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담도 휴계소에서(시와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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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담도 휴게소에서
이범용
시린 바다에는
빛바랜 추억인가 빈배에 낡은 돛대하나
물살에 떨고있었다
모두들
어디로 가고 어디서 오나
구멍난 문풍지 찬바람에
서러운 눈빛으로
몇은
잊혀진 기억을 아쉬워하고
몇은 얼룩진 옛 사진 처럼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감을 슬퍼하는데
살아간다는것은
어차피
비내리고 바람부는 사소한 일상인 것을
늦은 밤 완행열차 기적처럼 외롭고 쓸쓸한것을
무엇이 그리 서러운가
낡은 추억 찾아
떠도는 외로운 길손이여
국수발 같은 눈물
*행담도 휴게소 뱃전에 뿌리고
훠이훠이
달을 보고 몸을 떠는
새벽 달맞이 꽃을 찾아
먼길 떠난 외로운 사나이
* 주:행담도는 서해안 고속도로 당진 쪽에 있는 바다를 면한 휴게소
해설
나는 이 시에서 라캉의 L도식을 도입하여
그 모델의 틀 속에 이범용씨의 시를 넣어봄으로서 해답을 찾아보려 합니다.
시(詩)의 현실은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아 자유를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의 해설은 가시적 현실이아니라 눈으로 볼 수없는 해방학적 차원임을 명시해둡니다.
내가 바라보는 이범용씨는
결코 타인이 될 수없는 기호를 가지고 있어서
반듯이 이범용씨라야 되는 현실억압 때문에
자아 해방, 즉 해설자로부터 유래된 라캉의 L도식이라는 문법 속으로
유인하게 될 때에 이 시 역시 L자 모양의 도식으로 내려오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평행으로 튕겨져 나가는 라캉 자신의 설명에 귀를 기울려 보기로 합니다.
()
S MI
여기에서 S는 이범용시인이고 MI는 이미지입니다.
()는 채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유하는 시(詩)해설자가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하고 따라서 시인은 S가 됩니다.
만일 이범용 시인이 ()속으로 뛰여든다면
행담도 휴게소가 S가 되어야 하지만
엉뚱하게도 이 시에서는 행담도 휴게소가 ()라는 주체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
선불교에서 말하듯 우리가 믿어온 자아는 허상이고 가짜이고 환상입니다.
부처님은 이세상에 존재하는 일체 유위법(有爲法)
곧 정신적 물질적 존재는 모두 꿈이고 환상이고 물거품이고
그림자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아 역시 무슨 실체, 본질, 자성(自性)이 있는 게 아니라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행당도의 휴게소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고속도로의 줄기 역시 허상일 수 있습니다.
이곳 휴게소에서 조름을 풀고 피곤을 풀고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를 살피다가
갈 곳을 찾지 못하면 휴게소의 차안에서
영원한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행담도 휴게소는 ()안에 들어가 바다를 바라보며
파르르 떨고 있는 돛을 유출하여 추억들의 물결을 만들어내고
바닷바람을 불러들여 온기없는 방의 문풍지가 되기도 합니다.
바다의 수평선을 넘어 사라져간 기억들이
왜 S가 되어 휴게소의 사유적 대상이 되었을까
결국 휴게소를 드나드는 행인이 그곳을 상주하지 못하고
떠나 버릴 길손이기에
“훠이 훠이”
떠날 사람 떠나가도 행담도 휴게소는 결국 혼로남아 외로운 고집으로 ()속에 뿌리를 내렸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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