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의 봄 (산문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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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의 봄(산문시 *)
강위덕
애리조나의 시가지는 고무 아스팔트다 무서운 속도로 달리면 차는 무게의 심지를 박는다 고가 도로의 급커브 길은 방축 뚝처럼 경사져 있다 경사진 길 위로 가파르게 회전할 때는 마음도 몸도 기울어진다 북극성 탯줄에 매달린 배꼽 같다 절대로 놓치는 순간은 없다 건물도 수평선도 다 경사진 체 길을 구부리기도 하고 펴기도 하면서 풀어줬다가 끌기도 한다 머리를 하늘에 툭툭 치면서 더 가질 수 없는 후회의 반경을 맴돌다가 어떤 때는 궤도를 이탈하기도 한다 맨눈으로 태양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욕조의 마개가 빠진 것처럼 팽팽한 끝점이 소용돌이친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가다 허공의 벽을 손으로 쳐 그 반동의 힘을 빌어보지만 지난 겨우내 잡풀들의 죽은 뿌리가 뚝방을 움켜잡듯 물크덩한 차의 손발이 물크덩한 고무 아스팔트를 저리 움켜잡는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이 꼬꾸라질 때가 되면 차는 허리를 구부리고 두엄 무지로 인간을 내려놓는다 그럴 때면 두엄 무지와 함께 삶도 썩어간다 푹푹 썩어가며 발생하는 더운 더움 무지는 겨울의 숨이다 저 봄, 오라고 손짓해도 죽을힘으로 버티고 있는 봄, 그러나 봄은 오고야 만다 차가 멎으니 고가도로가 산 너머로 날아간다 바람과 바람이 부딪치는 반음 낮은 소리가 지성의 냄새를 아우르며 한 소절 자리바꿈할 때 연료 한 개론에 4불 10전, 우습게 비극적으로 말하자면 값이 싼 연료를 넣기 위해 두꺼운 거리의 벽을 뚫고 소모의 방위선을 넘나든다 저 하찮은 근검절약의 엉겅퀴를 지나 비싸게 허비한 낭비벽이 캄캄한 심연 한곳을 쩍! 쪼갠다
고속도로 위에는 더 자명한 겨울의 하얀 별똥별이 소복이 쌓여 있다 쏟아진 별이 하늘의 별보다 더 많다 어떤 별똥별은 삐끗 갈빗대를 접질려 한쪽 어깨가 쏟아져 내린다 어떤 별은 아예 운도 안 비치고 밝게 아스팔트의 바닥을 공공연히 들어내 놓고 비스듬히 서 있다 이마께로부터 깎여 나간 별들은 햅쌀밥 빛깔을 서둘러 하늘빛 빛깔로 변신하며 겨울을 떠날 준비에 어수선하다 아직도 건너편 담벼락에 기대어 언제쯤 자신이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는지 초조하게 시간을 재는 눈사람처럼 아무런 혐의 없이도 바람에 쫓기는 17세 가출 소녀가 고가도로에서 투신하던 날 봄은 시작되고 있다
* 산문시는 줄글로 되어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가 연과 행으로 이뤄져있는 반면에 산문시는 그냥 행만 있는 셈이죠. 산문시는 보들레르라는 시인이 처음 쓰기 시작했는데, 영혼의 서정적 억양과 환상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유연성과 융통성을 겸비한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해설
애리조나의 사막에 햇빛이 투신했나봅니다. 아스팔트를 맹폭하는 햇빛, 대지의 바람은 헉헉대는 입김 같습니다. 이곳에 이사 온지 10년이 넘었으나 아직 눈 한 톨도 구경 못한 뜨거운 사막이지만 이 시의 세계에서 보는 애리조나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부처의 살찌고 안 찌고는 조각가의 손에 달렸듯 시인의 상상력의 힘은 이글대는 애리조나의 아스팔트 위를 온통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으로 만들어 냅니다. 이 세상에서 시인의 혀 만치 힘이 있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어느 불제자(佛弟子)가 대승에게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것이 무엇입니까? 스님은 대답은 하지 않고 입을 딱 벌렸습니다. 대사님의 입에는 이빨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턱뼈도 줄어들어 피골이 상접해 있었습니다. 제자는 대사님의 뜻을 헤아릴 길이 없었습니다. 대사님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제사 대사님은 말을 하였습니다. 무엇이 보이더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빨도 없는 대사님의 입에는 있어도 없는 듯 혓바닥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나이다. 바로 그것이니라. 이 세상에서 약한 것 같이 보이나 강하고 부드러운 것 같이 보이나 강산을 호령하는 것이 바로 세치도 못되는 혀이니라.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스스로 글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위경(僞經)이 태어날 소지를 스스로 만들어 낸 셈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위경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불경의 경우 중국에서 만들진 위경을 가려내는 방법의 하나로 시간의 신축성을 언급합니다만 인도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로 봅니다. 왜냐하면 과거는 현제를 향해 달려오고 미래는 현재를 향해 파도처럼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시도 위경이라면 위경입니다. 애리조나의 뜨거운 아스팔트에 하얀 눈이 덮이니 말입니다.
예수님도 위경을 한 적이 있습니다. 5000명을 오병이어로 배불리셨고 물로 포도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보통 상식에서 벗어난 일을 몰상식이라고 말합니다만 오늘날의 시인들은 몰상식한 시적표현을 의인화적 기교라고 말합니다.
북극성 탯줄에 매달린 뱃꼽처럼 뱅글 뱅글 돌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현기증을 느끼며 기진하게 됩니다. 오바마의 당선에 기대를 걸어보고 오사마의 사망에 기대를 걸어 봐도 연료비는 도대체 내릴 줄을 모릅니다.
집값이 아무리 내려가도 집 잃고 돈 잃은 백성들에게는 그림에 떡입니다. 집값은 올라가도 연료비는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태평성대의 경제이론은 집값과 금값의 평행입니다. 집값은 땅이 꺼져라 내려가고 금값은 하늘이 깨져라 올라가기만 하니 생활난에 시달려 투신한 후에야 삶이 안정될지?
언제쯤 자신이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는지 초초하게 시간을 재는 눈사람의 신세가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 지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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