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시와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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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강위덕
피가 하늘을 날고 있다 430년의 역사*를 버리고 이웃을 버리고 비싼 땅을 버리고 살 수도 없고
팔수도 없는 땅으로 방치한다 태양의 기운이 문에 발린 피 속에 들어와 이글거린다 두 눈에 엉
겅퀴가 불타고 있다 하늘을 보니 하늘에는 불기둥이 일고 태양이 탈 때는 구름기둥이 그늘을 만
든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바람 속으로 흘러간다 싯딤나무가 온몸으로 푸른 불길을 품고 엉겅
퀴의 빛나는 침묵이 눈을 뜨고 있다 촛불 같은 작은 계자씨가 심장으로 타 오를 때 그날 밤은 그
림자를 꿰맨 자국으로 얼룩진다 밤의 숲이 눈이 원하는 대로 풍경을 만들어 간다.
* 요셉이 종으로 팔려 간 이후 애급에서 그의 후손이 종살이를 한 기간
해설
이 시는 푸른 하늘을 따내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역사의 사궤를 맞춰나갑니다.
첫 문장은 이 시를 도입하는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그 뒤를 이어 연결을 이루는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표출되어
동사의 원동력을 가중시킵니다.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방치한다.>는 동사적 시퀀스*에 이어
은연중에 독자가 모르도록 조용을 채용하며 출 애급 사건을 펼치고 있습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사막으로 도망할 즈음
하나님은 동분서주하며 사방 널려있는 허방을 메꾸어 나갑니다.
푸른 적의를 품고
가나안 정복의 위업을 내달리던 이스라엘의 장수,
영토 확장의 진군일로(進軍一路)로 서진의 채찍을 가하던 민중의 발자국 소리는
천년의 시간을 분해하며
비스가산의 무덤 속, 침묵하는 석문을 열어 금록색 눈부신 비색이
발광하는 날개의 꿈으로 돌아가
찬란한 비약의 상상력을 생명의 불꽃으로 승화시켜나갑니다.
거기에는 날카롭고도 단단한 여호와의 칼이 있습니다.
칼국수를 밀어 잘게 자를 수 있는 부엌칼처럼
시인에게는 시(詩)라는 칼이 있습니다.
때로는 말 탄 여전사가 되어 긴 칼을 뽑아 끊임없이
인해전술로 밀려오는 시련을 추풍낙엽처럼 베어내고,
때로는 아주 짧은 은장도로 마음을 보호하기도합니다.
역할 바꾸기 놀이는 아주 옛날부터 전해져오는 놀이 입니다.
소꿉놀이가 그 예입니다.
“나는 엄마 할게 네가 아빠 해!”
그렇게 해서 둘이 고개를 끄덕이다보면
여자아이는 어느새 빨간 벽돌을 빻아 풀 김치를 담그고
병뚜껑에 모래를 담아 밥을 짓습니다.
그리고 남자아이는 나뭇가지를 몇 주워 지게에 지고 오는 시늉을 하며
“여보, 나무해왔어요”라고 말을 합니다.
어린이들은 엄마아빠놀이, 선생님놀이, 의사놀이, 국회놀이 등의 역할놀이로
그들이 가야할 길,
당당하고도 담담하게 용기로 정복, 또 정복으로
아픔을 견디며 광활한 개척을 해 나갑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에 있어 별 뜻 없음에 대한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라는 형식으로
운신(運身)의 폭을 좌절시킵니다.
이 세상에 창공을 마음대로 떼어낼 수 있는 사람,
태양의 기운과 문에 발린 피, 구름의 그늘, 바람에 밀려다니는
회오리와 같은 불기둥을 마음대로 가져다 붙일 수 있는 사람은 시인뿐입니다.
싯딤 나무가 불길을 품는 등
엉겅퀴의 미학 등의 소재를 마음대로 배열하고 꿰맞추면서
스스로 그 집짓기놀이에 어울리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세상끝이 이르면 역할 바꾸기 놀이로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개척해 나갔듯
당당하게 여호수아의 역할은 여호와의 역할로 바뀌고
출애굽은 출 지구로 바뀌어
천천만만의 천사가 함께 하는 장엄한 역사가 펼쳐질 것입니다.
이 시는 난해한 시(詩)이지만
미국 배우 찰톤 해스톤이 주역을 한
십계라는 제목의 영화를 본 사람은 상당한 이해에 도달할 것입니다.
모세 앞에 나타난 엉겅퀴는 잡풀 같은 가시나무에 불과하지만
모세는 그 앞에 신을 벗었습니다.
그 나무에 불을 집힘으로서 장엄한 대 출애굽사건의 전주곡에서
모세는 그 앞에 신을 벗었습니다.
이 불길을 모세에게 보이신 것은
모세가 비록 나약한 한 인간에 불가하지만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전야제에
모세를 당당히 내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여호와의 힘을 상징은 지팡이를 굳게 들었습니다.
이 시는 촛불 같은 작은 계자씨가 심장으로 타 오르는 순간을 묘사한 것입니다.
* 시퀀스는 음악의 전문용어로서 같은 멜로디가 3번 나오는기능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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