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13} 소설쓰기와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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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기와 이해하기를 위해 소설을 두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소설 쓰기라는 장르는 창의성에 의한 창작활동이다. 창작이란 현실적으로 공간적으로는 없는 것인데 모종의 진실성의 창작과 조합에 따른다면 있을 법한 것에 대한, 또한 인간의식생활에 영향을 주고 받을 법한 것에 대한 발로가 소설이라는 작법과 기법으로 탄생되어지는 장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사실로는 세상에 없었던 그 재미거리 창작 이야기가 다분히 인간생활 활동에 유익하고 교훈적일 수 있다는 말이 되어진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것이며 한편의 예술작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장르는 대부분 실제적인 사실, 서건, 이슈에 동기가 부여되고 기반하거나 토대하면서도 저자의 독창성, 상상력, 그리고 구성력과 유추가 요구되어지는 장르라 하겠다. 단편소설 역시 물론이지만 특히 장편소설일 경우 그 내용상의 실제성이 있는 구성력은 지대하게 중요한 골격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소설이 손질되어지는 작법, 특히 기법이 중요하고 이렇게 소설 내용을 색체화하는 일은 필수적이고도 저자 자신의 개성적인 표출이 따르기도 하다.
이리하여 이렇게 해서 탄생한 건전한 한편의 소설작은 어쩌면 사실, 혹은 사건이나 이슈에 따른 진실된 묘사 혹은 진실된 일에 근접한 사실 묘사로 보아 마땅하다고 보아진다.
그러나 광범위한 소설의 세계를 살펴보면 이것이 진짜인가 하는 의문이 재기될만치 저자가 허구에 빠져드는 , 소위 사실의 진실성을 외면한 내용의 폐단이 불가피해질 수도 있다. 그것은 "실낙원"이나 "천로역정"과 유사한 영감이 아닌 이상 허구일 수 있지만 인간생활에 지대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예술작이라고 옹호할 수도 있는 것이 되어진다.
그래서 이. 지. 화잇은 이런 제반 소설 글쓰기 내용을 신앙과 부합되지 못한 것으로 꽤 소상하게 지적하면서 소설 읽기에 권면을 나타내 보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그렇게 해서 문학이 갖는 본연한 존재성이나 진실성 마져 모두 다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우리의 이해이다.
다시 말해서 손수 소설문학 자체가 아닌 문학작품이나 문학인의 소양에 대한 착안이며 그래서 주어진 교훈이라고 생각하면 옳을듯 하다. 왜냐하면 건전한 문학이란 장르별 따라 엄연히 존재하고 그 문학적인 가치성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 보편적인 사실로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 지. 화잇의 권면에 적극 찬동할뿐 아니라 우리의 소설쓰기 견해에 대하여서도 그분의 견해와 일치하고 옳은 견해가 되어질 것이다.
가령 오래 전에 미국에서 출판되어지고 번역글로 선보여졌던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소설은 얼마나 유익을 많이 주는 소설이 되었던가 싶다. 그리고 그것이 그러한 것은 순수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나 순수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누구나 그 문학의 진실성과 가치성을 찾으려는 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이런 연유 때문에 재림교인이 소설을 쓰려고 할 때, 소설이라는 장르를 다룰 때, 사실, 사건, 그리고 이슈 문제 대로 진실성이 있게 다루면서 재림교인의 신앙의 유익을 고려하는 의미에 집착한 소설을 쓰려고 한다면 그가 갖는 독창성, 상상력, 구성력, 그리고 그가 하는 유추는 항상 신앙성의 본질에 입각하고 부합하게 되어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세상의 어느 분야의 일도 마찬가지이지만 세부적인 유추란 없을 수 없는 것이기에 이런 유추까지도 정확성으로 본 신앙진실성에 집착하려 한다면이야 이런 이야기식을 독자들은 이해할만한 것이 되어질 것이다.
우리네 재림교인에게는 소설에 대한 더 많은 이해가 필요될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말해서 신앙소설은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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