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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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천태, 만태, 아니 십만태이고 그 이상 무한에 가깝다. 또 그것은
변화, 변화, 변화이고 또 그것들은 매사 모든 것에 맞물려 돌고 돌아가면서 그 이상, 어쩌면 무한대로 가는 변화
이다. 그래서 사상과 이념 속에서도 수천의 은하계가 형성되어가는 것일까.
더욱 오늘날 같은 세상은 그 한 일태 속에서도 다분화의 다양성이며 계속적인 분열화의 연속되는 은하계이다.
어쩌면 자연스럽게 기준이니, 규범이니, 또 뭐고 뭐니 하는 것은 빛 바랜 구태의연함이며 구미에 맞지 않는 한
옛 흔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일축하는 속설이 잘 맞아떨어지는 세상 같아보인다.
천태만태, 변화변화는 오만가지의 혼잡생태계의 현상이고 보면 바로 그것은 혼돈의 세계 바로 그것이다. 자칫
혼란이고 갈등이며 변태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연 또 무수히 많은 도태이기도 하다. 사람은 야심차게 그것을
즐기고 좋아한다. 그래야 그런 시끌벅적한 현상 속에서 그것이 살만한 풍요이고 흥이고 살맛이 물신 날지도 모
른다는 사실이 오늘날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지혜롭게 적응 따라, 변신 따라 수만 가지 그 와궁 속
에 숨고 자유하고 또 쾌적할런지도 모른다.
이상에 말한 이건 말도 안되는 지나친 주장, 아니면 한낱 독설 아닌가?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마져도 아니면 아
닌 것이겠고 그런 것이면 그런 것이다. 왜, 천태만태...이고 변화변화...이기 때문이다. 또 이런 의미의 논리는 천
태만태... 또 변화변화... 라는 다변화의 논리에 힘있게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에 익숙한 자, 이 물기운에 놀기가 원활하고 안성맞춤인 자들이 지혜로운 현대인들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지 간에 빨리 익히고 빨리 적응하고 말이다. 그것이 무
엇이 되었던지 간에 그런 자가 그런 추세에 능난하고 적응에 능난한 사람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할 일이다. 그래
야만 탁월하고 발빠른 현대인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옹졸하고 도태되고 보수의 원적 말고 말이다.
그런데 횡설수설, 이런 정신 없는 말을 많이 하면서도 내가 솔깃하게 좋아하는 것, 단 하나가 있다. 가치관이라
고나 할까.예하면 나의 아내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에도 다만 나만 알기를 바램 같은 것이다. 오직 하나, 그대
로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듬직한 것 그것은 무변화이다. 이건 진실한 고백이다. 관계 속의 철저한 고백이다. 그
래야 마음놓고 내 영혼이 쉴만한 안식처가 될 것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그런 고백의 뿌리는 아쉽게도 이 세상엔
있지 아니하다. 오직 위에서부터 오는 것이리라. 보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고 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일태
이며 무변화라는 사상개념 말이다. 변하지 아니하고 그것이 영원하다는 사실 앞에 손을 든다. 그래서 진리라는
것이다. 항상이란 구태의연의 쓴맛 아닌 달콤한 맛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바로 이것이 나를 이렇게 요지부동하게 지탱케 해준다는 사실도 고백하고 싶다. 주변의 천태만태, 변화
변화는 별로 상관할 가치가 내겐 없을뿐 더러 가치부여를 하고싶지 않아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오히려 이 세
상을 살아가는 단순성의 원리이며 비결이 된다.
성경에 나타난 수천가지 하나님의 언약들은 한 통속의 말이다. 바로 이것이 마치 배의 닻처럼 내 중심을 지탱
케 해준다는 사실에 대한 고백이다. 아마도 일찌기 천태만태 변화무상한 이 세상에 대한 이 원전이며 이 방어
책을 터득하지 못했던들 난 솔지기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지금같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란 게 분명하
다. 이것도 고백이라면 또 하나의 고백이다.
그런데 내게는 크나큰 문제가 하나 있다. 그래서 난 이런 이상과 같은 삶의 페턴이나 습관 속에서 사람에게까지
에 대한 과분한, 어쩌면 망상의 기대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 말이다. 그게 무엇인가? 곧 난 항상 그이가 한결같
은 분인가? 하는 징후에 대한 착념이다. 이런 말을 한들 천태만태 세상에서 뉘가 뭐라고 하겠는가 마는 실은 그
러하고 그러하다. 과욕이요 오욕이 아닐까. 도대체 뭔데... 그 답변은 간단하다. 사람을 믿고 살고싶은 정분 때
문이다. 그렇게 살고싶어져서이다. 아마도 예수께서도 그럴 것이다. 내 아내 말고도 또 허다한 분들을 그렇게
믿고 살고 싶어서이다.
오호, 통재라. 그게 될 말인가. 천태만태이며 변화변화인 세상에서 그게 뉘 욕심이며 논리인고! 그냥 쉽게 변할
줄을 잘 모르는 에녹 같은 이, 무척 그리운데 그게 하나님의 논리이고 나의 기대라고 말하면 그냥 스무스하고
쉬울 것을 구태어 그게 무슨 어렵싸리 어려운 표현들인고 싶다 할 것이다. 하기야 하는 말도 천태만태니깐.
그래서 횡설수설이니깐.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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