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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문학' 2회 추천완료 작품 / 주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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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희님이 한국의 ‘에세이문학’ 2011년도 가을호를 통해 완료추천을 받았습니다.

유명 수필 전문지의 관문을 통과하고 한국문단의 수필가로 등단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아버지의 흔적 / 주영희


     학교수업이 끝나는 대로 교복을 입은 채 나는 시외버스를 타고 아버지께로 갔다. 고 3이어서 정규수업 후에 보충수업이 이어지는데도 아버지께 가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어서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부지런히 아버지께로 향했다. 내가 다니던 여학교는 우리 시골동네에서는 밤늦게까지 학교에 잡아두고 공부시키기로 유명했다. 그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 시외버스를 타고 가니 어른들은 이상하게 보기도 하고 어떤 어른들은 걱정하며 물어보기도 했다.

      모든 아버지가 그러하겠지만, 나의 아버지는 나를 유달리 사랑하셨다. 나는 당신께서 혼인 후 11년이 지나서 어렵게 얻은 여식이었다. 여자는 인간취급도  하지 않는 고루한 친정집 안에서 온 친척들이나 동네 사람들까지도 딸아이인 나를 귀하게 여기게끔 된 것도 아버지께서 나를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귀여워하신 탓일 것이다. 거기에다 바로 아래 동생이 9년 후에 태어났으니 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장기독점이었다. 고 3 때 까지도 학교에서 요구하는 기생충검사에 필요한 대변채취도 아버지께서 다 깔끔하게 처리해서 책가방 귀퉁이에다 넣어주시곤 하셨다. 그러면 나는 내 것인데도 지저분한 것을 갖고 가야 한다고 상을 찌푸리던 철 없던 딸이었다. 베풀기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의 어려운 일들을 척척 해결해 주시던 아버지는 나에게는 하늘이었고 나의 힘이었고 자랑이었고 나의 모든 것이었다. 고뿔 한 번 하시는 적 없이 무척 건강하시고 키도 크고 멋쟁이셨다.

     그런 아버지께서 병석에 드신 지 거의 3개월 만에 거짓말같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버린 것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아버지가 나를 두고 혼자만 가실 수가 있을까.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직도 아버지의 체취가 온 집안 곳곳에 살아 있고 숨 쉬는 소리도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은데….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그러나 수 십 번을 잠에서 깨어나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은 거기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에 입시준비로 바쁘다고 더더욱 마지막 가시는 아버지 곁에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가슴이 꽉 막혀버려서 숨을 제대로 쉬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어이없이 내 곁을 떠나버렸던 아버지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 여름이 시작할 무렵 가신 아버지를 온 여름 동안 찾아 헤매었다. 입시도 이젠 나에게 의미가 없어졌고 한 번만이라도 아버지를 만나 뵙고 싶을 뿐이었다. 혹시 아버지를 만날까 해서 아버지산소에 매일 갔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아버지는 찾을 수가 없었다. 낯설고 차가운 흙더미만 쌓여 있을 뿐이었다. 내 막힌 가슴을 뚫어줄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아버지 누운 곳이라 썩은 동아줄에라도 매달리듯이 매일 산속에 있는 아버지 산소에 갔다. 처음에는 엄마 몰래 갔는데 아버지 고향동네에 있는 산소라 주위의 논밭에서 일하시던 동네 분들이 나를 보고 엄마께 걱정을 하셨던 모양이다. 집안 어른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이젠 아버지 대신 내가 가장이 되어 엄마께 걱정 안 끼치고 잘 모셔야 하는데 내 막힌 가슴이 나를 아버지산소로 자꾸만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그날도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아버지께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가 학교수업도 하는 둥 마는 둥 또 시외버스를 타고 산소에 갔다. 산 밑에서 버스에 내려서 가파른 산길로 들어서면 온종일 참았던 눈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이 적막한 산속에서 혼자 누워 계시는 아버지가 가여워서 산소 앞에 앉아서 마음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면서도 그날은 밭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한 분도 못 봤는데 바로 저 밑에서 어떤 남자가 오고 있었다. 옷차림새가 이 동네 사람은 아닌듯하였다.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건다. 길을 물어보는 것처럼 하더니 무섭게 웃으면서 여기는 외진 곳이라 너를 도와줄 사람이 오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등골이 오싹해 왔다. 가방을 챙겨 들고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던지 그 사람의 눈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그리고 바로 산 너머가 내 큰아버지 집인데 지금 내가 고함치면 금방 내 큰아버지가 달려오실 거라고 말하고는 뒤도 안보고 재빨리 산 위로 올라갔다. 산꼭대기에서 반대편 밑으로 큰아버지 댁으로 내려가기 전에 그 남자가 있던 곳을 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 곳에 올라서면 양쪽 산 아래가 다 보이는 데 불과 얼마 전에 있던 사람이 온데간데없어졌다. 아무리 빠른 걸음이라도 그곳에서는 다 보일 것이고 그 사람이 숨을 이유도 없을 테지만 마땅히 숨을 곳도 없었다. 머리가 쭈뼛했지만, 안심이 되기도 했다. 큰아버지께서는 니 애비가 널 더 이상 못 오게 쫓으려고 그런다고 하셨지만 나는 그 당시에 아버지가 나를 보호해 주셨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죽을 지경으로 헤매면서 아버지산소에 가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 날 일이 무섭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산소에 가봤자 그곳에도 아버지는 안 계셨던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아버지께서 무 자르듯이 그렇게 한마디 말씀 없이 가셨지만 나에게 뭔가 남기신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나는 그 것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오랜만에 발톱을 깎으려고 내 발을 보니 아버지 발과 똑같은 것이다. 거울을 보니 그 속에 비친 내 모습에 아버지가 계셨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아버지가 내 속에 있었던 것이었다. 그 뿐 아니라 아버지와의 많고 많았던 추억들, 그 말로 다 표현할 수없는 사랑의 자취들을 내 마음속에 남기셨던 것이다. 이젠 다른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안도의 눈물이었다. 누구도 빼앗아 갈 수도 없고 훔쳐볼 수도 없는 나만의 창고에 아버지의 사랑의 발자취들을 고이 간직했다가 수시로 꺼내서 얼어붙어 가는 내 가슴을 녹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나의 평생 살아가는 힘의 원동력이었다.

    어느 날 아들이 웃으면서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스무 살이 넘은 아들이 아버지의 성실하고 따뜻하고 긍정적인 꿋꿋한 모습의 유전자를 받았을 뿐 아니라 겉모습까지도 꼭 빼닮아서 가끔 아버지라고 불러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내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아버지의 흔적은 이렇게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이었다.


등단소감 (나를 따뜻하게 하는 수필)

 

   수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글쓰기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으면서 글을 쓰고 있으면 한없이 행복하다. 글속으로 빠져들어 가면 내속에 따뜻한 것이 용솟음친다.

  나의 등단을 나보다 더 기뻐하는 남편이 좋아할 글을 쓰고 싶다. 깜깜한 칠흑 속에 갇혀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에게 가슴으로 웃게 하는, 감동과 희망 속에서 울게 하는, 마음 깊은 곳을 따뜻하게 만져 주는 글을 쓰면서 나도 같이 행복 하고 싶다.

   많이 어리고 모자란 저의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를 늘 격려해주시고 수제자라고 불러주셨던 P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곁에서 항상 둑려 해 주시는 엄마와 남편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주영희

삼육대학교 간호학과 졸업

미주중앙일보 ‘효 에세이 공모’ 입상

미주재림문학(제3집)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

에세이문학 <우리의 요란한 대화>로 초회 추천

자서전적 에세이집: 사랑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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