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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 주막에 앉아(시와 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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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 주막에 앉아

이  범  용

   

삼거리 주막에 앉아

저문 산고개 함께 할

길 손 기다린다

   

어느 산마루 오솔길로 이어져

산고개 되었을까

길은 끝간데 없고.....

산꿩이 억새풀 틈에서

울음우는 산고개길

고개넘으면  보름달같은 박은  초가지붕위에서

몸을 떤다

얼굴도 성도 낯선 이 벗삼아

고개를 오르다가

등짐장수 낡은 짚신 한짝 딩구는 길섶에 앉으면

두런두런 

천년의 사연이 가득하다

먼데서 우는 산꿩 울음 소리 그리워

산고개 바라보며

몽둥 무명치마로 눈물 찍던

누이여,

지금 어디서 고갯길 그리며

한숨 쉬는가

길은 언제나 홀로 걸어 외롭다

어디인지도 모르고 떠돌다

들어선 삼거리 주막 길

함께 걸어주는 이 있어

발끝에 이는 자갈 소리,

마른 가을 하는 갈라지는 소리되어

가슴에 인다.


해설

강위덕


오늘은 이범용씨의 시를 소개하려합니다.

이범용씨는 천주교인이지만 안식일 교회의 구도자입니다.

그는 또한 역사(歷史) 칼럼을 쓰는 사람으로

매주 신문지상을 통해 

애리조나의 생활인들을 애리조나 사람으로 물들여 가는 일이

마치 그의 사명인 듯

다 해진 역사의 뒤안길을 끌고 집필에만 열중하고 있는 분입니다.

역사라는 구조물의 장을 형성하는 것은

균질적이고 비어있는 시간이 아니라

현재의 시로 가득 차 있는 현재의 시간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과거를 현재 로 표출하는 작업은 과거에서 해방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활과 활로 생활을 이루었던 인디언들은

미개한 화살의 한정된 힘으로 총과 맞서 목숨 걸고 지역을 지키다가 숨져간

희생의 피가 어쩌면 애리조나의 산과 계곡을 붉게 물들였는지도 모릅니다.

삭막한 사막에서 그는 무엇을 보았기에

한국의 주막집을 연상했을까?

 

삼거리 주막에 앉아 

저문 산고개 함께 할 

길 손 기다린다

 ----생략----

얼굴도 성도 낯선 이 벗삼아 

고개를 오르다가

등짐장수 낡은 짚신 한짝 딩구는

길섶에 앉으면

 

내가 보기엔 <성도 낯선 이 벗 삼아 고개를 오르>는 장면은

일생을 동거 동락한 그의 아내를 말했을 것이 틀림없는데

등짐장수 낡은 짚신 한 짝 뒹군 길섶에 앉았다는 문맥을 보면

가난한 사내가 아내를 데리고 유랑하는

자기의 입장을 한탄하는 절규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부인은 이화여대를 나온 수재로서

얼굴은 마치 평생을 수절한 수녀처럼

뽀얏고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국방부 장관처럼 울퉁불퉁하게 생긴 이범용 시인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을 아내로 맞았는지 도시 괘씸하기 짝이 없습니다.

인간이 로고스의 올가미에 묶여들기 이전,

우리들이 그 안에서 살았던

그 세계와 구별이 없이 하나였던 야성의 세계,

아득한 원경으로 물러서 있는 그 풍경이 시니피앙의 표출입니다.

표현되어진 기호가 시니피앙이라면,

시니피에는 그 기호가 의미하는 내용을 가리킵니다. 

두런두런 

천년의 사연이 가득하다

그러나 지금은 이 두 잉꼬부부도

두런두런 천년의 사연이 가득 채워지는 동안

어느 듯 황혼기를 맞고 있고

그것이 뜻하는 기호의 의미는

오늘의 일과를 다 주워 담고도

황혼의 아름다움을 창조한 시니피에가 노을을 담고 있습니다.

<누이여> 하고 부르는 애절함은

이미 이 행성을 떠나 우주의 구천을 해매고 있을

그리움, 불러도 불러도 이미 간 분은 돌아오질 않는 것이 상정이거늘

<삼거리 주막에 앉아 / 저문 산 고개 함께 할 / 길 손 기다린다>

그는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오랜 세월 시문학에 손을 떼고 역사쓰기에 골몰한 그가 이제 자주 시 쓰기 부활을 기대해 보며 이미 시 세계에 데뷔한 작가로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자주 시(詩)를 지상에 발표했으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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