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상화(시와 시인의 말) > 글동네

사이트 내 전체검색

글동네

자상화(시와 시인의 말)

페이지 정보

글씨크기

본문

 

자상화

강위덕


72개의 계단을 올라가 사진을 찍었지

나이는 열아홉,

몸을 약간 왼쪽으로 틀고 양복을 뒤로 제쳤지

흰 셔츠의 속살이 들어났어

양쪽 엄지를 허리춤에 끼우고 팔꿈치를 앞으로 내밀었어

무릎을 곧게, 엉덩이를 곧추세웠지

구두가 약간 가릴 정도의 긴 바지에

허리까지 올라간 칼날 같은 다림질이 마음에 들어

베토벤같이 빗어 넘긴 곱슬머리가 바람에 날리고 있어

시선은 허공 쪽으로 뻗어 나가지

변두리 같은 얼굴이 차갑게 보여

세상을 차갑게 보아서가 아니라

파도처럼 저돌적이기 때문이야

꽉 다문 입 틈새기, 의 힘으로 사막을 씹어 단물을 짜냈지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가렸던 두 귀가 드러났어

순식간에 바람이 햇살을 잡고 프라밍풀 *하니

구름은 벗겨지고 그림자가 계단 아래로 동그라졌지

짧지만 길게 맞서야 하는 1초 동안이야

바람에게 물었지

여기가 어느 날의 골목이냐고


들판과 들판사이

여물 먹는 소처럼 순한 초가집 한 채가 서 있는 소리,

바람의 대답이다

초가집이 골목을 잡아당기니

그 앞에 노인 한사람 지팡이를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본다


사람을 쬐고 있다



* 프라밍풀 레스링 용어




해설 

철학자들의 왕국에서는

시인들을 추방해야한다는 말을 한자는 플라톤입니다.

그러나 오직 시의 발견을 통해서만이 유한한 인간성을 넘어

천상의 순결한 왕국에 이르는 빛 한 조각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19세기 초 프랑스 상징주의자들이 육체에 대하여

플라톤과 동일한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흥미로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육체는 영혼의 감옥으로 생각한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보들레르를 위시한 프랑스 상징주의자들은

생득적으로 주어진 감각의 육체만을 통해서는

저 무한한 시 세계의 문턱에 이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기하학적 이성이라고 할 만한 상상의 힘을 통해

망각의 강 건너

이데아의 세계를 변증법적으로 직관하려 했던

플라톤과 달리 19세세기 초의 프랑스 상징주의자들은

음악성을 통해 시의 유토피아에 이르려 하였습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생득적으로 육채감각의 불신을 전제로 한 것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경험의 가능성을 바꿈으로서

유한 한 세계에 묶여 있는 인간의 전망자체를 바꾸어 보려는 노력에서였습니다.

우선 그것은 사물과 주체의 경계를

음악적 서정을 통해 흐릿하게 지우는

베를렌스처럼 혹은 어떤 착란의 상태에 주체를 내던짐으로서

감각기능을 확장하고 내던지는

랭보처럼 육체를 부정하면서 육체를 다른 세계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체성 자체를

아예 괄호에 넣었던 말라르메의 고도한 지적태도와 통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상징주의의 음악성은

시인들이 추구했던 방법론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근원 적으로 말라르메가 나는 비 인칭이다라고 말했던

우주적 지성을 향한 추구와 관련이 됩니다.

이번에 소개된 나의 시 <자상화>는

결국 72세의 내 자신을 그린 자상화이지만

이 시에 등장인물은 19세의 애송이입니다.

스타일이 곧 내용이라고 믿는데 비해

역설적으로 현재의 취향<너머>를 내다보고 있는

<~p-, q=p     q>,  *  

부정문을 부정하면 긍정이 되는

희색 이론의 부정의 부정,

푸르는 젊음!

이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지병,

“몸은 나이 먹을 만치 늙었는데 마음은 점점 젊어지니 그것이 병이로다” 

 

*p 와 q 사이에 화살표가 있어야하는데 이곳엔 카피가 될질 않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