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성 (시와 시인의 말)
페이지 정보
본문
북극성
강위덕
쓸쓸하고 황량한 북극성아
너도 나를 닮아 북극에 외롭구나
나는 네가 보고파 억만 광년을 기다렸노라
어두운 안개 숲 저편으로
최초의 희망 같은
날개 부러진 한통의 엽서도
내가 쥔 생명의 가지를 움켜잡고
별 반짝이는 너를 향하여
북향에 매달린다
성냥갑만한 마음 간이역에서
공허한 갈대의 몸부림처럼 내 몸 흔들려도
내. 너를 기다리며 화려한 설렘을 붙잡고 있다
그대가 오는 날
나도 그대의 눈빛 바라보며 날아가는 별빛 되리라
해설
이성과 감성으로 대별되는 인간의식 양면적 사고에 있어서
근대이후로 현대시는 좀 더 이성적 양식의 추론에 기대를 거는 경향이 짙습니다.
시적 대상인 기존 사물을 전혀 새롭게 또는 매우 낯설게 의미화 시키는 데 있어서
이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유가 필요한 듯싶습니다만
그 추상적 사유과정을 객관화시켜
구상적 언어로 변증시키는 감성화 작업에 있어서 조차
주지적 사고의 진행이 주요 역할을 감당 한다는 말입니다.
시인은 스스로 간직하게 된 정서의 다양한 층 위와 속성을
어떤 구체적 사물로 빗대어 표출하므로 서,
사물의 일시적인 의미를 시인 나름의 개별화와 주관화도 변용시킵니다.
그 필터링 과정을 통해 새로 거듭난 사물을 어떤 독자적 의미가
본래의 보편적 성격과 더불어 표출될 때
독자 감응의 교감 망을 구축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인이 규명해낸 사물의 의미가
지나치게 주관 적인 언어에 갇혀 있으면
독자의 공감과 이해를 도출해 내기가 난감해집니다.
독해의 교착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는 읽기의 민망함과 고단함이 가중되면서
때로는 <난해>의 성곽에 등정하거나
<직설적 유치>의 수렁에 수몰되기도 합니다.
시인은 창의적으로 구현 해낸 자신의 관념적 추론과
그것의 문학적 표현에 있어서
독자와의 정서교역에 실패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너무 천재적이거나
너무 이기적인 경우
헤딩되는데 여기에 시인의 고뇌가 대 못처럼 통증을 가해오기도 합니다.
자신의 창작행위는 타인의 안목과 타협시켜야 하는 바
그 일을 배제한 유아독존 식으로 문학 작업을 갱진 시키는
자존심 또는 천재적 추진력은 아무나 내장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행위는 마치 현대시가 현대를 살해하고 있는 셈입니다.
억 만 광년이 걸려 나의 눈에 도착한 북극성은
나를 닮아 외롭게 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북극성은 수십만 개의 운하수군들이 돌고 돌며
어느 위치의 행성에서든지 다 볼 수 있는 중심성이지만
그 찬란한 별을 외롭게 보는 이유는
내가 외롭기 때문입니다.
별 반짝이는 너를 향하여
북향에 매달린다
이 장면은 북극성을 친구도 접근방법을 시도하며
북극성을 향하여 부러워하고
최초의 희망 같은 생명의 가지를 움켜잡는 간절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극성을 친구로 보고 있는 이 시는 또한
시골 마을의 간이역을 자신에 비하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공허한 몸부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대가 오는 날
나도 그대의 눈빛 바라보며 날아가는 별빛 되리라
인간은 누구나 희망이 있습니다.
별처럼 반짝이며 있는 듯 없는 듯
시답잖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희망이 없는 사람은 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밤하늘을 바라보면
울렁울렁 비릿한 밤하늘이 좋아
막연하게 별에 희망을 걸었는지도 모릅니다.
- 이전글비트뱅 12.03.14
- 다음글[소설} 큰 파도(Tidal Waves) 12.02.2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