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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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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향
이 범 용

 

돌아가리라  마지막 밤배 소리없이 떠나기전
돌아가리라
진한 바닷바람에 깊어진 상처
선홍색 피 가득한 가슴안고
한숨으로 짙어진 밤안개 저쪽 끝
어머니 젖가슴되어 붕긋해진

그 섬으로 돌아가리라

타향으로 맞은 고향
화톳불 빨간 주막에서   떠도는 길손 맞으면
긴 울음 함께하며  서러운 가슴채우리라

두런두런
가랑잎같은 고향잃은 사연
실타래 풀어가면
어느새 초승달 갯물에 잠기겠지

마셔도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빈잔 채워줄 벗들의 찡한 정
아쉬워일까

갈매기 울음이라도 채워보리라
   

해설

 

<돌아가리라>
백번을 다짐해도 타향사리에 한번 접어들면 빠져나가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마치 호박꽃 속에 갇힌 꿀벌의 처지와도 같습니다. 달콤한 향기 따라 정신없이 호박꽃 속으로 파고드는 꿀벌에게 ‘정신 차려 이 친구야’ 그래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현실 혹에 몸과 마음을 맡김으로써 비롯된 황홀경을 쉽게 포기하지는 못합니다. 그 매혹이 대단히 위험한 맹독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해도 나그네의 삶은 지속됩니다. 그래서 현실은 피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황홀한 지옥의 자리이며, 호박꽃 속으로 한번 들어간 꿀벌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그 지옥을 맴돌게 됩니다. 물론 태생적 한계를 안고 엮이는 분이거나, 어떤 짓궂은 운명이 작동되었거나 나쁜 손이 개입되었을 때의 일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이미 나그네의 감옥에 빠져버리면 힘들다고 지겹다고 비루하다고 뭔가 조짐이 좋지 않다고 해서 마음대로 빠져나갈 수도 그렇다고 더 파고들어가기도 어렵습니다. 탈옥을 감행해 보지만 그 역시 쉽지 않습니다. ‘나가지도 더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나그네의 삶은 분명 매혹 혹은 관능적 경탄으로부터 시작된 삶이었겠지만 나중엔 감옥이 되어 환멸의 지옥과 맞닿게 됩니다. 그 지옥은 삶의 허망과 무상, 그리고 가파른 위험성을 필연적으로 일깨우며 상처로 남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지옥 속에 갇혀 고통과 상처를 받으면서도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은 쉬 꺼지지 않습니다. 그 ‘잉잉거림’은 출구를 찾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겠으나, 몸과 마음을 마구 부딪치며 그 지옥의 공간에서 느끼는 황홀일 수도 있습니다. 시인 이범용 선생은 지금 타향이라는 늪에 빠져 더 깊숙이 나아갈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늪에서 체념이라 해도 좋고 타협이라 불러도 상관없는. 그러면서 잉잉거릴 수밖에 없는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농도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감옥의 벽 갈라진 틈새로 길게 뻗쳐 나오는 불안의 그림자는 '나'를 지치게 하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바닥의 위태로움은 '나'를 두렵게 하지만 ‘그대 황홀의 캄캄한 감옥'에서의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타향>
이시(詩)는 대상을 투시하는 관찰력이 깊고 그 대상을 시의 질서 속에 편입시켜 형상화하며 치밀한 관찰과 유려한 상상력, 정치한 표현기교로 시(詩)라는 집짓기의 실내 장식에 적용시킵니다. 이러한 기교적 언어가 없다면 시는 없습니다. 그의 타향살이는 이미 <어머니 젖가슴처럼 붕긋해진>현실의 모양세가 갖추어졌으니 자식들을 키워야하는 현실의 삶에서 피하려야 그리 못하는 새로운 삶이 익어가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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