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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잠 못 이루는 밤의 세레나데 / 송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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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는 밤의 세레나데 / 송선주

요즘 들어 이른 새벽녘인데도 잠이 깨이고 좀처럼 다시 잠이 들지 않는다. 어느 새 나도 그 나이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것일까? 누군가가 그리 말했다. 머잖아 영원한 잠 속에 푹 빠질 것이기에 잠을 줄려보는 반사작용이라고.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진 않지만, 가을철로 바뀌면서 밤이면 온 집 안 곳곳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그날그날 내 기분에 따라서 애처롭게 들리기도 하고 때론 시끄럽게, 때때론 창호지문안의 소곤댐처럼 정답게 들리기도 한다.

아들에게 저게 "무슨 소리야?" 했더니 대뜸 "귀뚜라미 소리 잔아."라고 대답했다. 그런 한국말을 구사할 줄 알다니. 어렸을 때 이민 와 성장한 아들이 기특하고 신기하다. 그러나 딸아이는 귀뚜라미를 싫어한다. 시끄럽고 못생겼다나. 그 작은 체구에 어디서 저렇게 온 집안을 들썩이게 하는 소리를 낼까? 참으로 경이롭기 까지 하다.

가을에 부르는 귀뚜라미의 세레나데? 대체 누구를 위한 축제일까. 가만히 귀 기울이고 귀뚜라미소리를 들어보면 그 소리에도 일정한 음률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귀뚤귀뚤, 귀귀뚤뚤 ~~. 이른 밤에 시작해서 새벽녘까지 지친기색도 없다. 도대체 저 녀석들은 무얼 먹고 살기에 저리 기력을 잃지 않고 극성을 부릴까.

아련한 내 기억 속 어디선가에서 ‘가을을 배달해주는 우체부’란 글이 떠올랐다. 그 글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난 귀뚜라미 소리에서 고향의 정취를 느낀다. 그래 그 소리 듣기를 좋아한다. 시간의 마술사란 회귀 나래를 타고 추억여행길에 올라본다.

내 고향 마을은 정지용의 ‘향수’ 시구처럼 맑디맑은 황강지류가 유유히 휘돌아 가고 있었다. 금모래가 반짝거리던 그곳이 잊히지 않는다. 봄엔, 진달래가 피어 뒷동산을 온통 분홍물결로 일렁이었고, 개울가엔 버들강아지들이 조 이삭만큼 통실 살이 쪘다. 친구들이랑 소쿠리를 옆에 끼고 쑥을 캐느라고 산야를 헤맸던 것이 어찌 그리 좋았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냇가에서 버들가지를 꺾어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고 있던 때였다. 펄쩍 펄쩍 뛰어오던 노루 한 마리와 눈이 딱 마주쳤다. 너무 놀라 한동안 숨이 막혔던 사이 노루는 뒤돌아서 오던 길로 뛰어가 버렸다. 집에서 아버지께 그 얘기를 했다가 꾸지람만 실컷 들었다. 다 큰 여식애가 겁 없이 싸돌아다녔다고... 그때가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때이었을 것이다. 간혹 새까만 머루 알 같았던 그 노루 눈망울을 꿈속에서 만나고 있다.

여름철 은어들이 때지어 개울로 올라올 때는 마을사람들이 한바탕 들뜨던 삽화와 휘영청 달 밝은 가을밤, 귀뚜라미 합창을 들으며 단잠을 멀리했던 일들이 어제인 듯 눈에 선하다. 그 추억들을 되살리며 요즈음 난 교회 합창단에 참여하고 있다. 화음이 잘 맞아지지 않을 때가 있지만 연습에 열심을 내고 있으면 가슴속이 부듯해지기도 한다.

온 밤을 지새우며 노래를 그치지 않는 저 귀뚜라미처럼 나도 최선을 다하다보면 언젠가는 음치를 면하지 않을까. “생각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운명을 만든다.”라고 했던, 그 말의 무게가 내 등줄기를 탄다. 신탁 받은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음성을 아낌없이 봉헌할 수 있냐고, 나는 내안을 향해 한 음절 세레나데로 되묻곤 한다. 설사 그것이 한밤의 꿈으로 삭아지고 마는 한이 있을지라도 나는 그 꿈길을 계속 걸어가고 싶다. (가든수필교실. 창작실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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