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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 평자 오리지날 /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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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자 오리지날 / 이영희


‘그녀의 미모에 반해 결혼을 했습니다.’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진 평자 씨는 남자들이 결혼한 동기가 그 따위 미모니 하는 상투적인 말을 들으면 정말이지 열을 받곤 했다. 더구나 누군가로부터 ‘마음씨는 좋은 평자 씨’라는 말을 들을 때는 은근히 속이 뒤집혀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얼굴은 못생겼으니 마음씨이라도 좋아야지 하는 소리가 아닌가.

그저 평범하고 평탄하게 살라고 지은 그녀의 촌스런 이름과 실물이 잘 어울리는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운명을 탓하기도 하고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다.

학교를 다닐 때는 집적거리는 남자친구가 없어 오히려 공부에 집착한 나머지 못생긴 얼굴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그런데 여고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기위해 여기저기 원서를 넣고 인터뷰를 하면서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실력은 좋으나 얼굴이 받쳐주지 않아 원서를 내고 입사 면접시험에서 연거푸 스무 번이나 떨어지고부터 자신의 얼굴에 대한 혐오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잎만 아름다워도 꽃 대접을 받는다.’는 말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옹색한 자기 위안 같아서 그녀에겐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차라리 한번 찬란히 피었다가 단 하루 만에 지더라도 꽃으로 피고 싶은 것이 女心일지 모른다.

어쩌면 한 번도 꽃으로 피워보지 못하고 지고 말 자신에 대한 연민의 정이 들기까지 했다.  이런 그녀에게 마음의 변화가 싹트기 시작한 것은 간신히 잡은 직장 생활이 일 년 즈음 지난 후부터였다.  미모와는 상관없는 공순이들만 득실거리는 곳에서 일하다간 자기PR 상품 개발에 지장이 초래되어 유행이 바뀐 상품 취급을 받을 거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갔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점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미모가 직장보다 결혼을 위해서는 더 넘기 힘든 문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성형수술로 이름난 나라이며 가까운 이웃나라에서까지 성형수술을 받기 위해 원정까지 온다니 그야말로 성형외과는 ‘미인제조 공장’ 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이런 세태에서 결국 그녀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얼굴성형 수술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외모지상주의를 은근히 부추기는 이 사회와 그 배후에 있는 남자들 탓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 그 뿐인가 ‘여성에겐 능률미, 지성미, 관능미,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진대 그 중에 제일은 관능미(官能美)라’ 한 번도 결혼 한 적이 없는 인간들이 이따위 감각적으로 자극하는 아름다움을 ‘행복한 결혼조건’의 제 일 운운하는 꼴이 역겹기 그지없었다.

평자 씨가 맞선을 보기 시작 한 것은 성공적인 성형수술로 한 미모 한다는 소리를 길거리에서 간혹 들으면서 얼굴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들고부터였다.

사각턱을 다듬고 콧날을 오뚝 세우고 쌍꺼풀 수술을 했으니 완전히 다시 태어난 것이다.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수리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신축이나 다름없는 큰 공사였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로 성형수술에 대한 자기 합리화와 위안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수술후유증으로 찾아 온 것이 ‘자기상실감’ 다시 말하면 잃어버린 자신에 대한 허전함 같은 것이었다. 

그것도 잠시뿐, ‘평자 씨의 미모에 반했습니다.’라는 남자의 청혼을 받고 보니 한 때 자기를 열 받게 한 그 말이 황홀한 속삭임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이렇게 그녀에게 찾아 온 사랑은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귀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할까, 좋은 일에 마가 끼는 법이다. 행복하던 결혼생활도 첫 딸을 낳고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딸아이가 커가면서도 이들 부부와는 닮은 구석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애가 누굴 닮았지’ 하고 사람들이 말하면 남편은 속이 뒤집혀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의심을 했는데 딸애가 커 갈수록 심증이 굳어지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를 의심하는 정도에서 노골적으로 누구 애냐고 아내에게 다그쳐 물어 아내의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이다.  평자씨는 딸애가 볼수록 자기의 복사판 같지만 내색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평자 씨는 수모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이 시점에 이실직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동안 남편을 속인 것에 대한 미안함과 부담감이 너무도 컸다.

연애할 당시에 남편이 물었다

-평자 씨 사진 좀 구경 합시다

예전 사진들은 감쪽같이 감추고 완전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대답했다.

-이사를 하면서 사진을 몽땅 잃어버렸지 뭐예요.

-아, 안타깝네요, 추억을 몽땅 날려 보냈군요. 저와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요

결혼 후에도 동창회나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걸 싫어해서 남편은 가정밖에 모르는 순진한

아내라고 칭찬을 하고 치켜세웠다.

이젠 가면을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불현 듯 일어났다.

이건 말로 사실을 고백해서 될 일이 아니라 확실한 물증으로 자신의 원판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끔찍했다.

그녀는 꼭꼭 숨겨둔 지금의 딸 아이 나이 만 할 때 찍은 사진 하나를 찾아내었다. 

-얼굴이 돈을 좀 먹은 것 같은데요

결혼 전에 ‘자연미인’이라고 극구 우기던 그 당당함은 어디가고 그녀의 전과가 들어나는 순간 이었다.

-자기야, 이 사진 좀 봐, 누구 닮았어?

-누구긴 누구야, 당신 딸이지

......

-아니야

-평자, 오리지날

아내가 성형미인이라는 사실에 남편은 그동안 의심은 했지만 속은 것이 분하고 억울했던지,

원판과 복사판을 번갈아 대조해 보며 소리쳤다.

-이거 완전히 붕어빵이잖아!


그녀는 속이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로 떨떠름한 어조로 맞섰다.

-그래, 예쁜 국화빵을 찍으려면 원판을 바꿔야지, 늦기 전에 찾아봐 찾아보라고, 이 그 속물.

순간 남편은,

오랜 세월 엘범 속에 꼭꼭 숨어 있던 평자씨, 사각턱에 내려앉은 코, 심술을 덕지덕지 붙이고 실눈을 뜬 체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아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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