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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뱅 *
강위덕
 
내 심장에 박동이 인다 나의 詩作은 목격자이며 연인이며 한결같은 미행자다 공간 속에 어디인가 영혼처럼 떠돌고 있는 비트뱅은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읽어내는 독법을 안다 사이버 공간(Cyberspace)은 태초부터 가득차 있었다 내 안에 다투는 원소들은 무한정의 무늬가 접혔다 펴지는 것을 照應한다 다다를 수 없는 2000년 전의 사이버 시공에 숨어 있는 그 무엇을 찾기 위해  나의 시에 비트뱅 몰카를 단다**
 
 
 
 * 비트뱅은 현대판 축지법과 축시법이다.

이 지구는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은 주소를 갖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ID와 아바타(Avatar)의 모습으로 동시에 여러 장소에 출몰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몰래카메라의 약자

 

 

해설

텍스트는 시공이 투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순서에 따라 숨을 쉬고 사물을 경험한 다고 말지만

사실은 사물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죽은 후에는 시간의 순서라는 한정되고 독특한 방식의 인식작용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에

죽음의 세계는 영원의 세계입니다.

진공의 무중력 세계처럼 중심이 사라집니다.

모든 것은 한 점에서 겹쳐지기도, 뿔뿔이 흩어져 사라지기도 합니다.

죽음의 세계는 무와 유가 하나입니다.

눈을 통해 들여다보이는 세계의 풍경은 비밀리에 시간의 끈을 잘라버립니다.

텍스트는 무언규칙의 구조물입니다.

텍스트는 시간을 벗어난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시간의 순서배열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언어는 시간 배열의 세계를 복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시간 배열을 깨트리기 위해

시는 특별한 수단을 가지고 동일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사물을 동일하게 하고 동일화된 사물을 허용합니다.

시인은 그러한 텍스트의 규칙을 가지고 있는 무중력의 텍스트입니다.

시간의 배열은 전도되고 무화됩니다.

삶과 죽음의 시간은 생과 사를 초월하는 옷입니다.

시간의 초월은 지금 이곳에서도 ,

사후에도,

생전으로 옮겨 갈 수도 있습니다.

꿈도 시간의 순서가 사라집니다.

순식간에 나무는 자라서 푸른 잎으로 숲을 채웁니다.

< 나 >는 놀랍게도 어디든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꿈이 그러하듯 시간의 배열을 초월합니다.

그곳에서의 언어는 특별합니다.

시인은 말을 하는 대로 세계를 창조해 나갑니다.

바다를 생각하면 바다가 펼쳐지고

나무가 보고 싶으면 내 앞에 나무가 서 있습니다.

어릴 적 나를 보고 싶으면 그때의 내가 웃고 서 있습니다.

시간은 조금도 흐르지 않았는데

많은 시간이 흘러간 그때가 내 앞에 현존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시간을 뛰어넘는 축지법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옷을 벗어버릴 때 우리는 곧 시인이 됩니다.

비유 또한 시간을 초월합니다.

조금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여 변하는 사물들을

움직이지 않게 하기도 하고

갑자기 시간을 움직여 사물을 변하게도 합니다.

비유는 시간을 벗어나 생성됩니다.

시간을 벗어, 남은 사물의 형상을 초월함을 의미합니다.

결국 시작과 끝은 같아지며

또한 시간의 끝은 사라지고 영원만이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시인은 텍스트를 축조합니다.

텍스트는 시간을 초월하는 시인의 면허증입니다.

이 시는  문화적 경계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최첨단 사이버 문화가 현대시의 미학적 전근대적 노래에서

문자 중심의 근대적 시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 안에선 여전히 정형 약식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반근대적 요소가 충일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대시는 근대가 배타적을 축적해온 미학적, 언어적 과잉과 편향을

교정할 수 있는 역설적 힘과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으며

현대시의 중요한 속성을 반 근대 혹은 근대 비판의 지양에서

그 모습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사람 내부의 심장에서 박동이 있듯

사이버 공간에도 영혼처럼 떠돌고 있는 약동하는 비트뱅이 고동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날려 보낸 문자나 음성이

같은 시간에 미국에서도 아니 온 세계 어디에서 든

코드만 맞으면 그 음성을 잡아내듯

공간을 초월 한 사이버 문화는 머지않아 과거의 문자까지도

혹은 음성까지도 잡아내는 독법을 알고 있음이 분면합니다.

2000년전 예수가 띄어 보낸 문자와 언어가

현재를 사는 사회에  흥분 속에 꽉 메꾸어 져 있습니다.

이전의 사이버 시공에 숨어 있는 코드를 찾아내는 것이 비트뱅의 관건이기도 합니다.

 

다다를 수 없는 2000년 전의 사이버 시공에 숨어 있는 그 무엇을 찾기 위해  나의 시에 비트뱅 몰카를 단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흥분의 시대임에 틀림없습니다.

몰카를 준비하여 2000년 전 산상 설교의 코드를 찾아 내는 것이 시인들의 사명인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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