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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단편소설} 고금도명사 이일원박사/천공을 향해 날다(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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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공을 항해 날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일원이는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는 손을 불끈 쥐어보이면서 다짐을 했다. 

   "밤에 날새기를 하며 공부하기로는 이력이 나있는 터, 숙부집 전기불은 얼마든지 쓰라는 게 아니더냐. 주경야독이 아니라 주공야독이다. 공부하자. 이제부터 공부를 하자. 내가 먼저 부엉이산 아닌 공부산이 되자. 일단 돈을 걱정하지 말자. 10여년 늦어진 공부 군대생활 3년을 뺀다 하더래도 6-7년을 줄이고 만회하자. 공부를 위한 일이라면 만난을 무릎쓰고 정진을 하자. 우리집 파랑새가 그날 그렇게 지저귀던 그것이 바로 지금 이것 아니더냐!"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원이에게는 현실적으로 공부 보다 더 급선무인 것은 인쇄소 일이었다. 적어도 고금도로 다시 퇴각하지 않는 길, 육지에서 붙어있는 생명줄은 당장에는 인쇄소 일에 충실한 것이었다. 그래서 일원이는 주인이 될 인쇄소 소장을 만나 인사를 드린 날부터 집념의 정신으로 인쇄소의 이 일 저일을 닥치는 대로 부지런하게 해냈다.

   어느날 밤 인쇄소에서 돌아온 일원이는 몹씨 피곤한 채로 자리에 잠시 누워있는데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경수가 돌아온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집에도 역시 아들이 하나인 것이다. 무척 귀한 아들인가 보다. 마치 왕의 행차맞이인가 싶을 만치 소리하며 민첩하게 야단들이다. 일원이는 경수가 참 행복한 애로군 하면서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갔더니 좀맞게 경수가 집 안으로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경수 아냐? 어릴 때 같이 놀고 이제 만나는구나!"

   "고금도 일원이 형, 정말 그렇네. 형, 반가워!"

   "아, 참, 반갑다. 못난 놈 일원짜리다."

   사실 일원이와 경수는 같은 나이였지만 생일이 한살 만큼 빨라  어려서부터 일원이가 톡톡히 형의 행세를 해오던 터였다.

    "일원이 형,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잘 왔어, 잘 해봐. 대충 들어서 잘 알고 있어. 큰 숙부님 소원을 아버지가 듣고 많이 생각하시는 것 같았어. 잘 해봐. 성공할 사람 좌우명은 유득 피곤할 때 천리길 한 걸음부터야 하고 줄곧 걷는 거야. 조금 늦지만 지금 시작하면 되. 이게 내가 일원이 형에게 하고싶은 이야기였거든."

   "좋은 말 하는구나. 천리길 한걸음부터이면 그리고 가고 가고 또 가면 끝내는 다 가겠지. 그렇지. 그런데 거기가 어디쯤이지?"

   "일원이 형은 지금 시작부터 9만리 길 끝을 보고 있구만 그래. 하하하"

   "그러냐. 암, 가고 또 가야지. 그래야지."

  키가 커보이는 경수는 어디서 만나면 전혀 알아볼 수 없을 만치 달라져 있었지만 어릴 때처럼 사근사근하고 친절한 것이 변함이 없어 보였다.

   경수는 일원이 손목을 부여잡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그래도 부족했던지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아 온 밤을 지세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드디어 경수가 미국으로 유학 길을 떠나는 날이 되었다. 미래를 위해 향학의 불길을 불태우는 일원이와 경수, 경수와 일원이는 마지막으로 서로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먼저 일원이가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 형이 언젠가 미국땅을 밟을줄 알고 있거라!"

   이러자 경수가 되었다는듯이 성심어린 말투로 말했다.

   "그래, 의기투합하여 그동안 공부 잘 해봐. 일원이 형!"

   그리고는 경수가 택시 안으로 머리를 박아 넣듯이 들어가면서 자리에 앉자마자 차는 부르릉 소리를 내면서 떠나고 말았다. 일원이는 참 허전했다. 자기 생애에 처음으로 격려와 용기와 갈 길을 제시한 젊은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감까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것이 경수와 일원이의 여러 해 후를 기약하는 마지막 장면이 되었다.

   숙부 내외는 하나만 되는 아들을 자주 보지 못할 곳에 처음으로 멀리 보내놓고 한동안 몹씨 허전하고 적적한 눈치였다.

   "숙부님, 그리 적적해 하시지 마시지요. 보아하니 경수는 듬직하게 잘 해낼 것 같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숙부는 일원이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유리창 넘어 어디까지인가 멀리를 물끄럼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자마자 숙모가 저녁식사를 내왔다. 일원이는 그순간 자신도 모르게 지금 고금도에 계신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 부모님도 역시 나를 멀리 보내놓고 그러하셨겠지. 우리 부모님은 이런 음식을 잡수시지도 못하는데 ..."하면서 부모님의 초췌한 영상모습을 떠올려 본 순간이었다. 이러고보니 일원이는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이러자마자 일원이의 낯빛을 얼른 살핀 숙모님이 엉뚱한 말씀을 했다.

   "왜 그러니... 경수가 훌쩍 가고보니 그렇지. 얼마후 다시 만나게 될꺼야. 어서 밥을 먹어라."

   "예, 숙모님, 어떻게 이렇게 음식 맛이 좋을까요!"

   "........................................................................................"

   이리하여 자기 방으로 돌아온 일원이는 머리를 정리하고 공부에 들어갔다. 일원이의 적극적이고도 파고 드는 학구열은 대단한 것이었다. 집요하고도 지칠줄을 모르는 그였다. 숙부의 말 대로는 '가히 물먹는 하마라면 지나치다 할 것인가.'그런 적이 있었다. 머리로 외우고 풀이하는 것, 하나 하면 10가지 길을 가는 머리를 지닌 천재성을 지닌 애였다. 지금까지 학생들을 가르쳐 봤지만 이런 애는 처음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이후엔 일원이에 대한 숙부의 인식이 판이하게 많이 달라졌다.

  놀랍게도 벌써 짧은 기간에 중학교 과정을 거뜬히 졸업하고 지금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공부하고 있지 아니한가!  영어실력이니 수학실력이니 모두 대단했다. 한번은 이놈이 이 어려운 수학풀이를 어떻게 해내는가 보자 하고 문제 하나를 제시했더니 그냥 척척 풀어냈다. 정규 고등학교 3학년 후반에 가서야 공부할 어려운 수학을 거뜬히 척척 풀어냈다. 하긴 중학교 공부 시작부터 어쩌면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공부할 과제물들을 이미 잘 해득하고 있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참 놀라운 일이었다.

   일원이는 벌써부터 의외로 인쇄소 사업에도 없어서는 안 될 주요한 역활을 듬직하게 해냈다. 그리고 친화력이 특심했다. 한번은 소장의 아내가 병환으로 위기를 맞고 위급해지자 도리어 소장의 마음이 지극히 연약하여져서 극도로 쇠약해지고 어려웠을 때 일원이의 대단한 역활과 활동과 격려는 물론 인쇄소를 거뜬히 지켜내고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이리하여 얼마만큼의 위기를 넘기고 극적으로 소장과 부인의 안정을 되찾았을 무렵 소장은 일원이 더러 이렇게 말했다.

   "일원아, 이제부터는 넌 한상 내 곁에 있거라!"

   소장의 이 말이 일원이에게는 보통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무망간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집 파랑새가 그때 이 소장님의 말씀도 내게 했을텐데...!"

   "이 말씀이라니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여기서도 그 파랑새를 가지고 싶으냐?"

   "아니예요. 그런 거 아니예요."

   며칠 후 일원이가 인쇄소에 나왔더니 일원이 책상 위에 파랑새 한마리가 든 큰 새장이  놓여있었다. 일원이는 소장의 며칠전 말씀이 불현듯이 생각났다. 그러자 때마침 소장이 들어왔다.

   "소장님, 이게 무슨 새장이예요? 제가 파랑새를 좋아하니깐 혹시...? 소장님, 이 파랑새가 새장 안에 같혀있는 것을 제가 재발 싫어한다면 어떡하시겠어요? 제가 마음 대로 해도 되요?"

   "그러느냐. 파랑새가 네 것이니 네가 하고싶은 대로 하거라."

   "소장님, 전 새라면 자유한 새가 좋거든요. 이 새를 지금 날려주면 안되요? 소장님, 자요!"

   "아니다 네가 원하면 네가 날려 보내려므나!'

   이리하여 일원이는 새장 문을 열고 파랑새를 푸른 하늘로 날려보냈다. 파랑새는 고맙다는듯이 가만 날다가 날개 쭉지를 돌려 일원이에게 인사를 하는듯 하더니 창공을 향해 훨훨 날개치며 날랐다. 일원이는 그 파랑새가 사라질 때까지 그 하늘 그 파랑새의 끝간데를 물끄럼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미소했다.

   "날아라. 지금 더 높이, 더 높은 창공으로 날아가거라!"

   일원이는 소장을 바라보면서 공손하게 말했다.

   "소장님, 감사합니다!"

   "아니야, 이게 일원이 네 사람 됨됨이가 아니겠노. 잘 했다. 잘 했어."

   일원이는 바로 이때 또 하나의 새장 안에 갇힌 한마리 새를 생각했다. "지금쯤 얼마나 날 기다리고, 얼마나 날 원망할꼬. 내 사랑하는 추월이가...", 그래서 일원이는 모종의 입을 모두면서  "새장 안의 또 하나의 푸른 새를 저 푸른 하늘로 자유롭게 날려 보내야지!" 하고 생각했다. 아무 것도 없는 일원이에게는 이건 비범한 결심이었다.

   사실 일원이는 바쁜 인쇄소 일,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학교공부, 숙부와 소장집 일들을 돌봐드리다 보니 너무나 바빠서  솔직히 고금도 새장 안에 있는 추월이를 그리워해 볼만한 시간의 여유 마져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잠자리에 누우면 그냥 골아떨어졌다. 생각하면 무척 아쉽고 슬픈 일이었다. 그래서 일원이는 이때 눈물을 주루륵 흘리면서도 그냥 두 손으로 닦고서 남자답게 의젓해했다. 그리고는 유리창 넘어로 "마지막날 눈물을 흘리던 추월이 모습"을 그려보면서 모진 결단을 마음 속으로 내렸다. 어쩌면 가망도 없는 결단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 추월아, 가마. 내게 넘지 못할 38선이 있느냐, 건너지 못할 강이나 바다가 있느냐. 이젠 널 자유하게 하마!'

   일원이는 어느날 이른 아침 머믓거리면서 공손한 어조로 숙부모님께 이렇게 이야기 했다.

   "숙부모님! 꼭 들어주시면 좋겠는데..."

   "무슨 일인데...?"

   "제가 한 5일 쯤 해서 고금도에 다녀오면 안될까요?"

   "왜 갑자기 그러느냐?'

   "어머니 아버지가 뵙고싶고 애인도 무척 보고싶거든요!"

   "무슨 애인일까? 결혼하곺은 애인일까?'

   예!"

   숙부는 손가락으로 책상머리를 천천히 장단 맞춰 두둘기면서 한참동안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숙부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 그렇다면 결혼까지 하고 왔으면 좋겠구나. 이제 나이도 되었고 한번 다녀오기도 먼 거리이고 하니 말이다. 7일 정도면 되겠느냐? 인쇄소 일도 고려해서 말이다. 결혼을 한 뒤 아내를 이리로 대리고 오면 어떠냐?"

   일원이는 차마 숙부모님이 이렇게까지 사려깊을줄을 몰랐었다. 그렇게만 된다면이야 오죽이나 좋은 소원성취 일인가 말이다.

   "숙부모님, 나의 최고십니다! 감사합니다! 말씀 대로 하겠습니다."

   이후로 일원이는 인쇄소 일에 바쁘시던 소장께도 허락을 받아냈다. 심지어 소장은 쾌히 허락을 하면서 둘이 살 거처는 염려하지 말고 아내를 이리로 대리고 오라고까지 한 힌트 말씀까지 했다. 일원이는 참 이상하기도 했다. 일원이의 일이 오히려 생각 보다 더 앞서가면서 풀려갔다. 아마도 신은 계시고 섭리로 나를 운전이라도 하시는 것이 아니냐 싶어졌다.

   일원이는 곧 방으로 돌아와 즉시 편지를 써서 아버지에게 보냈다.

   "...부모님, 곧 다시 가서 뵙겠습니다. 기간은 한주일간이예요. 이 기간에 추월이와 결혼을 하고 같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해 주세요. 결혼식이나 재정은 걱정하지 마세요. 자식이 돌이간 대로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결혼식 때 부모님과 추월이와 추월이 엄마가 입을 옷은 여기서 가져갑니다. 그리고 가능한이면 잔치 때 쓸 고기류를 가지고 들어가겠습니다. 추얼이에게도 따로 편지를 냅니다. .....부모님 뵙고 싶습니다. 그간 안녕히 계세요."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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