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왕을 이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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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 사울왕이 왕권을 놓지 않기 위해 모질게 굴었던 왕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나는 얼마간 그의 가슴을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유득 사울에게만 갖는 그런 생각을
누그러뜨려주기를 간청하고 싶은 심정을 갖는다. 왜 그런가?
다윗은 반역한 아들 압살놈이 죽었을 때 '압살놈아 압살놈아 내 아들아..'(삼하 19:4) 하고 슬퍼했다.
물론 슬펐으니깐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구태어 그의 아들에 대한 다윗의 슬픔이란 어느 정도의 농도의
것이냐?는 것이다. 진정 그의 눈물과 사랑이란 게 진실한 것이었느냐? 는 솔직한 의구심이 있다. 다윗의
슬픔이란 열 번이라도 아들은 이렇게 죽일 수 있을 막정 왕권만은 내 줄 수는 없다는 한계선상의 것은
아닐까.
최 근대사 이야기로 이 세상에 이런 이야기가 떠돈다. 독재의 대물림을 위해 아버지는 오랜동안 준비해
갔다. 어느날 아들이 갑자기 아버지께 총을 겨누었다. 기겁한 왕은 정신을 잃고 그대로 쓰러졌다. 정작
쓰러진 왕을 곁에 있는 사람이 부축이려 하자 왕의 아들은 그를 향해 총구를 돌려댔다. 이리하여 지채된
시간 때문에 결국 왕은 죽었다. 그의 아들은 대 물림했다. 백성들은 갑자기 쓰러져 죽은 아버지 왕에 대한
아들의 슬픔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셈이며 대물림 왕은 그의 아버지의 위업을 기리며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서구의 한 여왕은 아들이 다 늙어가도 대물림을 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이야기 해 가면 그 물
속에 노는 그 사람들이란 이야기가 되어진다. 이름 없는 작은 사람 가슴에도 그 이상의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사울왕(만)이냐! 주님은 '왕들'(계6:15)이라 했지 않던가! 그래서 이점에 대하여 사울
왕을 어느만치 이해하고 싶어진다. 온기로 그의 가슴에 가까이 가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을
누그러뜨려 달라고 간청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긴한 한가지가 더 있다. 예수님은 그의 왕권을 버리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들을 위해 친히
죽어 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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