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삶의 여정} 삶의 방향 재조정-은퇴 / 유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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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향 재조정-은퇴 / 유재상
많은 사람들은 은퇴와 노화를 동의어로 이해하기 때문에 나이든 사람끼리 주고받는 대화중 생각 없이 하는 말은 늙으면 죽어야지 한다. 늙으면 죽는다는 말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나는 용산역 대합실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가르치는 선교학교와 같은 구내에 있는 살렌 빵공장에서 만든 통밀 빵 몇 쪽과 배추 속잎 몇 장으로 된 식단이었다. 비록 검소해 보이지만 내가 즐기는 식단이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 혼자만의 식사 때면 거의 빠짐없이 대하는 밥상이다. 그 진미에 한참 취해있는데 노숙자로 보이는 몇 사람이 내 옆으로 모여들더니 거의 비스듬히 드러누운 자세로 나의 식사를 쳐다보았다. 그 중에 채 50이 안되어 보이는 한 장정이 입을 열었다. 사람이 늙으면 죽어야 해 극히 자연스러운 순리의 말이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꽤 기발한 명언이었다. “호박은 늙으면 죽이라도 쑤어 먹지만 사람은 늙으면 어디에 써?” 비록 명언이기는 하지만 나는 약간 불쾌했다. 그러나 솔직히 항의할 마음은 전혀 없었고, 조금 서운한 것뿐이었다. (천세원 -시조 2010년 3월호)
나도 천목사님의 말에 동의하면서 좀 중얼거림이 양해된다면 이렇게 쓰고 싶었습니다. 그 젊은이가 쏟아 놓은 그 말이 우리 사회가 늙은이들에 대한 생각의 집약된 표현이라면 늙은이들의 설 땅이 없구나하는 생각으로 서글펐다. 이젠 나도 은퇴 곧 늙은 사람이 되었구나 하면서 피하고 싶은 두 가지가 있다면 건망증과 치매 증세이다.
나이가 들면서 두려운 생각으로 피하고 싶은 증세는 달갑지 않게 찾아오는 건망증과 치매 증세이다. 건망증은 예를 들면 흔히 늘 쓰이는 집 열쇠나 자동차 열쇠를 어디다 놓고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찾아 헤매는 증세인데, 그것은 찾고 찾으면 찾을 수 있는 정도의 약한 실수이지만, 치매 증세는 좀 더 험한 증세로 자동차를 운전해서 어디엔가 다녀와서는 그 열쇠로 자동차문을 잠그고 돌아 서서는 이것은 어디다 쓰는 물건이지 하면서 중얼거린다면 그런 심각한 현상을 치매현상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평생 목회 현장에서 신자들로부터 받았던 존경심이나 신뢰심이 은퇴 후의 내 생활의 변화로 나에 대한 신뢰심이 무너져 내리고 혹시라도 나 때문에 누군가가 신앙의 길에서 넘어지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생길까봐 조심스런 부담감을 갖고 내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어느 존경받던 대학 교수가 은퇴한 뒤에도 대학 교정 안에 사무실을 가지고 싶어 해서 대학 당국은 그 교수님의 무게에 걸맞는 사무실을 하나 마련해 드리면서 그 교수님도, 대학 당국도, 학생들이 노 교수의 도움을 얻고자 밀려 들것이라고 생각한 일이지만 그것은 피차간에 착각이었습니다. 기대와는 정 반대였다. 은퇴자는 서글픈 일이지만 빠르면 빠를수록 자기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 한다.
또 어느 한 은퇴자는 이런 말을 했다. 내 인생 만년에 이르러 드디어 한 해답을 얻었지만 내게 그것을 묻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한 이도 있다. 은퇴하면서 변화된 생활에서 오는 단면을 몇 가지로 적어 본다.
1. 내려놓는 기쁨
은퇴란 소위 자아를 죽이고 자신은 없는 무의 상태로 돌리는 것인데 그 일이 그리 쉽지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새 은퇴한지 두해가 지나갔다. 은퇴 전후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비교해 보면 아마도 은퇴 후의 시간은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시간인양 유수와 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만 같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9-10). 시간이 날아가도 신속히 날아가는 것이 아니고 빛을 따라 날아가는 것 같다.
2. 나의 진모를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바울의 고백처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 네게도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일뿐이다. 모든 체면과 환상을 벗어 버리고 가장됨 없이 정직하게 자신에게 직면할 수 있는 은혜. 무엇인가를 행하는(doing)인간이 아니라, 그저 사람다운 존재(being)임을 발견할 수 있어서 감사 한다. 현직이란 말은 관계된 기관이나 혹은 교회에서 일정한 보수를 줌으로서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동료 친구관계를 맺어주고, 또한 일정한 지위와 역할 부여함을 받고, 성취하는 일에 따라 인정도 받으며 일을 통한 창의성을 발휘하고, 자기실현과 표현할 기회를 갖게 마련인데. 은퇴함으로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게 되는 심리적, 정신적 상실감은 경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하루아침에 갈 데도 없고 오라는데도 없는 무용한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이 치료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10년 넘게 아침이면 의례히 교회 사무실에 일단 나가서 교회 안팎을 눈으로 살펴보고, 그 다음 자기 책상에 앉아서, 하루의 일과를 챙기면서 앤서링머신을 체크하여 필요한 전화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고, 기도로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그런 목회 생활을 나는 인턴 시절부터 예언의 소리 성경통신학교, 방송실, 한국연합회장님을 모시고, 또 잠시 동안 연합회 종교자유 부 차장으로서의 역할, 그리고 일선 교회를 맡으면서도 가는 교회마다 교회 사무실이 있어서 그런 생활에 매우 익숙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일에 익숙했던 처지에서 은퇴를 하고 나니 갈 때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는데도 아침 식사 후면 집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마치 김유신의 애마처럼 자신도 모르게 자동차를 타고 교회를 향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다행이 교회 Parking Lot에 차가 없으면 차안에서 내려 숨을 고루고 집으로 돌아가고, 혹시라도 Parking Lot에 자동차가 서있으면 얼른 차를 돌려 집으로 가면서 내가 정신이 있나 하면서 자책한 적이 있었다.
3.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행복감
모든 사람들은 자기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을 터이지만 나는 평생 설교 스트레스 속에서 살았다. 어느 분은 설교준비가 무슨 스트레스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나는 어떤 때는 설교 준비를 위해 하루 밤을 꼬박 샜는데도 설교 정리가 되지 않아 안식일 아침까지도 전전 긍긍한 적도 있었다. 이런 불쌍한 목사를 붙잡고 계셨던 하나님 아버지는 너무나도 좋으신 분이시며. 이런 목사의 설교를 듣고도 쫓아내지 않고 은퇴하는 그 시간까지 밀어주신 교우님들이 너무나도 고마워 은퇴하는 날 마음으로 울었다
4. 자유의 맛도 참 좋은 편이다
남들이 원하는 각본에 따라 살지 않아도 되고, 그것을 옆으로 밀어 둘 수 있는 자유, 우리는 어쩌면 다른 사람이 치는 북에 맞추어 행진해 왔는데 이제는 틀에 박히지 않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 너무나도 좋다 2년 전 5월10일 현직에서 물러서면서 집사람과 첫 번째 나들이 한곳이 쌘프란시스코 중심가에 있는 자이언트 야구장이었다. 요즘은 그 구장을 AT&T Park이라고 한다. 그날 야구 경기는 SF 자이언트 팀과 휴스톤 팀이 한판 승부를 벌리는 시합이 있었는데 아들이 준 진바지를 입고 방석을 들고, 다른 손에는 군것질 할 것도 사서들고 둘이 나란히 앉아서 보면서 왜 유목사님은 일과시간에 야구 경기를 구경을 왔지 하는 얘기 정도에서 이미 나는 해방되었다는 그 기쁨이 있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휴가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어리석은 존재였습니다. 그동안 중국을 여러 번 다녀왔지만 그때 마다 휴가를 이용했다. 만약 공식 출장을 가겠다고 하면 초청자는 누구냐, 가서 무엇을 할 거냐? 보험료는 누가 낼 것이냐 등등 그런 행정적인 절차가 힘들고. 만약 말없이 나갔다가 사고라도 당하면 문제가 생길 것이기에 휴가 신청을 하고 떠나면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지내놓고 생각하니 어리석은 목회자였다는 자책과 더불어 나처럼 어리석게 목회하지 않도록 후배들에게 일러주고 싶다. 기실 목회란 단거리 선수처럼 뛰는 것이 아니고 장거리 선수처럼 여유를 즐기면서 자유의 맛을 보는 것인데 이젠 모든 것이 흘러간 것뿐이다.
5. 검소한 삶을 즐기고 산다.
성경 빌4:11-13절이 새롭기만 하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느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가능한대로 빠른 시간 내로 먼저 내가 원하는 것과 내게 필요한 것 사이의 차이를 빨리 배워야 한다. 적은 수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곧 생활을 간소화해야 함을 뜻 한다. 가난에 좌절하지도 않고, 또 넉넉하다고 타락하지 않고 스트레스에 눌려 넘어지지 않는 삶이 검소한 삶이다. 현직 때보다도 나는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산다. 이유는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쓰면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젠 체면에서는 해방 되고자 한다.
6. 빗나긴 성취감보다는 성경 말씀이 주는 기쁨이 가장 크다.
John Henry는 철로위에서 기관차를 끄는 힘을 발휘해 보겠다는 생각에 기차를 볼 때 마다 그 꿈을 꾸고 있었다. 드디어 그는 어느 날 그런 시합에 나가서 해 냈다. 그런데 그는 성공하자마자 머리의 혈관이 터져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격렬하게 일에 열중하는 사람을 가리켜 학자들은 John Henryism에 빠진 사람이라고 한다. John Henryism에 빠진 사람은 자기 생명에나 가족에게 미칠 영향은 생각하지 않고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정상에 오르겠다는 사람들을 말한다. 꽤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늙은 목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갈 길을 가고 또 갈 뿐이다. 철저한 나그네의 삶입니다. 그래서 서두르지도 말고 좌절하지도 말고 주어 진대로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일정한 역할과 자격을 잃었으면 잃은 대로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 하다. 과거에 집착 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슬프게 할 따름이다.
누가 인정해 주면 감사히 받고, 또 못 본체 지나가면 그 바쁜 사람을 붙잡을 생각을 하지 말고 담담히 자신도 지나가야 한다. 그동안 별로 관심도 없고 읽지도 않았던 경외서 가운데 집회서30:14-16절에는 병약한 부자 보다는 힘세고 건강한 가난뱅이가 낫다. 건강과 체력은 온 세상의 황금보다 낫고, 건장한 몸은 큰 재산보다 낫다. 어떠한 재산도 몸의 건강에 비길 수 없고 어떠한 쾌락도 마음의 기쁨에 비할 수 없다. 은퇴 후 성경을 읽는 시간이 더 많아 졌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좋다. 말씀이 꿀 송이처럼 달다.
숨어 계신 하나님, 우리가 보물을 찾기 위해 조용히 기다릴 때, 당신은 말씀 안에 현존하십니다. 성경에 적힌 글자를 넘어서, 우리의 가슴에 살아있는 말씀에 도달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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