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대상(500만원) 당선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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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어머니의 행복
오수화(미국 뉴져지)
`나는 요즘 너무 행복해’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친정 어머니의 목소리다. 어머니는 올해 연세가 여든 셋이시다. 그리고 치매를 앓고 계신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사람들의 큰 소망 중의 하나가 장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들어 평균 수명이 현저히 늘어나자마자 이상하게도 사람들에게 그것이 공포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 같다. 늘어난 수명을 누리고 살자면 많은 것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또 한 가지 공포를 들라면 치매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동창 모임에 가면 으레 치매 얘기가 나오곤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며 주위사람들에게 큰 짐이 되는 치매에 대해 혹시라도 걸리면 어쩌나 모두들 걱정을 한다. 그런 요즘 어머니의 행복은 의외의 일이다. 어머니에겐 치매가 축복인 것이다.
어머니 세대의 분들이 다 그러 하셨 듯, 어머니가 살아온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이다. 두 번의 큰 전쟁과 일제 치하에서 살아오시며 겪은 일들은 우리 세대가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상처와 공포를 그들 마음에 새겨 놓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 하소연이나 원망을 늘어놓으신 적이 없다.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는 듯, 그저 묵묵히 살아 내 오셨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일에 대해서만큼은 여러 번 이야기를 하셨다. 외할머니와 함께 스파이로 몰려 공산당에게 끌려가신 일이다.
며칠 후면 맥아더 장군이 인천항에 입성한다는 비라를 주은 어머니는 기쁜 마음에 친구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그 친구는 즉시 공산당에 밀고를 했다. 마침 어머니 지갑에는 좋아하는 미국 남자 배우의 사진이 들어 있었고, 우습게도 그것이 증거로 작용해 두 모녀는 하루아침에 미국 스파이로 몰리며 공산당 거처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한밤중이 되었다. 우연히 창문을 밀어본 어머니는 문이 열리는 것을 발견하고 밖으로 나오셨다. 이층 지붕이었다. 옆방엔 자신의 어머니가 감금되어 있었으나 미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가슴은 무섭게 두방망이질을 쳐댔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머니는 지상을 향해 내리 뛰었다. 한 쪽 다리가 부러졌다.
그 다리를 질질 끌고 어둠 속을 뛰었다. 마침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가 있는 것이 생각 났다. 그 친구 집에서는 고맙게도 위험을 무릅쓰고 어머니를 숨겨 주었다. 그리고 어머니 외가에 연락을 해 주었다. 다음날 밤 어머니는 외가에서 보내온 손수레에 거적을 덮어 쓰고 짐으로 가장하여 외가 식구들과 함께 인천항을 떠나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그렇게 자신의 어머니를 잃어 버리셨다.
어머니가 자신의 어머니와 한 집에서 살아 본 것은 불과 몇 년이 되지 못했다. 외할아버지가 간척사업을 벌이며 친정 재산을 탕진하여 친정이 거의 몰락해 가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하는 수 없이 그 당시로는 드문 이혼을 하고 괴로운 마음에 어머니를 외가에 맡기고 일본으로 오랜 유학을 떠나셨다. 외조부모는 사랑이 많은 분들로 그런 어머니를 잘 돌보아 주셨다. 그러나 어린 어머니에게 그 긴 기다림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묻지 않아도 그 외로움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랜 해외생활에 병이 들은 외할머니가 어머니 곁으로 돌아오신 것은 해방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6.25 사변까지의 몇년간 시골의 한 목장에서 외할머니의 건강을 위해 함께 살고 계셨다. 아마도 어머니에겐 일생 기다리던 황금같은 시간이었을 것이고 그 시간은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로 끝이 나 버렸다. 어떻게 그리도 비극적인 삶이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쫓아다녔을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플 뿐이다.
그 후 어머니는 부산 피난시절에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하고 우리 형제들을 낳기 시작하셨다. 언젠가 한번 물은 적이 있다. 외할머니와 그렇게 헤어지고 생사도 확인되지 않은 그 혼란하고 슬픈 시기에 어떻게 결혼을 감행할 수 있었는지. 바로 그 혼란이 어머니를 결혼하게 만들었다는 역설적인 답이 돌아왔다. 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형제도 부모도 없이 평생 유일한 가족인 외할머니가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살았던 어머니에게 가족 형성이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절실한 요구였을 것이다.
최근의 일이다. 한 친척분이 어머니를 찾아오겠다고 전화를 하자, 부역하지 않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해야 하니 식빵을 열 봉지 사다 달라는 부탁을 하셨다고 해 가족들을 놀라게 하였다.
어느 날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웠는지 잊혀진 전쟁이라며6.25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 할머니가 겪은 일을 얘기 해 주었다. 그 한 번이었다.
시 쓰기를 좋아하시던 어머니를 닮은 것일까. 얼마 후 작은 아이가 학교에서 자기 시가 당선되어 문예지에 실리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문예지가 되어 나오도록 나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어느 날 아이가 내밀은 책자 안에 실려 있던 어머니에 관한 시, 거기엔 어머니의 그 밤이 이렇게 써있었다.
/………………/ 우연히도 창문이 열렸다. – 그러나 그녀는 망설임에 걸려든다./ 덕경은 그녀의 태 안에 나를 느꼈을까?/ 어머니를 버리고 덕경은 뛰어 내렸다./ …………….../ 이기적인 나, 이렇게 그녀를 내몰았다. `뒤 돌아 보지 말아요.’/ 나의 할머니는 이렇게 값을 치루고 몇 년의 생을 더 얻었지/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으로 그녀의 죄의식은 상쇄 될 수 있을까?/
이 부분을 읽는 순간 갑자기 후두둑하며 굵은 눈물이 내 눈에서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어머니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서로 말을 하지는 않았어도 그날 밤 어머니 심정이 어땠을까 늘 마음이 아펐었다. 아이에게도 이런 마음을 말 해 본 적이 없으나 아이는 정확하게 그 순간을 짚어내 이야기하고 있었다.
혈연의 끈이란 이런 것일까.
미국에서 낳고 자란 우리 아이들. 서로 언어가 다르니 할머니와 의사소통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아이들이 다른 문화권에서 자라고 이역만리 떨어져 있어도 할머니에게 전쟁이 주고 간 상처를 이렇게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놀라움과 동시에 뭔지 모르게 내 어깨에 놓여 있던 중압감이 시원하게 없어짐을 느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낯 설은 곳에서 정착하기도 힘에 겨워 아이들에게 제 뿌리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나도 모르게 늘 내 어깨에 걸머져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뭔지 모를 미안함도 조금은 벗어 버린 듯 했다. 잃어버린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조차 충분히 느낄 사이도 없이, 오로지 깊은 모성애 하나로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우리를 길러 내느라 숨 가쁘게 살아 오신 그 모진 세월에 대한 미안함. 비명에 가셨을 외할머니에 대한 미안함까지 실린 눈물이었다면 과장일까.
이제서야 나도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 본다. 어머니의 일부인 나와 또 나의 일부인 내 아이 속에 이렇게 어머니는 살아 계신다고. 그 어떤 것도 면면히 흐르는 이 생명의 원리를 바꿀 수는 없다고. 이제는 모든 것을 이루셨으니 오직 행복하시기만 하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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