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입안의 가뭄 / 고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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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사는 나성 지역은 뒤따라오는 산불로 심한 고통까지 겪고 있다.
집 바로 뒤에 높지 않은 산이 있어 운동 삼아 자주 오르곤 한다. 산정에 오르면 댐을 쌓아 만든 저수지가 있는데 오륙 년 전만 해도 수문을 덮을 만큼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요즈음은 수문 바닥의 땅이 노출되고 저수지 둘레로 넓게 드러난 땅이 물을 건너 거의 맞닿으려 한다. 물 마른 땅에는 이제껏 물속에만 있어 허옇게 죽은 나무줄기들이 생명의 땅으로 환생한 듯 해녀의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곤 한다.
물 밖으로 던져진 땅 위에는 또 다른 생명들이 무작위로 파랗게 돋아나고 있다. 훨훨 날갯짓하며 즐기던 새들도 좁아진 수면 위에 날개를 접고 피로한 듯 앉아만 있다. 아름답던 산정호수가 말라 가고 있다. 이 호수에 물을 전과 같이 다시 채우려면 장대비를 겨울 내내 퍼부어야 할 듯하다.
뒤뜰에 자몽나무 한 그루가 있다. 십 년도 넘게 거기 있는 과수이다. 매해 100여 알의 자몽이 열리는데 알이 크고 달아 플로리다산 자몽보다 더 맛있다며 즐기곤 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잎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는데 금년에는 알도 작고 나무 전체가 마르기 시작했다.
과일은 포기하고 나무를 살려야겠는데 걱정이 크다. 잎이 달린 가지를 하나 잘라 가지고 관계 처에 가서 물으니 물 부족이니 물을 많이 주라고 한다. 절수 명령이 내려져 있는데 물을 많이 주라니 걱정일 수밖에 없다.
친구에게 자문했더니 그게 아니라 작은 박테리아 같은 벌레가 서식할 것이니 약을 치라고 한다. 약을 사다 치고 물도 눈치껏 주며 기다리고 있다. 나무를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물 때문이 아니라 약품으로 처리되는 문제이면 좋겠다.
연세가 어느 정도 드신 환자분들이 찾아오면 거의 틀림없이 입안이 마르는데 병이 아니냐고 물어 오신다. 입 안이 말라 허옇게 되기도 하고 안쪽 볼이 마르며 터지기도 한다. 말을 할 때 목이 말라 와서 목구멍이 달라붙는 것 같아 말을 계속할 수 없을 때도 있다.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증상일 뿐이다. 신체에 변화가 오는 것이다. 몸의 각종 분비물이 줄어들고 침샘도 기능이 저하되어 생산을 줄이거나 멈추게 되면 입안이 마르게 되는 것이다.
그 외에 질병에 속하는 이유들도 있을 수 있겠으나 입안이 마름은 침샘이 말라가는 증상일 뿐이다. 노화 현상이다. 입 안에도 가뭄의 계절이 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입 냄새가 더 심할 수 있고 충치도 더 심해질 수가 있다. 침이 적어 적셔주지 못하고 씻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뭄에는 비 오는 것이 제일이듯 물을 많이 마셔 입안을 축여 주고 입가심을 자주하여 입안으로부터 폐물을 씻어 내야 입안을 건강하게 유지 할 수 있다.
꽃잎들이 지기 시작한다. 좀 더 있으면 나뭇잎도 누렇게 변하게 될 것이다. 계절이 변하며 세월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연의 법칙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다. 장미꽃처럼 아름답던 젊은 시절이 지나 가고 마른 잎처럼 노년의 계절로 가는 길은 고통스럽고 외로울 것이나 누구나 겪어야 할 자연의 법칙이다.
아름답던 붉은 입술이 마르고 터지더라도 마음에 감사함이 가득하면 그 영혼은 물가에 심기운 나무와 같을 것이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입안에 오는 가뭄을 지나치게 염려하기 보다는 영혼에 밀려오려는 가뭄을 더 걱정해야 할 계절이 오는가 보다.
‘월간 한국수필’ 신인상 등단. 재미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역임
수필집: 미완성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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