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단편소설} 고금도명사 이일원박사/새장에서도 나래를 펴다(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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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에서도 나래를 펴다]
"고금도명사 이일원"은 1942년 3월, 고금도에서 태어났다. 일원이는 그의 집 가까이에 있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인 어린 나이에 심한 정신적인 충격과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일원이가 좋아하는 것은 오직 공부였다.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거나 공부에 집중하면 좀체로 그 정신이 흩틀어지지 아니했다. 그러나 일원이는 무척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집안이 몹시 가난하고 돈이 없어서 더 이상의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었다.
자기 공부반에서 2-3등 하고 6등 한 놈도 육지로 보란듯이 유학을 가는데 언제나 줄곧 1등만 한 낸들 유학을 못가겠느냐는 생각에 많이 울고 또 울었다. 일원이는 여러 차례 엄마 아빠에게 간곡하게 애원을 하면서 공부를 더하게 해달라고 졸라댔지만 매 번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공부를 더하고자 하는 일원이의 마음은 오히려 요원의 타오르는 강열한 불길처럼 집요하기만 했으니 이 일을 어찌 하랴.
오늘 아침에도 일원이는 공부 마음을 단단히 가다듬고 벼르다가 공부를 더하게 해달라고 아버지에게 조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따라 아버지의 눈치가 이상해졌다. 아버지가 다른 때와는 달리 아주 인자하시고 온화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무슨 수가 트인 모양이었다. 이제 공부가 가능해지나 보다 싶어서 가슴이 탁 트이는듯 하고 무척 기뻤다.
"일원아, 이리 와서 앉아 봐라!"
"예, 아버지!"
이리하여 일원이는 얼른 아버지 곁으로 다가 앉으며 다소곳이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마도 아버지가 이번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소원을 들어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뻤다. 그래서 미소짓는 얼굴하며 아버지의 응답을 기다린 것이다.
아버지는 아주 나지막한 음성으로 천천히 말씀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일원아, 우리 집 이 판국에 공부를 하면 무엇하겠느냐. 밥이 나오더냐, 국이 나오더냐."
너무나도 의외인 아버지 말씀에 일원이는 죽을 상 하며 말했다.
"예에...아버지, 아버지ㅡ"
"천상골 정수를 봐라. 오늘 나무 하러 산에 올라가더니 나무 한 짐 지고 내려오지 않느냐. 이래야 사는거여! 지금 우리 집 보리 몇 되박 있는 게 우리 재산 다인데 널 어떻게 저 바다 건너 육지 어디로 유학을 보내고 또 어떻게 네 학비를 조달할 수 있단 말이냐?"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ㅡ"
"그래 아버지 죄이지. 그러나 지금은 어찌 할 수 없구나! 일원아, 힘들겠지만 당장 네 생각을 그만 바꾸고 접어두거라. 응! 그리고 네 나름 대로 대장부 같이 살아보아라!. 응!"
이렇게 아버지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일원이는 다시금 직답을 했다.
"아버지ㅡ, 공부하고 싶어요, 공부를...포기가 안 되. 포기가 안 되는데... 아버지이ㅡ, 대장부 같이 살려고 그러는데... 아버지이ㅡ 아버지이ㅡ"
하기야 아직 철이 없는 어린 일원이에게 아버지를 설득할 무슨 말이 더 있었겠는가.
"일원아, 옷을 놔라. 옷을 노라고ㅡ!"
일원이의 안타까워 하는 음성이며 목이 맨 이 말을 아버지는 더 이상은 들을 수 없었음인지 마구 눈물을 흘리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일어나시더니 쏜살같이 밖으로 나가시고 말았다.
집안은 갑자기 적막해졌다. 집안에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계시지 않는다. 이젠 일원이 생각에 다시는 묘안이 없는 것 같았다. 이젠 묵묵부담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날개 쭉지가 있어 하늘로 날겠느냐, 돈이 있어 선가를 내고 배를 타겠느냐. 난 새장에 갇힌 새와 같구나 생각해 보니 일원이는 마음이 한없이 슬퍼져서 홀로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그러다가 밖을 힐끗 바라보니 보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집 앞 싸리문 마른 나무 가지 위에 전에 보지 못한 파랑새 한 마리가 날라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파랑새는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부산하게 지저귀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무슨 황급한 소식이 있다고 내게 전하는 전갈 같았다.
"새야 새야, 너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 새야 새야, 난 어찌 하면 좋겠느냐? 말 좀 해 보거라. 내가 말야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공부를 더 할 수 없단다. 네가 나를 업고 공중으로 날라가서 학교공부를 할 수 있게 할순 없겠니? 우리 집 보리 몇 되박이 우리 재산 전부래... 새야 새야, 말 좀 해 보렴. 넌 이리도 날고 저리도 날 수 있잖니. 저 천공으로도 멀리까지 날 수 있잖니. 그렇지. 새야 새야, 좀 어떻게 해 봐!"
일원이와 파랑새와의 대화가 이렇게 끝날 즈음 일원이는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이렇게 이 일이 있은 후였다. 일원이는 아버지 말씀에 꽁꽁 묶여버렸음인지 이때 이후로 단 한번도 공부를 하게 해달라며 어머니 아버지에게 조른 적이 없었다. 정말 마음을 고쳐먹은 모양이었다. 반면에 어쩌자고 다른 쪽으로 참 심상치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상 싶었다. 일원이는 어디서 갖어오는지는 잘 모르지만 많은 서적들을 가져다가 쌓아놓고 아버지가 만든 책상 머리에 고추 앉아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참 기특하기도 했고 한 시름 놓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후유ㅡ. 선생님 말씀에는 일원이는 "천재"라는데... 별 수 있담...
"일원아, 공부는 낮에 하고 기름 달아지니 밤에는 불을 끄거라."
"예, 아버지."
"지금도 공부하니. 날이 새겠다. 잠도 자야 공부도 잘 할 수 있잖켔니!"
"예, 어머니."
늘상 이렇게 말하면서 사는 생활이 일원이네 집 세 식구의 단조로운 생활습관이었다. 단순하고 정직하며 순전한 집안이었다.
이러는 동안 많은 세월이 거침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일원이는 아주 큰 키에 유난히 눈매가 좋고 잘나 보이면서도 건장한 채력을 지닌 어엿한 홍안의 청년으로 둔갑해 있었다.
일원이는 보리 몇 되박이 아니라 몇 섬이라도 나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악착같이 앞산 거칠고 비탈진 땅을 개간하여 기름진 옥토로 일구어 놓았다. 동네 사람들은 이 밭을 지나다니면서 일원이 하는 일에 대하여 설래설래 혀를 내둘렀다. 이러고 보니 일원이네 집은 이젠 따로 부자가 부럽지 않게 된 셈이었다. 일원이에게는 사귀는 친구도 따로 없었다. 다만 시간만 나면 공부를 하거나 고작 먼 산을 물끄럼이 바라보는 것이 그의 일락이 되었다. 일원이는 이때쯤 해서 산에 올라가 앉아서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산행을 그리도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날이었다. 일원이는 무심코 산에서 돌아오는 길인데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포항에서 산다는 사촌집에서 일원이 더러 한번 다녀가라는 전갈이 왔다는 것이었다. 일원이는 이 말을 듣고는 "허, 그게 그리 쉽나!" 그러고 말았다.
하긴 이 시대는 어느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기가 무척 빈곤한 시대였다고 사료되어진다.
그런데 며칠 후 아버지께서는 또다시 포항건의 문제를 말씀하셨다. 일원이가 포항을 다녀올 여비까지 보내왔다는 것이었다. 일원이는 확인하듯이 말했다.
"아버지, 지금 그 여행비는 받으셨어요?"
"그럼..."
그래, 여비까지 보내왔다면 이 일원이가 포항을 가는 건 기정사실 아닌가 싶었다.
일원이는 이 말을 듣자마자 마치 비오는 지루한 날 개고 갑자기 강열한 햇살이 쨍하고 온 몸에 비춰오는 것 같은 무슨 환희가 온 몸을 감싸는듯 했다.
그래서 일원이는 "와, 포항을 간다. 1,000리를 가보자구나! 성공이 따로 없지!" 그랬다.
사실 대로 말하면 일원이는 군대 갔다가 재대하고 돌아오는 길에 육지에서 2-3일을 어렵싸리 지체한 것은 여망이 보이지 않는 새장 안으로 돌아오기 싫어져서 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행길이지만 이곳 저곳 육지며 포항 가는 길이 열리다니 행운도 보통 행운이 아닌 셈이었다.
그래서 일원이는 이렇게 외쳤다.
"우리 집 파랑새 지저귐이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가보자구나. 가 봐. 어서 포항땅으로!"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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