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단편소설} 고금도명사 이일원박사/천공을 향해 나래를 펴다(8-3)
페이지 정보
본문
[천공을 향해 나래를 펴다]
일원이는 천리길 숙부집을 찾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모든 자연경관이며 펼쳐보이는 문명사회가 무척 부럽게 보이면서도 어쩐지 줄곧 내 것은 아닌 남의 것, 남의 길이며, 남의 외투 거치장스럽게 걸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 이 좋은 포항 같은 세상에서 살 수 있겠는가 싶어져서였다.
그런데 지금 막상 숙부가 포항에 취직을 시켜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일원이는 뜻밖이고 의외여서 기분이 너무 좋아 속으론 싱글벙글했다. 속에서 생기가 막 솓구치는듯 했다.
일원이는 숙부모를 따라서 집으로 들어섰다. 이 집이 숙부모가 몇년 전에 산 집이란다. 일원이는 군대생활을 할 때 여럿이 함께 기거하던 푸른 막사가 자기가 살던 집 보다 더 반듯하게 사각지고 잠자리도 오히려 편안하고 좋았다고 회상하고 지내던 터인데 막상 숙부집을 와서 보고나니 무슨 대궐 같기만 했다.
일원이는 아무런 말 없이 깨끗하고도 잘 정돈 된 이방 저방을 열어보면서 이곳 저곳을 눈여겨 살펴보았다. 그런데 일원이에게는 꼭 한가지가 자기 시선을 오래도록 땔 수 없게 붓잡아 매는 것 같기만 했다. 바로 그것이란 많은 서적이 즐비하게 꽂힌 숙부의 서재였다. 이런 서재는 일원이로서는 처음 보는 서재였던 것이다. 정말 보화처럼 무척 부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일원이는 이렇게 말했다.
"숙부님, 숙부님은 고등학생을 가르친다지요. 수학을 가르치고요. 참 훌륭하십니다. 숙부님은 이 많은 책들을 다 읽으셨을텐데 장하십니다. "
숙부는 허허허 하면서 "네게서 훌륭하고 장하다는 칭찬 말을 듣는구나, 그래. 너 역시 책을 좋아한다니 반갑구나. 책을 많이 읽어라. 네 아버지에게서 얘기 잘 들었다. 그런데 어쩌냐? 둘도 없는 내 친구가 지금 여기 포항에서 산단다. 그 친구는 재법 큰 인쇄소를 가지고 있단다. 그분의 아버지는 서울에서 큰 출판사를 경영하지. 그런데 그 친구는 장인의 건강을 도울 겸 해서 포항에 내려왔다가 지금은 아내의 권유를 따라 그만 이곳에서 살면서 인쇄소를 경영한지가 몇년 된 분이지. 널 이 인쇄소에 취직시켜준다면 이것 저것 잘 해 볼 마음이 있느냐? 그렇게 하면 이래 저래 책을 접할 시간도 많아질 게다. 이제 보아하니 어쩜 네게 안성맞춤 갔구나!" 그랬다.
이때 즉시 일원이가 말했다.
"그럼, 이미 숙부님이 그분과 내 취직 관계 이야기를 다 나누어 보셨어요?"
"그렇고 말고다. 그래서 너를 오라고까지 했지. 그이가 널 어서 대리고 오라고 그러더라."
"그래요. 아, 좋습니다. 제가 인쇄소에 취직하는 것을 이 일원짜리 일원이가 아주 쾌히 승낙하겠습니다! 하하하...허허허..."
"이놈, 호탈하기는..."
그런 다음 아마도 그 뒷날이었을 게다.
일원이는 숙부의 서재를 차근차근 훑어보는데 무엇인가 보화와 같은 책들이 많이 눈에 띄는 것이었다. 일원이는 자기도 이런 책들을 갖고 싶어졌다. 오늘 당장에 가지고 싶은 책은 '국어사전'이었다.
바로 이때 숙부가 학교에서 돌아오셨다.
"숙부님, 제게 책 한권 제 것으로 꼭 주셨으면 좋겠는데 어떠세요?"
"무슨 책인데?"
"여기 이 '국어사전'이예요."
"좋구나. 주지. 네가 그것을 좋아한다니 네게 첫 선물로 주지."
일원이는 또 한번 말했다.
"첫 선물이 있으면 다음 선물도 있잖겠어요? 이것도, 이것도, 그리고 에-, 이것도요."
"그럼, 네권이나 주게 되네. 그래 좋다. 그렇게 하지."
"일원아,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단다. 사람이 공부를 하고 유식해져야 한단다. 사람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예술, 윤리와 도덕, 그리고 요즘은 군사, 국제관계인 국제정치, 국제간의 경제, 등을 넓고 깊게, 다방면으로 많이 알아야 한단다."
"숙부님, 그 말씀 다시 한번 불러주세요. 딕테이션하겠습니다."
"..................................................!"
"와, 공부를 하려면 이 세상에 이런 분야들이 있었구만요. 그래도 먼저는 폴리틱스와 에커너믹스라, 숙부님 잘 알겠습니다."
"아니, 이미 정치와 경제라는 영어 단어를 알고 있었니?"
"네, 몇년전부터 영어사전을 마구 다 외우는 바람에 익혀둔 말이지요."
"그래, ?...!..."
일원이가 훗날에 '정치'를 전공하게 된 것은 바로 이때 이런 단순한 숙부와의 대화의 발상에서 비롯되었는데 어쩌면 그의 적성 대로 안성맞춤이 되기도 했던 것 같았다. 실로 제자에 대한 스승의 가르침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일원이에 대한 주의성 깊은 숙부의 가르침에서 실증 되는 것은 중요한 대목 이야기 라고 해서 지금도 회자 되고 있다.
일원이는 그날부터 '국어사전'을 펴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눈에 불심지를 켜고 읽어내려가면서 탐구하기를 시작했다.
"숙부님, 이게 경수 사진 이니예요? 경수는 어딜 갔지요?"
"아, 궁금했을텐데 미처 경수 이야기를 못해 줬구나. 지금 경수는 친구집에 갔단다. 2주 후 쯤 미국유학을 간다고 해서 바쁘더니 요즈음은 부산하게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고 있는 모양 같구나."
"아니 먼 나라 미국까지요. 설마 보리 몇 되박 놔두고 유학 보내기식은 아니겠지요. 머나먼 미국 어디에 유학을 보내고 학비를 어떻게 조달할 수 있을까?, 이런 거 말이예요?"
"경수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했는데 더 많이 공부를 하고싶다고 해서 미국 켈리포니아 주립대학으로 가는 모양이다. 경수 자기가 알아서 추진할 거란다. 길은 만들고 도전헤 봐야하지 않겠느냐!"
"'길을 만들고 도전해 보다!' 아, 정말 멋진 숙부님이시거늘....!"
"경수는 얼마나 좋을까. 난 ABCD...하고 있으니... 숙부님,전 솔직히 따분하고 많이 부럽습니다!"
"너도 공부를 하렴. 기회는 많이 있지 않니. 과거는 후회를 한들 다 쓸 데가 없어. 항상 현재이고 앞으로야."
"제겐 두가지예요. 아직 기회는 있는데 돈이 문제지요. 가난은 나의 숙적이예요."
"이건 내 경험인데 하려고 하는 마음이 먼저지. 길 아닌 길을 걸어다니다 보면 나중에 길이 만들어지더라구!"
"아, 그런가요. 전 공부하려고 하는 마음으로 10여년간 병이 들 정도였지만 지금까지 학교공부를 못했어요. '나중에 길이 만들어지더라'이면 그 나중이 내겐 지금 아닐까요? 이제 어떻게 해서라도 길이 아닌 길을 마구 걸어다녀야 하겠네요! 그렇다면 그걸 어떻게요! 엄두가 나지 않거든요."
이렇게 말한 일원이는 일원이가 갖는 특유의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숙부는 일원이의 말을 다 듣고 난 다음 불이 아직 켜지지 않은 전등을 예의주시하여 쳐다보면서 숙고하시듯이 탁자를 가만 가만히 어느 음율에 맞춰 딱~ 때리고 있었다.
"일원아, 네가 하고자 하면 길은 있지. 매일 다니는 학교 말고도 말이다. 그러나 정신력이 요구 된단다. 꾸준한 연구력, 지칠줄 모르는 돌파력 말이다!"
"아니 학교를 다니지 않고도 길이 있다구요? 무슨 그런 길이 있어요? 정말 길이 있을까요? 숙부님!"
일원이는 숙부의 옷을 부여잡듯 하면서 가까이 다가와서 지금 속히 그 길을 제시하라는듯이 두 귀가 쫑깃해져 마구 재촉하는 말투로 말했다."
"지금 너는 너 같이 공부하고자 하는 불타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오고 있었단 말이냐! 그래 방법이 있으니 가르쳐 주마! 너 같이 아쉽게 공부의 기회를 놓힌 이들을 위하여 학교를 매일 다니지 아니하고도 정규 학교를 졸업한 것이나 다름이 없이 학교 공부를 졸업할 수 있는 '검정고시'제도라는 것이 있단다. 그 제도가 얼마 되지 않았지. 그러니깐 너의 경우 공부를 부지런하게 한 다음 그 시험에 응시해서 소정과목들을 모두 합격하면 되는 거야.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그렇게 졸업할 수 있단다! 알겠니?"
일원이가 숙부로부터 이 말을 듣는 순간은 꼭 천지개벽이라도 하는 순간 같아 실로 충격적이었다. 어쩌면 압축된 풍선이 자칫 폭발이라도 할 것 같은 충격, 바로 그런 것이었다.
"아, 그런가요. 그런 길이 있었구만요. 그런데 미처 제가 몰랐었구만요. 그럼, 내가 당장 그렇게 할께요. 숙부님, 숙부님이 전적으로 그 길을 안내해 주세요. 그리 해주시겠지요? 공부는 다 제가 해내겠습니다. 씨암닭 잡듯이 마구 뿌리 채 뽑겠습니다! 숙부님!"
"넌 할 수 있을 게다. 그렇게 해 보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이야. 네 신세가 달라질 것이야. 명암이 달라진다고. 암 그렇고 말고다."
"숙부님, 틀림이 없는 말씀입니다. 화이팅! 제겐 지긋지긋하게 가슴 사무친 일이고요!"를 일원이가 외칠 때 숙부는 일원이의 얼굴 빛에서 무서운 섬광 같은 것이 번뜩이는 것만 같아 놀라웠다. 숙부는 어떻게 하든 이런 애는 가르치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 깊이 사무쳤다. 그날 밤 숙부는 잠이 들기 전에 그가 일원에게서 받은 감동이 아직 좀체로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마자 이심전심으로 아내가 꼭 같이 공감하면서 흥분한 것도 아무리 생각해도 예사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깐 일원이가 사뭇 늦은 나이에 머리를 싸매고 중학교 공부에 매달린 것은 정확히 말하면 숙부집에 온지 3일 후부터인 셈이었다.
바로 이때 숙부와 일원이와의 이같은 이야기의 나눔이 일원이의 장래를 전환시키고도 남아돌아 승승장구 일원이를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인물로까지 꼴짓는 전환점의 계기가 되었다 할 것이다.
(다음 계속)
- 이전글{축사} '미주재림문학' 제4집 발간을 반기며 / 전병덕 11.10.17
- 다음글'미주재림문학' 제4집이 출간됐습니다 11.10.1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