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느림의 미학 /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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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금 한적한 곳에 정착하고 싶었던 것은 현실 도피가 아닌 바쁜 도시의 일상을 떠나 좀 느리게 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맨 처음 와서 시작한 것이 길을 내는 일이었다. 길을 닦으면서 ‘도(道)를 닦으러 가느냐?’고 하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밀림 같은 숲을 헤치고 비탈길을 깎아 땅을 고르고 개울을 만나면 다리를 놓고 잘 정지 된 산책길 위에 잔디를 심기까지 거의 한 달이나 걸렸다. 한 십년간 도를 닦아야 겨우 입문할 터인데 짧은 기간에 길을 완성한 것이다. 사람이 길을 내고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바로 문자 그대로 득도(得道)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길은 직선이다. 나는 최대한 굽고 멀리 돌아서 가도록 길을 닦았다. 아주 어리석고 헛고생 한 일로 보일지 모르나 돌아서 걷는 길에서 신비한 자연과 만나는 즐거움과 여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자연과 가까워지면서 그동안 얼마나 분주하게 살아 왔는지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느리게 사는 것은 어디에 살던지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삶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바쁘게 산다는 것이 곧 근면하고 성실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한국인의 “빨리빨리” 신드롬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중국인들의 ‘만만디’ 기질과 비교가 된다. 현대의 스피드 문명인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의 삶을 고집하며 사는 것이 좀 불편은 하지만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오늘날 자동차가 많아 오솔길들은 숲이 그 길들을 지워 버렸다. 바쁜 시대에 먼 길을 걸어서 가는 시대는 지난 것이다. 빨리 다니지만 정작 사람과 사람이 만나 정담을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인간에게 편의를 가져다주는 문명의 이기(利器)에 더 친숙해 가고 있다. 문명사회로 서서히 길들여져 가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셀 실버스타인( Shel Silverstein)의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조그마한 조각이 떨어져나간 동그라미가 자기의 분신을 찾아 길을 나섰다. 잃어버린 조각 때문에 굴러가는데 너무나 느리고 불편했다. 그러나 천천히 굴러가다 보니 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만나게 되었다. 새들의 노래 소리도 듣고 예쁜 꽃들을 보고 그 향기에 취하기도 하고 풀벌레들과 대화를 나누는 여유도 생겼다. 나비가 머리에 살짝 내려앉을 때는 너무나 황홀한 나머지 잃어버린 조각을 찾는 일을 까마득히 잊기도 했다. 오랜 시간 불편했지만 드디어 자기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붙였다. 완벽한 동그라미가 되어 보기도 좋았고 훨씬 빠르고 쉽게 굴러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신없이 굴러 들꽃향기도 맡을 여유도 없었고 나비가 머리위에 앉을 겨를도 없었다.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처음에는 너무나 기뻐 노래를 부르다가 숨이 차서 빠르게 굴러가던 길을 간신히 멈추었다. 완벽하고 빠른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이 아님을 깨달은 동그라미는 찾아서 붙인 조각을 다시 때내 버렸다. 그제야 천천히 굴러가면서 잃어버린 조각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는 너무 바빠서 인생의 길에서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지나치고 정신없이 굴러가고 있다. 삶의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 너무 완벽을 추구하면 삶이 피곤해진다. 삶의 여유라는 것이 물질의 넉넉함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분주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북이는 가장 오래 사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기 때문일까? 나무가 수명이 긴 것도 이곳저곳 옮겨 다니지 않고 한군데 정착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마음의 뿌리를 내릴 여유가 없는 바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삶의 여유란 직선이 아닌 천천히 돌아서 가는 길을 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젠 내가 만든 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마음의 길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면 마음을 잇는 길도 막히는 것이다. 느리게 살다보니 바빠서 소홀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생각났다. 가장 멀고도 가까운 것이 마음과 마음의 거리지만 마음의 길이 없어 이를 수 없는 길도 있다. 초고속 시대에 마음과 마음이 통하던 길이 전파의 매체로 전달되는 기계소리와 영상 그리고 생명이 없는 싸늘한 문자의 길에서 만나고 있다.
그대를 만나기 위해 걸어가던 굽은 길, 먼 길을 걸어가면서 잘 숙성시킨 생각과 발효된 그리움이 마음과 마음의 길을 이어 주던 길이 지워지고 문명은 빠르고 곧은길을 내었다. 가는 길이 빠르고 가까워도 아득히 멀기만 한 마음의 길, 이제 그대에게 천천히 걸어가는 마음의 오솔길 하나 다시 내고 싶다.
# 문학저널 시 등단, 에피포도 예술문학상 시 금상 수상,
재미수필 신인상 당선, 미주 신문 일간지 주간지 수필 칼럼 콩트 기고.
시집 ‘반딧불 서정’ /문학방송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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