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점박이 무당벌레 /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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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박이 무당벌레 / 이영희
붉은 무의(巫衣)에 박힌 검은 점이
접신(接神) 코드라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
꼼짝달싹도 하지 않는 무당벌레
붉은 바탕에 검은 점들, 그 중에 하나를 무심코 눌러 보았다
주문(呪文)이 걸린 걸까
전광판에 불이 켜지듯 앞다리를 치켜세우고
바르르 떠는 잎사귀 위에서 신들린 듯 굿판을 벌린다
둥둥둥 무부(巫夫)의 장단에 맞춰
뙤약볕에서 지칠 줄 모르게 빙글빙글 도는 붉은 무녀(巫女)
저 고독한 춤사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을까
배터리로 작동되는 장난감 스위치를 누르듯
스물여덟개의 점괘(占卦)같은 코드를 여기저기 눌러보기도 하고
시계방향으로 도는 길을 가로막으면
아련한 추억을 더듬듯 멈칫하다가
시간을 거슬려 돌아가는 얄궂은 운명의 무당벌레
아직도 그 비밀 코드를 해독(解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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