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단편소설} 고금도명사 이일원박사/그리하여, 파랑새는 천리를 날고...(8-6)
페이지 정보
본문
[그리하여 파랑새는 천리를 날고...]
척박한 가난시대의 토양을 반기며 서로 같은 마을 가까이 태어난 청춘남녀, 일원이와 추월에겐 이지음 고금도 몇 날이 참으로 달콤하고 흐뭇하기 그지없는 나날이 되었다.
전라남도 남해상에 위치한 완도와 조약도 사이에 있는 고금도(어제와 오늘이라는 뜻)는 면적 30 재곱 킬로미터, 해발 245,9미터에 해당하는 이 작은 고도는 그동안 이들을 오히려 오붓하고도 포근하게 안아 키우며 성년이 된 이들로 하여금 마지막 세계로 뻗어나아가는 전초기지로 달콤한 결혼이라는 백년가약의 진귀한 선물까지를 선사해주었다.
사실상 일원이와 추월, 추월이와 일원이에게는 남해의 고금도란 이 훗날 이 세상을 살아갈수록 잊을 수 없는 순박함의 향취서린 정답고도 그리운 고향길이 되었다.
결혼식날이 되었다. 추월이 집 넓은 마당엔 두루루 풀려나가면서 깔리는 여러 개의 멍석이 가지런히 깔렸다. 그리고 상하 동네사람들이 즐겁게 막 이 집으로 모여들었다. 이미 '흰 쌀밥에 고기국 잔치' 라는 말이 온 동네에 회자되면서 애기들까지 좋아하며 총 동원 되어 마구 모여와 흥성댔다.
그런데 정작 어찌 된 일인가. 오늘 따라 둘 다 유난히 훌직하게 크게만 보이는 이 신랑 신부는 현대식이라는 정장차림의 옷을 입었지 그 중하다는 사모관대도 쓰질 않았다는 얘기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 사람들은 자못 의아해했다. 그리고 더더욱 세상에 주례자가 없는 신식 결혼식이란다. 이리하여 동네 사람들이 가만 보아하니 다만 추월 엄마와 일원이 부모가 고운 비단옷을 차려입고서 신랑신부 앞에 나란히 섰다. 묘한 일이로고. 이것이 지금 결혼식이란다. 어허 이해가 안된지고...
추월이 엄마는 비단저고리 옷고름을 곱게 한쪽으로 재치면서 웃는 낫 하며 일성했다. "둘이서 자식 많이 낳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거라!", 이렇게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말 한마디를 말했다. 그러고는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그러자 가만히 거동을 보아하니 일원이 엄마 차례인 모양이었다. 한걸음 앞으로 나오더니 "두 애 다 한 몸 되어 무병무사하고 건강하여 자녀손 잘 낳고 한 마음 한뜻 되어 행복하게 잘 살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이 애미의 바램이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응당 일원이 아버지의 차례인가 보다. 무엇인가를 말하려다가 주춤한다. 좋은 옷을 잘 차려입은 아버지 모습이 일원이에겐 오늘 따라 참 훌륭하게 눈에 비친 아버지 모습이었다. 일원이 아버지가 말을 했다.
"내가 이루지 못한 뜻과 꿈, 너희들이 다 이루거라. 그리고 건강하거라. 나 보다 자식들을 더 많이 낳거라. (이때 사람들이 많이 웃어댔다.) 그리고 대장부 같이 굳굳하게 잘 살아가거라. 지난 날에는 너무나 너희에게 미안했다. 오늘은 너무나 좋구나!....."
그러고는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순간 장내는 무엇인가를 기다리듯이 조용해졌다. 무슨 말이 이어질 법 한데 말이 이어지질 않았다. 그러자 일원이가 아버지 앞으로 한 두 걸음 가까이 나아가서 귓속말로 무슨 말을 가만히 말했다. "아버지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결혼을 선언해 주세요!"
"아참, 마지막으로 일원이와 추월이, 추월이와 일원이의 하나 됨의 결혼을 선언합니다! 이제 영구히 행복하게 잘 살지어다!" 그랬다.
바로 이 선언 말이 끝나자마자 동네사람들은 갑자기 축하하는 의미로 한바탕 시끌법적 웅성대며 이말 저말 하고 웃어댔다. 어떤 분은 이쪽 저쪽에서 "좋소!", "좋아라!" 그랬다. 자유한 동네 분위기이다.
이렇게 하여 일원이와 추월이의 결혼식이 끝났다. 그러더니 윤이 나는 검은 구두를 신은 일원이가 뚜벅뚜벅 앞으로 나오더니 동네사람들을 향해 간간히 유쾌하게 웃어가면서 재법 긴 말을 했다.
"어떤 이가 이런 말을 했지요. '청춘남녀가 서로 만나 사랑을 하고 그 결심이 혼인으로 이어질 때, 이를 기념하기 위해 결혼식을 올린다. 생애 중 단 한번 뿐이라는 특별함의 이 의미가 가져오는 결혼식이란 단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뜻있는 행사 한 대목이다.'고요. 이런 행복이 지금 숨가쁘게 아울려지는 우리 둘만의 이 결혼식에 이렇게 오셔서 축하해주신 우리 동네 어르신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결혼식도 좋지만 여기 이렇게 만추한 동네 래빈들이 없었던들 얼마나 이 자리가 호젓하겠습니까! 저희 두 사람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고 공손히 두 사람 신랑신부는 동네사람들을 향하여 절을 했다. 어떤 이들은 뒤에서 말이 유식하고 멋지다고 하면서 수근댔다.
이젠 이어 기대했던 '흰쌀밥에 고기국 잔치'는 벌어지고 모든 동네사람들이 오래도록 이 멍석에 앉아 함께 즐거워했는데 이 마을에서 어느 땐가 '이제 껏 이런 옹골지고 거판 스러운 잔치는 다시 없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이때를 계기로 해서 점차 고금도 전역에서 고풍 결혼예식이 사라지고 신식 결혼예식 풍이 번져가기 시작했다.'고 전해 오고 있다.
일원이의 결혼행사는 결국 졸지에 그렇게 간략하게 치러진 것이었지만 일원이라는 사람이 점차 유명하게 되어지자 발전하는 새 세대를 먼 해안으로 내다보면서 일원이가 그렇게 시도한 것으로 도민들은 이해했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다.
그 뒷날이 되었다. 추월이 마음은 어머니 곁을 떠나가는 것이 못내 슬프기까지 했지만 오빠가 계셔서 더함없이 안도 되었다. 한편 사랑하는 랑군 일원이 따라 어딘지는 잘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동경해 온 육지생활을 하게 된다는 또 다른 가슴 부픈 마음이 있어 슬픔 반, 기쁨 반이 되어 마음 속에 자주 교차되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이란 때론 냉혹한 것, 추월이에겐 고금도를 떠나야 하고 떠날 시간이 다 된 것이었다.
일원이부부는 부모형제를 이별하고 육지로 가는 배에 올랐다. 그리고 점점 멀어져만 가는 배에서 아스라히 가족식구들이 사라질 때에야 추월이는 " 내 고향 고금도야, 잘 있거라. 또 오마!" 하고선 눈길을 돌리면서 일원이의 부추김을 받아 선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느새 배는 목적지를 향해 무변한 바다를 가르면서 연상 철석철석 소리를 냈다. 아마도 울쩍한 추월이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이 배도 고되고 가파른 항해를 계속하고 있는듯 했다. 추월이 생각에는 이제 확실히 육지로 가기는 가는 모양 같았다. 드디어 배는 후유-하면서 육지 부두에 다달았다.
이제 육지란다. 육지가 추월이에게는 너무나 넓어 보이고 산뜻하고 좋아보였다. 추월이는 전에 없이 긴 한숨을 내쉬면서 하늘을 쳐다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아마도 고뇌의 새장을 벗어날 수 있어서 그랬을 것이기도 했다. 일원이는 추월이의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금까지 보아온 가장 아름다웠던 추월이 모습 같아서 바다를 향해 하하하 하고 일원이 특유의 웃음을 웃었다. 아주 경쾌한 웃음이었다. 이건 파랑새처럼 푸른 하늘을 향해 속구치는 파랑새 추월이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때 추월이가 말했다.
"왜 그리 웃는거지!"
"....................................................!"
일원이는 모든 것을 재빠르게 척척 알아서 운반하고 추월이를 아깝게 구슬리듯이 차에 올려 태웠다. 추월이에게는 이런 자동차를 타 본 경험이란 별로 생각나지 않았다. 뻐스의 중간쯤 나란히 자리에 앉은 일원이 부부는 그 어느 때 보다 행복하기만 했다. 추월이 자리는 차창쪽이었다. 일원이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추월이, 여행 어떼? 좋아? 보아하니 딱 아름다운 게 하나 있는데..."
"뭔데?"하고 추월이는 얼른 유리창 넘어 밖았 쪽을 내다보았다.
"당신!"
"쑥스러워. 벌써 '당신'이네. 이젠 '일원아,' 그러면 안되겠네!"
"좋을 대로 부르자. 뭐 섞어 불러도 좋은 게 안야?"
"추월아, 그런데 말야. 내가 결혼을 하기 위해 고금도를 향해 포항을 떠나는 마지막날 밤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그 개꿈이 왜선지 나도 모르게 머리에 남거든... 어쩜 사람 일이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
"무슨 꿈인데?"
"사람들이 말야, 나더러 척척박사라느니, 유식한 사람이라느니, 막 그러는 거야. 별이별 말을 다 하더란 말야. 꿈에도 무척 좋기도 하고 부담이 컸어. 그리고 내가 결혼을 했다는 거야. 신부는 꿈에도 바로 당신이었어. 포옹을 하고싶을 만치 심히 이쁘게 보였어. 지금 그때 생각하면서 한번 포옹을 할까. 하하하... 꿈에도 정말 행복했지. 그리고 말야. 두 잘난 사내 아이들 노는 것이 눈에 보였는데 이 애들이 내 아들들이래. 하, 참. 더 들어 봐. 마치 숙부님 집 같기도 하고 공교롭기도 한데 그게 우리집이래. 이상한 사람들이 영어로 그렇게 말하더란 말야. 한참 좋았지. 그러다가 갑자기 깨고보니 꿈이잖아. 실망은 아니었지만 참 허황한 일이었어. 전혀 현실성이 없는 개꿈이었어!"
"아니 꿈이란 꼭 허황한 것만은 아니지. 꿈이란 장차를 위한 예시일 수 있어! 분명 그럴 수 있어! 비범한 사람에겐 더욱 그렇지!"
"지금 보니 추월이가 공부를 많이 한 사람 같다. "예시", "비범", 과연 내가 그렇겠니? 그렇겠냐고? 어림도 없는 일이지!"
"아니야, 내가 보기는 일원이는 비범해 보여! 어릴때부터 그렇게 봤어!"
"하긴 네가 학교에서 우등생으로 5등까지 했으니 머리 좋고 영리한 애였지! 네 말이 근사하다! 허허허..."
"일원이 1등 할 때 내가 3등 한 건 기억 못하네..."
"아, 그랬던가. 봐라. 나 멍청한 머리 아냐? 비범하다고..."
이때 잠시 밖을 내다보던 추월이가 이렇게 일원이를 향해 말했다.
"야, 육지 정말 좋구나! 저기 도시가 보이네! 도로도 좋고..."
"진주시란다. 뭐, '진주라 천리길...'그런 노래 있지!. 포항까지는 많이 가야 해. 앞으로 널 구경 많이 시켜줄께. 10만리도 넘게 말야. 내가 할 일이 있어. 꼭 다 해내고 말테야."
"그래야지. 일원이는 그래야 일원이야. 일원이는 해낼꺼야.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돈을 버는 일을 해야 할텐데..."
"'일원이는 그래야 일원이야' 라고. 너도 우리 숙부처럼 뜻있는 말을 할줄 안다야' 추월아, 네가 혹시 정규학교 공부는 못할지라도 너는 평소에 공부를 해야 해. 국어, 국사, 영어, 꼭 해야 해. 넌 잘 할꺼야. 넌 3등도 했지 않아."
"국어하고 영어는 많이 공부했어. 삼춘 덕에... 영어는 고등학교 것 하고 싶어. 그런데 이건 다른 이야기야. 일원이, 이건 중요한 이야기야. 고백하고 싶어. 난 오래 전부터 일원이를 짝사랑했어. 내 맘과 사정을 집에서는 몰라줬어. 시련이 많았고 많이 울었어. 육지에서 나를 보려고 어떤 남자도 왔는데 내가 잠시 집을 나가버렸지 뭐."
추월이는 진한 눈물을 흘렸다. 아직도 마음에 사무친 맘이 다 풀리지 않은듯 했다.
"추월아, 왜 이제사 그 말을 하니. 그때 내게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고... 나 역시 널 연모했지. 너 없인 살 수 없었어. 그러나 우리 집 형편이 말못할 사정, 네가 알지 않니. 어쩜, 난 공부 때문에 시련이었고 넌 결혼 때문에 시련이었지. 그렇지."
추월이는 자기 머리를 일원이 가슴 쪽으로 파고 들듯이 눕혔다. 추월이가 이렇게 한 것은 이젠 필시 슬픔이나 고뇌 보다는 꿈이 아닌 현실의 감격 때문이었을 게 분명하다.
"....................................................................................................................."
"추월아, 넌 잘 산 집안 애인데 그곳 가서 재정생활이 힘들지라도 이겨내 줘!, 응!"
"이젠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일원이는 공부를 해서 성공을 해. 내가 어떻게 해서라도 도울께..."
일원이와 추월, 추월과 일원, 서로를 지척에 두고서도 사랑의 가슴알이를 하기까지 미처 말못했던 순박한 이 젊은이들, 이젠 통쾌하기만 한 것이 아닐까. 서로 사랑스런 이들은 이번 이 천리길 기나긴 여행길에서 신혼부부로써 그동안 못다한 이런 저런 마음의 회포를 한없이 많이 털어놓고 속삭이면서 꽃을 피우다가 드디어 무사히 숙부집에 도착했던 것이다. 추월이 마음은 후련했던 모양 같다. 이렇게 하고나서야 아마도 추월이 마음이 얼마만큼 해갈되었던지 포항에 도착했을 때는 의외로 명쾌하게 보였다. 다행이었다.
숙부모님은 일원이 부부를 친절하게 환영했다. 숙부는 일원이 더러 이렇게 이야기 했다.
"네 아내가 참하고 영리하게 보이는구나!"
그러자 숙모가 사근사근하게 말씀했다.
"일원이 아내가 키도 크고 참 미인이네. 시골에서 산 것 같지 않은데..."
"하긴 시골에서 살았지만 농사일 같은 것을 잘 해보지 않아서요."
일원이는 벌써부터 이렇게 아내 쪽을 두둔하는 양 감칠맛 나는 말을 했다. 성큼 집안으로 들어선 추월이가 일원이 곁으로 한걸음 다가서더니 귓속 말로 가만이 말했다.
"와, 대궐 같네!"
(다음 계속)
- 이전글나쁜 사람 (시와 해설) 11.10.29
- 다음글{영한 시} Song for a deacon(집사예찬) / 김광오 11.10.2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