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하동인 죽마고우지교 / 정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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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인 죽마고우지교 / 정영근
성씨의 본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하동이라는 정씨, 그리고 일찍이 하동 땅에 정감있게 오래 살았다는 김 씨라는 것이 서로 간 무슨 상관이 있겠는 가만은 실상은 그것이 인연이 되어 서로 간 죽마고우하며 친근하다. 알고 보면 다만 하동이라는 게 인연이라면 인연일 뿐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그렇게 초로를 같이 즐기면서 목을 매고 좋아하는 품 고우지 간되어 어쩌면 마냥 거문고 타는 가락에 맞춰 희로애락이라니 어이 돋보이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네 사람이란 게 본디 누구라도 서로 같이 살고 정붙이면 살맛 난 세상 되고 그 보람으로 살판난 모양세가 되나 보다. 이게 삶의 중한 한 때이고 보면 신란한 놀이 동심 체험세계 같기만 하여 보인다. 하긴 이건 자동차 여행 이야기이지만 경상도에서 자동차를 타고 하동 땅을 막 지나 호남 땅에 들어서거나 호남 땅에서 하동을 거쳐 경상도에 곧바로 들어서면 하동에서부터 날씨의 체감온도가 현저하게 달라지는 것 같은 감이 퍽 인상적이다. 그래서 하동에서부터라고 그런다. 아마도 인생의 체험 기류지대에도 이런 현상이 있는 것일까. 같은 지점에다 또 하나의 분수령 같은 인상적인 교차지대를 지나면서 확연하게 공감이 가는 날이 오면 너와 나 할 것 없이 인생 하동 길에다 목을 맬 만도 하나 보다.
말을 해서 무엇 하랴. 상천하지 하면 상천과 하지 네 글자가 관련 글자 하 나도 없지만 덩실 생각하는 바가 그걸 위 아래로 짝을 맞춰 포갠 다음 상념으로 그렇게 부르고 쓰면 제멋 나는 상관글귀가 된다. 비좁은 시렁 위 붉디붉은 홍시 한 광주리와 그 아래 순한 고양이 한 마리 그 내음 맡고 마음 비우면서 가까이 올려 보는 품이 벌써 한 폭 그림의 인연을 맺는다. 이렇게 세상사는 일, 음양의 조화 마냥 짝 맞추기 의미 있는 것이거늘 세상 인정사정 모든 조화가 어찌 인연 없는 것이 이 세상에 있을까. 세상사 인간사 모두 꽉 꽉 잘도 들어맞아 짜이고 진한 사연 옹기종기 이루어져 수만 가지 모든 게 제 각각 지근거리가 된다. 머리 색깔은 노란데 신기한 대로 눈빛 색 갈은 하늘색 푸르고 부리 코한 것이 사뭇 남다르게 독특한 게 옛 미국사람 인상인데 철들고 세상 나와 이제야 본 제 모습, 그건 정들고 얽히고설킨 탓인지 너와 나 할 것 없이 매일반 거기가 다 그 모양 그 모습 같기만 하고 상 찌푸리고 얽어도 유자 해 보이기만 하다.
건너편 내 이웃은 인도의 북방 히말라야가 가깝다는 어느 양반 네 고을에서 왔다는데 사뭇 그 나라 지체 높고 지성파라고 어떤 이가 이른다. 언젠가 그이가 나더러 가만히 귓속말로 일러준 말, 우린 머리칼 다르고 피부색깔 다른 동양인이라며 공통분모를 찾아 친절해 했다. 인도라는 나라는 마음도 거리도 우리에게선 멀고 먼 나라, 난 세상에 나서 단 한 번도 그 나라를 가 본 일 없고 생각해 본 일 별로 없건만 같은 동양지간 친절이라니 이러고 저래서 지척이 되고 서로 간 온정 길 오고 가고 하는 터에 나도 모르게 어느새 익숙해졌는데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해진 온정지간이 어쩌면 신기하고도 야릇하기만 했다. 이런 게 참 묘하게 만들어진 오손도순 길 우정작품 아니던가. 이렇게 생각해보면 온 인류는 너와 나 할 것 없이 이래저래 얽히고설킨 한 혈통 아닌가. 그래서 명색 이 하동인 죽마고우지교는 필시 인간이 조물주 창조의 신기한 그 흔적을 더듬어 찾고 대견스럽게 발견한 옹골진 진수가 아니더냐 싶다.
가령 사람 얼굴의 잘 보이는 이맛살 하면 사람의 고뇌의 연륜과 함께 한 지근이며 부자 영감하면 금방이라도 그 집 문간으로 쫓겨난 초립동에 걸맞은 사건이 지근거리 연고가 된다. 나라가 흥하다 보면 쇠망한다 하는 연고라는 게 있고, 그리고 그 선생하면 그 제자가 그 연고 속에서 좋게 살 인연 한 두 가지만 있을까. 우린 한 부부라고 구가하다가 그 금슬 깊숙한 제자리 찾으면 부부해로 하기가 철통같이 짜이고 묶여져서 때론 쉽게 웃음도 눈물도 자아낸다. 물끄러미 먼 산 바라보며 저고리 옷고름 펴 눈물 닦는 아낙이 훌쩍 훌쩍 하고 울먹이면 선비 같은 하얀 신랑 얼굴 쳐다보고 차지했다고 해서 애써 좋아 희희낙락 하는 팔푼이네 모습도 걸맞은 모색을 맞추는 인간 극 그림이 된다. 그런데 거기 진정 인연을 되찾을 도톰한 사연 길 없으려고. 길은 있고 또 있을 게다. 모든 것이 정한 사연 길이니깐.
자, 울먹이고 울먹거리지만 말자. 그리고 고뇌랍시고 심각해 해 그러지만 말자. 거기엔 즐거움과 행복이 다 있고 만사를 맞물리는 오만가지 유여한 축복의 황금 잔이 가득 가득 넘쳐 나지 않더냐. 중년 과부 이 씨는 하루에도 서너 번 씩이나 부리나케 전화를 건다. 그리고 울먹인다. 때론 외로움이 머리통을 어지러이 맴돌고 그래서다. 불경기에다 상춘객도 발길 털고 뜸한데 생활고는 더 난색이란다. 역지사지 역 이민 생각 했으면 그 번민도 이만저만한 것 아닐 텐데도 사는 곳 사랑이랍시고 그냥 눌러 살기로 했단다. 가상하고도 잘 해 보이는데 그의 다시 찾는 희망과 그 열망이란 도대체 누가 준 것이랴. 하늘 하나님 있고 이 땅에 사람 있단다. 위 아래로 이렇게 아귀 맞춰 사는데 무엇이 근심 되고 또 무엇에 속상해 하랴. 보아라. 현자 솔로몬은 아무런 염려 없이 절로 사는 백합화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기르신단다. 하지 않았더냐.
석양이 붉게 물든 해질 녘 공중 높이 팔자 그리면서 기러기 떼 제집 찾아 나른다. 웬일일까. 사뭇 밤은 깊어 가는데 저 멀리 저 외기러기는 무얼 찾아 저리 가는 걸까. 그래도 때 늦기 전 가는 곳에 잘 간단다. 그래, 우주 만상을 수놓은 생명의 신비란 게 있다. 창조의 시여자의 조화가 삶의 온기를 더하고 생명을 기른다. 이런 것이 마치 하동인 죽마고우지간 되어 모두 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비법 아니면 해법 아니랴. 우리네 앞길엔 꽉 막힌 태산준령이란 없다. 막히면 시내를 이루어 흐르고 또 흘러서라도 갈 길을 낸다. 우리네 앞엔 오히려 질펀한 지평선 아래에서 항상 붉게 타오르는 뜨거운 태양 열기 이루어 불끈하곤 하늘로 치솟아 오르곤 하지 않던가. 아, 이런 때면 하늘을 위로 하고 이걸 지으신 하나님을 향해 포효하는 큰 목소리로 마구 외쳐대 본다. 아, 신령하신 내 하나님, 내 가슴의 태양이여! 하고. 이리하면 내 좁은 이 가슴은 정작 봇물이 터져 나오듯 마구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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