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산 (시와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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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산
강위덕
더는 더 오를 곳이 없어야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사막과 사막 사이
등산길에 메마른 각질이 발바닥에 씹힌다.
거친 산세가 노을 들 무렵
하산 객들의 지친 냄새를
실바람이 져 나른다
새벽이 오면 다시 오를
미지의 산을
더는 더 오를 곳이 없을 때까지
오르기 위해
지금은 내려가야 한다
해설
산과 물은 본래 하나인데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智者)는 물을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물은 안이고 산은 밖이니 안으로 슬기롭고 밖으로 어진 사람이 되란 말입니다(지각의 현상 퐁티).
인류가 풍경이라는 어휘를 처음 발견한 것은 동양의 정신이 먼저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대기적으로 본다면 중국이 먼저고 르네상스의 유럽에서 이 개념이 태어났습니다.
유롭에서는 화가의 눈이 먼저 풍경이라는 어휘를 발견했지만 중국에서는 시인이 먼져 풍경를 발견했다는 견해가 있으나
실은 사영운(靈謝運 385-433)과 종병(宗炳)이 육조시대의 활동으로 풍경이란 어휘가 탄생된 것입니다.
풍경에 대한 인간의 미학적 의식이 풍경화라는 독립된 장르로부터 발전했는지
풍경화의 발생이 인간이 풍경의식을 자극했는지 분명치는 않으나
이 양자 사이에 변증법적 관계가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나다.
풍경은 거리(遠近) 만들기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습니다.
풍경은 우리가 바라보는 지각 끝에 있기 때문에 풍경을 자연과 인간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를 하나로 싸안는 것입니다.
선 원근법(線遠近法, liner perspective)은 선의 구성에 의하여
2차원의 공간으로부터 3차원의 공간으로 착시현상을 만들어 내는 속임수 기법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그림을 감상 할 때
<와! 진짜 같다>는 표현을 쓰곤합니다.
기하학에 바탕을 둔 이 선 원근법은
1400년 초엽 이탈리아 프로렌스에게서 시작 되였습니다.
북송된 화가 곽희씨는 풍경을 바라보는 3가지 다른 점을 언급하였습니다.
첫째 고원(高原)은 산자락에서 산을 지켜보는 방식이고
심원(深遠)은 산너머 겹겹시점을 바라보는 것이고
평원은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점에서 <바라본다>와 <본다>의 차이를 깨닭을 수 있습니다.
미당의 시<무등을 바라보며>와
정진규의 <숲의 알몸들>의 두 시에서
전자는 바라보아야 되는 것이고 후자는 보아야 되는 근시적 풍경을 말합니다.
사람의 두 눈동자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산도 계속 움직입니다.
다시 놀라운 것은 산의 모습이 4 계절에 따라 서로 다르고
하루에도 아침과 저물녘, 날씨의 개임과 흐림에 따라 다릅니다.
그러므로 수백 번을 오르고 또 올라도 산의 표정은 끊임없이 다릅니다.
마치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의 얼굴 표정을 닮은 것 같습니다.
셰익스피어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자연의 무한한 신비의 책에서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조금뿐이니 (안토니와 크레오파트라)
오늘의 시제 <미지의 산>에서
더는 더 오를 곳이 없어야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이 대목은 산은 계속 꿈틀거리면서 꿈을 키워나가는 미례를 간직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새벽이 오면 다시 오를
미지의 산을
더는 더 오를 곳이 없을 때까지
오르기 위해
지금은 내려가야 한다
산을 쳐다보노라면
흘림새(流)가 있고
엮음새(曲)가 있고
추임새(節)가 있고
풀림새(解)가 따로 있습니다.
산을 오를 때 이 경계를 다 돌아서만이 비로소 산의 진경이 열리는 법을 통달했다고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황소 앞에 개미 한 마리가 서성이며
산과 인간사이의 미분을 해독하듯
오르고 또 오르면 산이 인간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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