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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반백년의 시행착오 / 윤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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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년의 시행착오 / 윤재현


    도둑처럼 시커멓고 험상스럽게 생긴 나의 모습이 실망스럽다. DMV에서 온 운전면허의 사진을 보고 놀랐다. 계란형이던 얼굴이 5년 동안에 사각형으로 변했으니. 머리는 해병대 훈련병처럼 짧다. 언제나 머리가 문제다. 짧게 깎나 길게 깎나? 머리숱이 별로 없어 그동안 머리를 짧게 깎았다. 그래야 머리를 깎은 기분이고 또 다루기도 쉬웠다. 그러나 아내는 짧은 머리를 보고 인민군이니 해병대 훈련병 같다고 놀려댔다. 머리를 길게 길러보았다.  히피 같다. 머리카락 다루기도 힘들고. 자고나면 머리카락이 나무 가지처럼 뻗친다. 망사그물을 쓰고 자기도 했다. 머리를 길게 기르니 짐승 같은 기분이 들고 어딘지 모르게 구중중하다. 이발소에 가서 다시 해병대 머리를 하고 와서 또 식구들의 놀림을 받았다. 결혼 후 약 50년 동안 이렇게 긴 머리와 짧은 머리 사이를 오락가락하였다.

    알맞게 머리를 깎지 못하나?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궁리 끝에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이발 기구 제조회사의 광고에서 그 의문을 풀었다. 이발관에서 실망스러운 이발을 하고 나오는 사람들을 조사해분 결과, 많은 경우, 이발사의 부족한 기술보다는 의사소통 부족 이다. 이발사에게 머리를 어떻게 깎아달라고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이발사는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적당히 깎아준다. 이발사는 ‘당신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를 강조했다. 이발관에서 사용하는 숫자도 설명했다. 이 숫자는 이발기에 부착하여 사용하는 플라스틱 "blade guard"의 크기를 말한다. #1은 1/8인치, #2는 1/4인치, #3은 3/8인치, #5는 1/2인치, #6은 3/4인치, #7은 7/8인치, #8은 1인치. 머리 기름은 기름기가 없는 물기름을 사용하고, 짧은 머리는 ‘좁쌀알’이 달린 ‘고슴도치’ 솔을 사용하라는 정보도 얻었다. 인터넷은 만물박사요 백과사전이다.

   리를 약간 길러가지고 그 동안 다니던 이발관에 가지 않고 다른 이발관에 갔더니, “머리를 어떻게 깎아드릴까요,” 이발사가 묻는다. “#8로 깎아주시오,”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이발기, 가위, 또 손가락으로 능숙하게 머리를 깎았다. #8 이상은 손가락 길이 즉 "finger length"라고 부른다고 한다. “어때요,”하고 거울을 보여준다. 맘에 든다. 길지도 않고 짤지도 않고. 집으로 오는 길에 물기름과 솔을 사왔다. 머리를 감고 기름을 한 방울 떨어트려 문질렀는데 손바닥이 깨끗하다. 솔로 머리를 긁으니 잘 들어 눕고, 머릿속이 시원하다. 혈액순환도 잘 될 것 같다. 머리카락이 반들반들 윤기가 난다. 거울을 보니 모처럼 맘에 드는 이발이다.

   디어 반백년의 시행착오에 종지부를 찍었다.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 공모 논픽션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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