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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쟁반 / 이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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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반  /  이재춘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그러니까 약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30대의 젊은 남성이 나무로 된 긴 쟁반을 왼쪽 어깨에 메고 바른쪽 한 손으로 서커스의 마술사같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정미소를 경영하시던 아버지 앞에서 자전거를 멈추더니 그 긴 나무쟁반을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함석으로 고깔모자를 씌운 냉면 그릇이 예쁘게 두 줄로 모두 열 개의 냉면그릇이 들어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갓 뽑은 메밀국수위에 소고기 몇 조각과 계란 배 무김치 그리고 시원한 국물과 잘 어울려져 있어 나의 목젖을 유혹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것은 정미소 일꾼들의 중참이다. 너는 저 함지박의 사리를 들고 엄마한테 가서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어라”고 하시었다. 섭섭했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냉면을 다 먹고 난 후 어머님은 그 함지박에 통배추 김치를 하나 가득 채워 담더니 아버지께 갖다드리라고 심부름을 시키시었다. 나는 어머님께 “김치는 왜 채워 담았어요?”라고 물었다. 어머님은 “이놈아, 선물을 받은 그릇에 그냥 빈 그릇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어머님은 냉면집 과부 아줌마와 예부터 잘 아는 사이였고 게다가 어릴 때부터 강릉에서 법도와 예의 있는 집안에서 교육을 잘 받아 보고 배우신 분이었다.   

   1950년 6. 25가 난 후 다섯 달이 지나간 어느 날이었다. 중공군이 이 아름다운 조국강산에 이십만 명이 몰려왔고 두 눈이 충혈 된 악이 가득한 인민군 패잔병들이 기관총을 쏘며 안개 낀 새벽 내 고향 강원도 김화에 쳐들어 왔다. 두 형님은 이미 38선 이남에 가 있었고 나는 어머님의 지시에 따라 잘 알고 지내던 김화 역 뒤에 있는 사과 밭으로 피신해야만 했다. 그 곳 사과밭 중턱에 있는 땅 속 비밀 아지트에 손이라는 청년과 둘이서 숨어있었다. 앉지도 못하고 누워있어야만 하는 땅굴이었다.

   그 당시 반동분자들한테 밥을 날라다 준다는 것은 즉석에서 사형감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덕현이 어머니는 캄캄한 밤 12시를 틈타 쟁반에 밥과 김치 그리고 숟가락 두 개를 놓고 가마니 위에 쓰레기 더미를 헤쳐 아지트의 뚜껑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것도 하루에 한번이 고작이었다. 한 달 두 달 석 달이지나 눈이 내리는 어느 날 겨울밤, 어머님이 오셔서 아지트의 문을 두드리시었다. “이제 집에 가자!”하시며 나를 불러내시었다. 나는 굴에서 나오자마자 눈 위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무릎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였다. 어머님은 팔을 벌려 번개같이 나를 끌어안고 어머님 어깨에 얹혀 눈길을 헤쳐 집에 오고 있었다.

   그때 나는 정말로 죽든 살든 집에 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굴속에 숨어 있을 때 나와 미스터 손을 먹여 살린 그 쟁반! 오늘날까지도 나의 마음과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그 사랑의 쟁반! 이제 그와 같은 쟁반이 또다시 내 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2010년 12월 29일,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난 후, 전교인들의 성원어린 기도와 여성선교회원들의 그 따뜻했던 쟁반을 영 잊을 길이 없다. 내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고만 싶은 눈물겨운 사랑의 쟁반이었다. 그런데 요즘도 이틀에 한 번씩 스테인리스 쟁반에 미역국, 멸치볶음, 브로컬리, 콩나물들이 주문도 안했는데 꼬박꼬박 집으로 배달되고 있었다.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라고 하더니 조애실 집사님의 정성어린 쟁반에 무엇이라 그 고마움을 잊을 길이 없다.

   쟁반은 역시 인간과 인간을 따뜻하게 연결해 주는 사랑의 벌린 손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했다. 쟁반은 운두가 얕고 둥글납작한 그릇이라고 되어있지만, 그 어느 그릇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치 사랑이 깊고 높고 넓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쟁반은 옛날부터 남을 위해 서브하는 종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고관대작이나 양반들은 손에 쥐지도 아니했다. 종교가 위선이 아니라면 이제는 집사님도 장로님도 목사님도 쟁반을 들 때가  되어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종으로 오셨다고 스스로 말씀하시었다(마 20:28). 포도즙도 떡도 심지어 발까지 씻어주는 종으로 오셨다.

   이제는 보름달만 쳐다만 보면 그 따뜻했던 정성어린 성도님들의 기도와 여성선교회원들의 쟁반이 떠올라 그 얼굴 하나하나씩 내 가슴속에 남아 두 눈에 눈물이 고이게 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배달된 조집사님의 쟁반이 생각나 내 외로움 떨쳐버리고 아름다운 인간의 향기가 마냥 그리워지고만 있다. 나도 남은 이 여생을 쟁반같이 살고만 싶어져 간다. 

 

 수필집: 그대로 행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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