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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장려상}


신비 / 최효정    


   "와우!”, “와!” 나는 베란다에서 경이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탄성을 지르면서 “무슨 꽃일까요?” 포토 갤러리에 내 꽃 사진들을 올리며 그렇게 질문했다. 그 완벽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너무너무 황홀한 꽃들. 작은 듯이, 그러면서도 그 하나하나가 암술 수술들 다 있는 완전한 꽃 그 자체이며, 팔십여 개의 꽃이 한 뭉치로 보일 때 더욱 아름다운 꽃, 그 이름만 들으면 누구든지 “아!” 하고 다 아는 꽃, 그것은… 파 꽃이었다.

   친구가 퍼 가라고 준 파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내가 아름다운 꽃을 보면 뿌리째 퍼 왔다가 심으며 물을 주는데도 너무너무 가엾이 시들어 가는 것을 알기에 화분 기르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생명의 신비를 경험하면서 조금은 달라졌다.

   2009년 8월 9일, 캘리포니아 LA 남쪽 어느 대학 근처 아파트로 온 나의 생활은 뭔가 모르게 쫓기는 바였다. 칠월말까지 직장에 근무한데다가 일주일 만에 짐을 싸서 미국에 온 나. 아이들 학교 개학은 팔월 십이일이었다.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아이를 두고 있었다. 부랴부랴 짐을 싼 것도 개학에 늦지 않고자 함이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이 다닐 학교에 가서 등록했다. 이전 학교에서의 재학 증명서, 성적 증명서 등을 일일이 떼 오고 예방 접종카드를 갖고 왔기 때문에 등록에 문제가 없었다. “미국에 오면 영어를 해야 하는데, 영어가 필요 없겠네!” 멕시칸 아이들이 많아서 학교에 가서도 영어 대신 스페인어가 주류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첫째 아이는 십오 분 걸려서 자전거로 통학한다. 중학교에 다니는 둘째는 통학버스로, 오 학년 막내아들은 아침에 걸어서 오 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 데려다 준다. 그나마도 학군이 같은 것만도 다행이다. 같은 날 쉬고 같은 날 공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막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오후에 하는 무료 영어 수업을 듣곤 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친구도 가족들과 함께 산호세에 계시는 어머니를 뵈려고 길을 떠났고, 아이들 친구들이 한국에 있어서 보내 달라는 성화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그러던 중, 은퇴 목사님 사모님께서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크리스마스 식사에 초청하셨다. 남가주에 사시는 사모님 가족 분들도 많이 오셨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인연이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 아이들은 명절날 사모님 댁에 가는 것이 당연시됐다.

   작년 Thanksgiving Day 때도 우리를 점심에 초청하셨다. 그날 나는 새벽 내내 분주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나니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눈을 뜨면 벽 주위가 돌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아이고, 어지러워. 엄마 가서 조금 누울게.” 하고서는 눈을 감고 휘청휘청 침대로 향해 잠을 청했다. 그러던 중 사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깨어나 보니 머리가 어지럽지 않았다. 내가 수면 시간이 부족했나 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아이들과 사모님 댁으로 갔다. 가족 분들과 인사를 하고 점심 준비를 할 즈음 어지러워진 것을 느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마침 내 옆에 계셨던 사모님을 붙들고 침대로 갈 수 있느냐고 했다. 아침에 있던 증상이 또 왔다. 침대에 누워서 벽이 어지러워져서 눈을 감고 구토까지 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지 사모님께서 911을 부르고 응급실에 갔다. 여전히 구토했다. 구토를 안 나오게 하는 약을 먹고 또 구토하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이들 셋이 눈앞에 어렸다. 어언 네 시간을 기다려 CT 검사에는 이상이 안 보인다는 소리에 “됐어, 살았어!” 하고 이제까지 초조했던 것이 풀렸다.

   친구 등에 업혀서 사모님 댁으로 간 것이 기억난다. 여전히 벽이 흔들려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 누운 채 화장실도 못가고…. 사모님께서 나를 위해서 식사까지 챙겨주시는 데 눈물이 났다. 나도 모르게 어머니라고 불렀다. 두어 날 동안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잠만 잤다. 사 일째 되었던가, 이제는 눈을 감은 채 벽을 짚고 머릿속에 계산하며 더듬더듬 화장실도 갈 수 있고 양치질도 하게 되었다. 아침엔 창밖으로 화창한 하늘이 실눈 뜨고 보였다. 이제는 혼자 화장실도 갈 수 있어서 집에 가겠다고 했다. 병원에 있었을 때 큰 애가 담담하게, 겁먹은 표정으로 서 있는 게 눈에 밟혀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직은, 더 머무르는 게 좋아.” 내가 생각해도 내가 아이들을 위해 식사 준비를 할 것 같지 않았다. 약 일주일을 있었다.

   그 후 아침에 일어나서 약을 먹고 도로 약에 취해 잠을 자게 하는 생활이 한 달…

미래도 알 수 없고, 정말로 암담했다. 그날도 거실 소파에 누워 잠을 자다 깨보니, 바로 앞 탁자 위에 선물로 받은 화분에 꽃봉오리가 진 것을 보았다. 한 달 동안 자라 주었구나. 기력도 없어 셀룰러폰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1월 10일, 한 달 동안 눈에 띄지 않게 자라났다. 꽃을 보여주기 위하여 이렇게 섰구나. 감사합니다.

   1월 13일, 꽃 네 송이가 활짝 핀 것에 감사, 뿌리 몽우리가 팽팽하지 않았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저절로 되는 것은 없구나 하고 뭉클해진 것에 감사합니다.

2월 10일, 시든 꽃 화분을 버리려고 했는데 다른 쪽에서 줄기가 나서 먼저 꽃보다 훨씬 높아졌다.

   생명의 신비가 놀랍다. 쑥쑥 하루에 오 센티미터는 자라는 데, 나도 모르게 “쑥, 쑥” 기운이 솟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월 19일, 어제는 꽃봉오리가 높이 길게 섰는데 오늘은 양옆으로 두 개, V자형으로 솟은 것이 두개. 보여요. 감사합니다.

   3월 6일, 화분주위 탁자에 보니 물 같은 것이 있었다. 닦으려고 보니 물이 아니고 진득진득한 것이었다. 어디서 나오나 보니 꽃의 암술이었다. 그렇게도 생명을 보존하려고 애쓰는구나. 나는 경이함과 꿀벌 역할을 안 해 주었구나 하는 자책감에서 해결되어 감사합니다.

   3월 7일 먼저 핀 꽃이 씨 맺은 것 감사합니다. (나의 감사일기)

   이렇게 매일매일 감사 일기를 쓴다. 나에게 쉼을 주신 것에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나에게 쫓겨 살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생명의 신비를 느끼면서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오늘 아침도 나는 베란다의 꽃들에 물을 주면서 셀 폰 카메라로 스물세 개의 크고 작은 방울토마토 열매의 신비함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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