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 구석에 (시와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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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한 구석에
강위덕
늘 강은 누워서 흐른다
바람이 불 때면 뒤척이며 돌아눕고
골이 깊어 굽이쳐 흐를 때면 계곡의 이불을 끌어당긴다
허리 깎인 절벽에 끊어진 뼈 앙상하고
골수병 든 늑골이 툭툭 부러진다
빛이 찢어진 상처에 굳은 살 불쑥 튀어나와
몽울져 있다
잡으려는 손과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산등성에
흰 피톨이 절벽 아래로 뚝뚝 떨어진다
동쪽의 어두움을 끌고 온 커튼과
서쪽의 어두움을 끌고 온 커튼 사이에
없어진 것 하나도 없는데 보이지 않는 쓸쓸함만 엄습해온다
밤이 깊으니 산 울음소리 대지를 다
삼키다가 예 와서 처-억 허리 펴고 내려놓는 통곡의 침묵
잠들지 못하는 고독이 뒤퉁뒤퉁 아픈 다리 끌고 다가선다
겨울에 박힌 발자국들이 온 길을 바라보며 서성이고
봄철에 피우지 못한 꽃들 망설임으로 가득한데
사연들 하나하나 다 빠져나간 내 마음 한 구석에
퀭한 바람이 밀려오고 있다
시와 시인의 말
이 시는 마치 산 계곡에 걸린 얼음폭포와도 같습니다.
입을 꼭 다문 채 폭발 직전을 연상하여 주는 얼음장 밑의
절벽의 절(絶)
절망의 絶,
절해고도의 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는절박함을 보여 줍니다.
제 몸의 검은 줄무늬를 벗어나지 못해 몸부림치는 얼룩말처럼
존재의 슬픔, 멀리서 달려오는 맹수들의 통로가 울컥 내 살에 맞닿아 목에 걸리는 삶의 현장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독일 유학중이던 윤이상은 베를린 음악제에서 실패하자 크게 낙심했습니다.
“아무래도 난 음악가로서 자질이 없나보오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라며
아내에게 실망된 어저로 말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중국 고전 음악 악보를 토대로 한 새 작품 <낙양>을 완성하자 확신을 가지고
슈프랭겔 콩쿠르와 런던 국제 음악제에 출품했었는데,
의외로 “너무 동양적이다”라는 악평과 함께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에 이어 이번 베를린 음악제에서의 탈락은 그에게 또 한번의 실패를 의미했습니다.
자신의 실패를 반신반의하면서 윤이상은 이제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작품이 언젠가는 인정받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당신은 음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분이잖아요. 이 작품은 언젠가 꼭 좋은 기회를 얻게 될 거에요 너무 성급하게 포기하지 말아요”
아내의 간곡한 부탁에 윤이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하노버의 조이네세스 뮤지컬 오케스트라 지휘자 베른바흐가
그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낙양”악보를 보게 되었습니다.
베른바흐는 윤이상에게 그 곡을 연주할 기회를 준다면 반드시 성공시켜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연주회날 베른바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끝났는데도
어느 누구하나 꼼짝도 하지않고 그대로 앉아 있기만 할 뿐 박수를 치지않았습니다.
그는 눈앞이 아찔해졌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객석 한구석에서작은 박수 소리가 남과 동시에 연주회장은 요란한 박수 소리로 떠나갈 뜻했습니다.
베른바흐가 윤이상을 무대 앞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베른 바흐가 나직이 속삭였습니다.
<정말 축하합니다. 사람들이 박수치는 것을 잊을 만큼 당신의 곡에는 강렬한 혼이 숨어 있어요>
겨울에 박힌 발자국들이 온 길을 바라보며 서성이고
봄철에 피우지 못한 꽃들 망설임으로 가득한데
사연들 하나하나 다 빠져나간 내 마음 한 구석에
퀭한 바람이 밀려오고 있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은 특히 예술가들의 갈등을 잘 설명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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