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 (시와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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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
강위덕
눈물보다 아름다운 수석이
나를 바라본다
세찬 물결 스쳐갈 때 진액을 뱉어내고
온몸으로 모진 고통 견디며
깊이 숨겨둔 눈물까지도
의미를 찾아낸다
수 천 년을 물살에 밀리고 깎인
수석의 얼굴에는
껍질 벗겨진 추억의 잔해가 역력하다
목숨 걸고 시를 써도
나의 詩作은 아직도 물속
사소한 것들이
사소한 만큼 더 심각하게 피부를 깎고
강에 흐르는 물살은
빛나는 칼을 품고 가슴 속 한을 깎는다
좌대를 만들어 탁자에 올려놓으니
움푹 파인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해설
세상의 모든 사랑시와 연가는 다 그게 그것 같고,
어디서 한번은 들은 듯해서 사실 전혀 새로울 게 없어 보입니다.
연인을 별에 비유하다가 자연스럽게 노을로 옮겨 보기도하고
나무로 비유하다가 잎사귀로 전위시키기도 합니다.
진부한 사랑타령은 천 번을 이야기해도
오히려 귀가 솔깃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만큼 사랑은 아무리 퍼 올려도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 아름다움이고,
익숙함 가운데 길들여진 목마름이니까요.
누구나 그걸 찾아 지금까지의 생을 바쳐 헤맨 경험이 있는 중독자들이니까요.
여전히 갈망하는 정신의 금강석이니 말입니다.
잠시 진눈깨비 뿌리고 찬바람이 불었어도 봄은 봄입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 사랑도 기지개를 켤 모양입니다.
가야산국립공원 백운동 관리소 앞에 세워진
시의 현판 앞에 자주 사람들의 발걸음이 묶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시를 건성으로 읽지 않는다면
결단코 사랑은 가볍게 공 굴릴 성질의 것이 아니란 생각도 할 것입니다.
사랑은 서로 별이 되고, 하늘이 되며,
나무가 되어 서로에게 배경이 되다가도 그 자체가 완성이고 주역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은 모험이 아니고 생명 그 자체니까요.
사랑은 세상의 모든 걸 수식하면서 모든 것의 은유이기도 하지요.
고정희 시인의 ‘그대 생각’이란 시가 있습니다.
너인가 하면 지나는 바람이어라
너인가 하면 열사흘 달빛이어라
너인가 하면 흐르는 강물소리여라
너인가 하면 흩어지는 구름이어라
너인가 하면 적막강산 안개비여라
너인가 하면 끝 모를 울음이어라
너인가 하면 내 살 찢는 아픔이어라
그렇습니다.
너인가 하면 내 살 찢는 아픔이기도 한
그대 생각의 바람이
‘한참 물오르는 싱싱한 가지’끝에서 불어오고 있습니다.
물관부에 차오르는 부활의 사랑처럼 말입니다.
낯설기는 하지만 사랑의 사연을 수석의 자태에 심어보았습니다.
이것을 상상하면서 수석을 읽으면
아내의 얼굴이
혹은 남편의 얼굴이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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