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지금에야 / 하정아 > 글동네

사이트 내 전체검색

글동네

{수필} 지금에야 / 하정아

페이지 정보

글씨크기

본문

 

지금에야 / 하정아



   자연이 좋다. 만물의 형상이 아름답다. 초록빛으로 둘러싸인 시골 풍경이 좋고 빌딩의 통유리창 너머로 번지는 시대의 고독이 싫지 않다.

 

 

   숱한 세월을 삼킨 몫이리라. 물리적인 모습보다는 그 배경이 먼저 보인다. 사건과 현상이 자기 본연의 빛깔로 다가와 속삭이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그랬었구나 그랬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눈과 비가 좋다. 우중충한 날에는 미세한 비안개가 하늘과 땅의 간격을 좁혀주는 것 같다. 낮게 가라앉은 하늘은 겸손해 보인다.  흐린 날에는 기도할 필요가 없다 했다. 신이 내려와 함께 있으므로. 은혜와 위안이 가까이 있으므로.

 

 

   맑은 날도 좋다. 바다처럼 깊고 푸른 하늘빛이 서늘하다. 그 창망함 때문에 오히려 불안하고 쓸쓸해지지만 내가 돌아갈 본향을 생각나게 한다. 한낮의 밝은 태양 아래 서면 심혼이 순식간에 행복해진다. 대기에 충만한 활기와 생명력에 감탄한다. 싱싱한 유년의 뜰을 생각한다. 꿈을 찍어주는 사진관을 찾아 나선 여자아이가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아낀다. 그가 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다 여겨 답답할 때 혹은 나의 정서가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 그 허전함과 불만에 대한 회유적인 표현이므로. 그의 무심하고 둔감한 정서에 대한 간접적인 질타요 견책이므로. 그에 대한 실망 혹은 낯선 거리감이 나로 하여금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스치는 사랑에도 비중을 둔다. 사랑이란 목숨조차 기꺼이 내어줄 의지가 있을 때만 쓸 수 있는 구별화된 단어라고 고집부리지 않는다. 가벼움도 존재다. 스치듯 건네는 "사랑한다"는 말에도 의미가 있다. 현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동지애에서 비롯된 서정적인 표현 혹은 가벼운 목례 정도로 여겨도 좋을 것이다.

 

 

   가볍다고 꽃잎의 존재를 무시할 수 있는가. 거짓과 배반의 어두운 세상에 던져주는 환한 웃음의 무게가 가벼울까. 고운 꽃잎 속에 어려 있는 불타는 그리움을 보라. 약한 정서를 다스릴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함부로 꽃을 바라볼 일이 아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속에서 벅찬 사랑을 만난다. 원수사랑은 화석화된 개념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생명의 원리다. 상대방의 피를 끓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끓어야 한다. 상대를 아프게 하고 상처를 내기 전에 내가 먼저 몸살하고 피가 난다. 상대방의 담담하고 잔잔한 대응은 이중 손해의 결정판이다. 나의 무례한 반응에 내가 손해를 본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내 몸을 끓이는 동안 그를 상하게 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죽는다고 온몸이 반란의 기를 든다. "그러니 원수 갚는 일은 내게 맡겨다오. 나는 네 몸이 상하는 걸 원치 않는단다. 너를 사랑한다"는 음성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 속에 녹아있다.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은 이타심이 아니라 이기심의 고차원적이고 원론적인 행동양식이다.


 

   모든 꿈이 성취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살고 싶은 방식대로만 살 수 없다. 삶을 영위하는 값은 녹록치 않다. 어느 상황이든 실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생명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다면 삶은 여전히 아름답다.

 

 

   소란스러웠던 어제의 언어들로 아프다. 과잉방어로 드러내지 못한 진실에게 미안하다. 경박했던 마음이 부끄럽다. 자신을 용서하기로 한다. 나는 내일 더 많은 부끄러움을 쌓을 것이다. 더 많은 소란함과 경박함으로 내일을 장식할 것이다. 하면 어떠랴. 그래도 삶은 여전히 가치있고 귀한 것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