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장에서 (시와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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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장에서
강위덕
내 앞에 백사장이 이불처럼 펼쳐있다
차지한 공간은 작지만 아늑하다
자갈들 몇 개가 한숨 온기를 찾아 옹기종기 몰려 있다
돌들 하나하나에 입혀진 무늬는 물들이 다녀간 시간이다
수정처럼 맑은 자갈들은
물살도 없이 고운 강물이 되어
천년을 보던 天涯에 물들어 있다
물젖은 바다와 메마른 바다 사이에
모래알과 자갈이 동화되고 있다
경사진 백사장을 보며,
하늘 능선을 따라 조금씩 조금씩 낮아진
작은 房하나, 내 마음도 함께 보고 있다
해설
이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나를 꽃피게 할 수 있는 땅이 많지가 않습니다.
꽃을 피운다는 것은 내속을 송두리째 들어내는 일인데
내가 벌거벗기엔 세상이 너무 밝습니다.
날이 갈수록 세상의 온화현상은 심해지고
내안에 부끄러움은 심해져 가는데
부끄러움이 심해 갈수록 꽃을 피우고 푼 욕망도 심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밤까지도 도시의 불빛 휘황찬란함이
이 땅을 온통 점령하여 이제는 숨을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어쩌면 시를 쓴다는 것은
도시의 변두리 숲속사이에 숨어살다 더 이상 숨어살 수 없을 때 터트리는 꽃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생각해보면 그래도 내가 꽃피울 수 있는 곳은 변두리입니다.
세상에 모든 찬란한 광택을 버리고 속도를 버리고
한 톨 홀씨가 되어 찾아가는 것이 변두리입니다
그나마 그곳은 조금 습하고 쓸쓸하고 적막한 곳이어서
벌거벗고 꽃을 피우기에 적당한 곳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나의 의식이 변두리에 서있을 때 시가 써집니다.
마음이 너무 밝거나 행복 할 때는 시가 써지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변두리를 찾아 나섭니다.
풀벌레가 노숙하는 시골,
축축하고 나무가 있고 들꽃이 피는 그곳은 변두리가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시골은 지구의 중심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더 변두리를 찾아 지구의 가녘으로 찾아 나섰습니다.
그래서 찾는 곳이 존스 피치입니다.
그곳은 대륙의 변두리고 대양의 변두리입니다.
궁극적인 변두리는 들꽃이 피고 시골집이 서있는 그런 곳이 아니라 모래사장입니다.
뉴욕에 살 때는 모래사장에서 시를 썼습니다.
모래사장에 섰을 때도 노숙자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땅의 모든 것들 위에는 우주라는 커다란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진정한 노숙자는 시일는지 모릅니다.
이 땅에 수많은 시인들이 낸 시집이
시의 집이라면 이 땅에는 수많은 시의 집이 있는데도
시인들은 자꾸만 시집을 짓기 위해 자꾸만 집을 찾아 해맵니다.
시의 집은 노숙자가 되어
책방의 모서리에 방치되어 찾는 이가 없는 노숙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시는 집이 있다하여도
시집(詩集)은 노숙자가 되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시가 되는듯 싶습니다.
존스 비치에 가서 방파제 앞 작은 언덕에 앉았습니다.
존스 비치의 백사장은 유난히 이불 같은 부드러운 감촉이 있었습니다.
자갈 몇 개가 옹기종기 앉아
마치 가족이 오순도순 속삭이듯 이야기꽃을 피우는듯했고
돌의 무늬는 수정같이 맑은 구술처럼
천년을 다녀간 물들의 무늬가 그림처럼 옷 입혀 있었습니다.
나는 경사진 방파제에서 조금씩 낮아진 적은 방에 앉아 있었는데
낮은 곳에 앉아 있는 나는
낮은 곳에 앉아 있는 그만큼 마음도 낮아 있었습니다.
나의 친구의 아버지는 평생 시를 썼으나
시집한권 내지 못하고 두툼한 시 작기 장만 책상위에 쌓여 있었습니다.
그가 죽던 날 하관 식에서 그의 시집이 시신위에 얹혀 졌습니다.
이 세상에 어느 한곳에도
수용될 곳을 찾지 못한 체
시집은 주인의 시신과 함께 영원히 무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하였는데
자기가 죽고 난 다음 누군가가 자기의 시를 발견하여
세상에 알려 지기를 원했는데
시를 좋아하지 않는 아들의 원을 따라
영원히 무덤 속에서 노숙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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