기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시골 작은 공항에 도착해 출구를 빠져 나오자 양부모의 일가친척 친구들하며 여럿이 마중 나와 있었다. 애를 안고 저들 앞에 나타나자 모두들 박수를 치며 반갑게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사진과 비디오를 찍고 서로 돌아가며 안아보고 좋아 어쩔 줄 몰라 한다. 병약한 아이를 안은 양부모도 감격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아이들의 장래를 걱정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예쁘니까 그리고 나를 기쁘게 해 주니까 또는 내게 유익이 되니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에게 아무런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조건 없는 사랑을 펴는 그러한 사람들임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한낮의 많은 사람들 눈에는 잘 띄지 않으나 ‘야래향’이란 이름의 식물은 어두운 밤일 수록 자지잔 꽃들에서 더 짙은 향기를 뿜어낸다. 이다음 또 입양아를 에스코트할 때는 어떤 아이를 맡게 될는지. 또 어떤 향기를 지닌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은근한 기대에 마음 젖어들었다.
월간 '한국수필' 신인상 등단. 재미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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