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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재미성도 체험단편 / 도망자 / 멀리 서방으로 도망치다(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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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희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병원에서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희의 마음도 구름 낀 날씨처럼 유득 찌무룩했다. 어서 가서 집에서 푹 쉬어나 보자 하고 잔뜩 기대감을 부축이면서 집으로 바삐 돌아왔다.

   그런데 왠일인가? 정작 자기 집 앞에서 큰 고함소리가 나고 야단법석이 일어난 것이 눈에 목격되었다.

   시숙이 간간이 이러는 터라 또 필시 그러러니 했는데 영낙없이 생각대로였다. 가장 가까이 사는 시숙이 집을 찾아와서 마당에서 집을 향해 정면으로 삿대질을 해대면서 술에 만취한 추태를 벌리고 있었다. 희는 아무런 말대구 없이 집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술을 먹지만 않으면 침착하고 좋으신 분인 대도 술만 들었다 하면 딴 사람이 되어버리고 아무런 이유없이 항상 도를 넘는 추태를 부렸다. 머리 좋으신 분이 잘 풀려나지 못하여 항상 자격지심, 열등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니깐 희로써는 가능한 이점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렇지만 이게 얼마나 자주 있는 일인가 말이다. 이게 얼마나 자주 있는 길고 긴 전화벨 소리치기인가 말이다. 희에게는 이젠 진절머리가 날대로 나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시숙의 고성이 갑자기 뚝 그치고 조용해진 것이다. 그래서 창문으로 가만이 내다보니 시숙이 이제는 집으로 간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로부터 불과 몇분 되지 않았는데 남편 수가 직장에서 돌아왔다. 이때 희는 남편 수더러 이렇게 말했다.

   "여보, 오늘은 재수가 참 좋으십니다!"

   "그래, 오늘 또 형님이 오셨던가?"

   "조금 전까지 시숙이 마당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시더니 아마 조금전에 집으로 가신 모양이예요."

   "그랬어. 또 힘들었겠구나! 그런데, 그래도 어쩌면 다행이야. 소리치고 추태만 부리지 다른 심한 언쟁이나 행패는 부리지 않거든... 침묵만 하고 말에 대꾸만 하지 않으면 되거든...천만대행이야!"

   "여보, 그런데 언제까지 이래야 해요. 동네 사람들 부끄러워서 이대로는 더 이상 살 수 없지 않아요. 어쩌면 좋아요? 이젠 힘겨웁고 진절머리가 나서 도시 살 수 없는데 어쩌면 좋아요? 여보-!"

   희의 말소리는 이전과는 달리 마음 속이 타는듯한 소리가 내비쳐졌다. 놀란듯이 눈을 부름 뜨고 과묵하게 듣고 있던 수가 느닷없이 말했다.

   "그래, 또 도망을 가야 하지 뭐! 안그래!"

   희는 엉겹결에 남편 수의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남편 수의 생각도 자기 생각과 꼭 같았구나 짐작 되어졌다.

   "어디로요? 여보, 가만 있자, 당신의 직장이 없어져도 내가 먹여살릴 곳으로만 갈 수 있다면 당신 이곳을 떠나가도 좋겠지? 안그래?  말해 봐, 여보!"

   "가만 있자. 그런 곳이 어디 있을까? 하여간 무슨 일이 일어나야만 해. 아니 그런가? 이렇게는 평생 못살겠어. 당신이 지레 죽겠어! 항상 산다는 게 이 지경이고 불행이겠거든..."

   사실 수가 이렇게 말한 것은 고난 당하는 아내를 이해해 주고 필시 가늠 되는 그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이 더 이상의 가정적인 큰 불행을 모면하는 길이라는 단안을 가지고 있는 터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실이 그렇고 그랬던 것이었다. 다른 길이 없었다. 적어도 가정과 금슬이 불행해지지 않아야 한다는 세심한 심산에서 였다. 사실 착하고 여린 아내가 트고 나갈 길마져 꽉 막히고 보이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알만 했다. 적어도 남편된 수가 너그러워야 하고 어려운 부분도 양보적이어야만 했다. 열쇠는 희가 아니라 수 자기에게 있는 것이었다. 양보와 합일은 때론 쾌히 한 축에 드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적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래야만 희가 숨통이 트이고 가슴이 열릴 것이었다.

   수와 희는 이때로부터 이날 저녁 이렇게 간헐적으로 이야기 되던 이 이야기 주제가 저녁 늦게 잠자리에 들때까지 상기된 마음으로 이어져갔다.

   어떻든 본격적인 것은 이때로부터였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수부부의 마음은 그동안 위축되고 인내하면서 긴장된 마음이 금새 고무 풍선처럼 하늘로 붕 하고 떠 올라가기라도 하는 것 같이 느껴졌고 좀 시간이 지나자 여차여차하여 결국 온 가족이 미국으로 도망쳐 온 것이 되었다.

   그런데 수부부가 미국으로 도망쳐 오기 전에 두가지를 결행하기로 했다.

   부모님과 형제들 집을 모두 다 한번씩 방문하고 김포공항에서 떠나오는 날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다는 철저한 약속이 있었다.

   드디어 그 일이 시작되는 날이 왔다. 부모님도 형제들도 이구동성으로 모두가 동일하게 뜻밖의 방문을 의문시 했다. "무슨 일로 갑자기 이렇게 왔느냐?"고 물었다. 희는 내심 조마조마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싶어서였다. 다행히 방문 하는 집 마다 별다른 일이 없었다. 다만 희에게는 잊지 않고 꼭 하곺은 말이 있었다. "이 세상 사는 것, 다만 행복하게 살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제일 좋은 길이다." 라는 이야기를 적절하게 우회적으로 해서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가정방문은 가는 곳 마다 긴 시간 동안 머물지 않았다. "이제 바빠서 가봐야겠어요."하거나 "시간이 너무 늦어서 가봐야겠어요."거나 하는 말로 말하고서는 대충 얼른 일어나 떠나왔다. 그러나 이 방문이야말로 수와 희에게는 의미심장한 방문이 되었었다. 이렇게 해서 일차적인 방문문제는 성공을 했다.

   그런데 다음 관문이 문제였다. 집이나 짐을 다 정리하고 공항을 무사히 탈출하는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김포공항에서 마지막으로 도망치던 날이 왔다. 이날이야말로  사뭇 긴장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행여나 시숙이 쫓아와 행패를 부리는 날이면 또 어찌 되는 것일까 해서였다. 이 형제, 저형제 가족들이 모종의 불만이라도 터틀이는 날에는 막상 공항에서 어떤 차질이 빚어질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수부부는 두 자녀를 위해서라도 침착해야 했고 천연스럽게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비행기 탑승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려도  왜 이다지도 종무소식인 건지, 이렇게도 시간이 길고 지루한지 차마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은혜의 문처럼 시간이 다 되자 문이 활짝 열렸다. 이리하여 온 가족은 기쁜 마음으로 꾸려진 짐을 가지고 종종걸음으로 공항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이젠 공항 안으로 가족 모두 들어왔으니 만큼 안심할 노릇이었다. 희는 휴~, 휴~ 했다. 그러나 사뭇 두근거리는 가슴은 여전했다. 가만 보아하니 남편 수 역시 같은 심정인 것 같았다. 애들은 "엄마 아빠, 왜 그래, 어디 아파?" 그러기까지 했다.

   희는 "우리가 왜 이래야만 하는 것이냐?" 싶었지만 마음이 착잡하여 지금 이걸 가지고 따지거나 어쩌고 저쩌고 할 여유 마져 없었다. 어쩌면 모처럼 일가족 행복해야 할 외국 나들이에 모두는 경직될 만치 침묵한 상태였던 것이 분명했다.

   드디어 희와 자기 일가족을 태운 노스웨스트 609기가 김포공항에서 활주로를 타고 우주선처럼 천공을 향해 치솟을 그 찰라에서야 희는 "아, 이젠 안심이구나! 탈출에 성공했구나!" 싶었다. 수부부는 창가로 나란하게 앉았다. 자녀들 역시 조금 떨어진 자리에 나란하게 앉았다. 비행기가 공중 높이 비행하여 수평을 이루었는지 연상 웅웅하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

   이때 수가 손을 가만이 내밀면서 희의 두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여보, 당신 어떼? 괜찮아?"

   "많이 긴장했어! 이젠 난 괜찮아! 당신은...?"하면서 남편 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 다음은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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