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동정심과 건강 / 김평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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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뉴욕에 살 때의 일이다. 비싼 교량 통행료를 절약하면서 우리가 살던 부롱스 리버데일에서 교회에 가려면 맨해튼 할렘 가를 지나야 한다. 가다 보면 길 가 여기 저기 술에 취해 누워있는 사람, 마약에 절어 정신이 멍한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간혹 신호등에 걸려 서게 되면 어디서 나타나는지 다가와 손을 내민다. 불쌍한 생각이 들어 돈을 줄라치면 집사람은 극구 반대다. 돈을 줘봐야 돌아서 또 술을 사먹거나 마약을 할 텐데 왜 그런 돈을 주냐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던 집사람이 변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이 곳 남가주 땡볕 사거리에 서서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성의 없이 글이 써진 누런 종잇조각을 들고 동정을 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먼저 돈을 주자고 한다. 무엇이 그런 변화를 가져오게 했을까?
하바드대학의 맥클레렌 박사와 헐쉬넷 박사가 학생들을 상대로 실험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한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인도 캘커타시의 빈민가에서 병들고 굶주려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돌보아주는 테레사 수녀의 희생적인 활동을 찍은 기록영화를 보여주었다. 그런 후 피검사를 한 결과 임뮤노글로빈-A가 보기 전의 피 검사 수치보다 많이 증가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임뮤노글로빈-A는 바이러스 균이 몸에 침입해 들어올 때 제일 먼저 반응하는 면역체다.
다른 흥미 위주의 영화를 본 학생들에게서는 특별한 변화를 볼 수 없었다. 가냘픈 한 여인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죽어가는 어린아이의 병상을 찾아 정성을 기울여 먹여주고 씻겨주고 치료해주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면 가슴 뭉클한 동정심과 사랑의 정을 느끼게 되는데 그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체에 긍정적인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불쌍한 사람을 보고 자비를 베푸는 자선 사업가들이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 건강하게 장수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카네기, 록펠러, 포드, 클록, 멜론 등과 같은 사람들이 그 대표적이 예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집사람과 같이 보았다. 유명 탤런트가 백혈병이나 다른 심한 병에 걸려 죽어가는 가난한 어린아이의 집을 방문하고 그 집 사정을 취재해서 소개하는 기획순서인데 저들의 딱한 사정을 보게 되면 저절로 가슴 아파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자연히 전화에 손이 가고 한번 통화에 천원(지금은 이천 원, 두 번까지 받음)을 기부하게 된다. 여러 사람들이 참여하여 모은 돈이 상당 액수가 되고 또 그런 돈이 지난주에는 어떻게 써졌는지를 소개한다. 그날 저녁은 깊은 단잠을 잘 수 있고 한동안 무엇인지 말 못할 가슴 뿌듯한 감동에 젖어 지내게 된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처한 형편과 사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애써도 헤어 나올 수 없는 술이나 마약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도 하나님께서 똑같이 사랑하시는 자녀이며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리고 2000년 전의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면 그러한 사람을 찾아가셨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그들을 즐겨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불쌍한 사람을 불쌍히 보지 못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다.
‘월간 한국수필’ 신인상 등단. 재미수필문학가협회 이사역임. 보건 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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